콘텐츠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블로그 전체검색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도서]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박완서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출장을 마치고 서울발 부산행 KTX 11시 기차를 탔다. 마지막 기차이다. 언제나처럼 자리에 앉아 책을 꺼내들었다. 그리곤 한참이 지났을까. KTX안내원이 다가와 물었다 어디까지 가시나요?” 방해를 받았다는 생각에 약간의 불쾌함을 섞어 동대구까지 가는데요라고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러자 안내원은 동대구는 이미 지났는데요라며 나를 쳐다본다. 응 이게 무슨 소리,,, 보던 책을 덮고 다시 물어보니 동대구는 이미 지났고 조금 전 경주도 지났단다. 책을 보느라 내려야 할 역을 지나친 것이다. 이런 낭패가. 이젠 내릴 수도 없다. 어쩔 수 없이 기차의 최종 목적지인 부산까지 가는 수밖에 없었다. KTX안내원은 당연히 비어있어야 할 자리에 사람이 앉아있으니 행선지를 물어본 것이었다. 내려야 할 역을 지나치면서까지 나를 몰입하게 만든 책이 바로 이 책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였다.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는 박완서님의 자전적 소설이다. 전작에 해당하는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에 이은 후속작이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가 작가의 어린 시절과 학창 시절의 일들을 그리고 있다면, 2부에 해당하는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6.25 전쟁당시 스무살의 처녀로써 겪었던 체험을 회상하고 있다. 19511.4후퇴 때부터 1953년 결혼을 할때까지의 이야기이다. 3년여의 기간이라는 것이 하루하루가 그저 단순한 반복의 연속으로 이어지는 우리네 삶이야 그리 특별한 것이야 있겠냐마는,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6.25전쟁이라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내던져져 매일 매일을 죽음의 공포와 마주하며 살아온 작가의 그 경험이 때로는 무심하게 때로는 강렬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 소설은 살아남기 위한 생존의 몸부림과 인간 군상들의 치열한 삶의 기록들이었으며, 본인의 의지도 아닌 스스로도 어쩔 수 없는 전쟁의 여파 속에서 삶을 영위하기 위한 처절한 투쟁의 기록이다.

 

  작가의 가족사를 그린 전작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보면 작가는 어린시절아버지를 여의고 할아버지를 통해 아버지의 사랑을 대신하며 산다. 그러다 서울생활을 시작하면서 할아버지의 자리는 하나뿐인 오빠가 대신하게 된다.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1.4후퇴를 전후하여 오빠가 예전 근무하던 학교에서 오발로 인한 총상을 당하여 피난길에 나서지 못하는 이야기로부터 시작한다.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자리를 대신했던 오빠의 부상, 그로인해 거의 폐인이 되어버린 오빠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작가는 갓 스무살의 나이에 조카를 비롯한 식솔들의 생존을 책임져야 하는 가장으로서의 임무를 부여받게 된다. 오빠의 부상으로 인해 피난을 가지 못해 공산당 치하에서의 서울 생활, 식솔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빈집털이에 나서며 굶주림을 면하기 위해 인간적인 자존심과 부끄러움을 외면했던 일, 인공치하에서 인민위원회에 나가 했던 일, 월북당하기 직전에 재치를 발휘하여 임진강 근처에서 도망쳐 나온 일, 인민군의 방소 예술단을 보고 느낀 상황의 야만성, 피난길에 핀 목련꽃의 아름다움을 보고 미쳤다고 독백하는 작가의 심리, 그러한 모든 것들이 이 책에 때로는 덤덤하게 때로는 작가의 감성과 더불어 세세히 녹아져 있다.

 

  이어진 오빠의 죽음, 쫒기듯 오빠의 장례를 치르고 허기를 달래기 위해 단팥죽을 먹으며 울부짓는 어머니,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삶을 영위한다는게 무엇인가 끊임없이 자신에게 묻고 답하는 작가의 그 오열과 생존을 위한 치열함이 군데군데 배어있다. 전쟁이란 무엇인가? 자신의 정당함을 주장하기 위해 타인의 생명을 뺏는 가장 야만적 행위이다. 인간은 그 치열한 전장터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야만적일 수밖에 없다. 살아남은 자들은 살아남은 대로, 죽은 자들은 죽은 자 대로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존재감도 없이 그저 살아야 한다는 일념하나로 생을 영위하기 위한 행위의 기록들과 전쟁이라는 그 아비규환의 현장에서 무얼 먹고 무슨 짓을 하고 무슨 일을 당하면서 살았는가가 너무도 세세히 기록되어 있다. 6.25 전쟁은 우리 민족사의 지울 수 없는 오점이며, 그를 소재로 한 수많은 영화와 소설등을 양산해 내었고, 그것들을 접해보았지만 이처럼 힘없는 민초들이 어떤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견디었는지를 상세히 기록한 소설은 본적이 없다. 아니 이 책은 어쩌면 소설이라기 보다는 그 치열한 현장의 살아있는 실록(實錄)이다.

 

  이 책에 기록된 전쟁의 모습은 눈앞에 펼쳐보이듯 세세하다. 누군가에게 듣거나 보아서 아는게 아니라, 직접 경험해 보지 않으면 누구도 알 수 없는 애기들이다. 서울 수복 직후의 돈암동 시장의 모습과 작가가 일했던 회현동 미국 피엑스 앞 거리풍경에 대한 묘사와 더불어 박수근 화백과의 인연, 서울 수복 후 돈을 벌기 위해 물장사를 했던 이야기, 양공주를 상대로 장사를 했던 올케의 이야기, 미군을 상대로 초상화 장사를 하며 돈을 벌었던 애기들을 통해 그 시대의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엿보게 한다. 그래도 전쟁의 와중에 사랑은 싹트고 전쟁 속에서 작가는 결혼을 하게 된다.

 

  작가에게 6.25 전쟁은 그의 인생을 바꾼 대사건이다. 작가가 쓴 수필 중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에서 작가가 전쟁을 겪지 않았으면 자신의 삶이 달라졌을 거라는 애기를 한다. 작가의 데뷔작이 나목인데 이 또한 6.25 전쟁을 소재로 한 소설이니, 작가에게 있어서 6.25 전쟁은 어쩌면 작가의 문학의 근원일지도 모른다.

 

  역사라는 소용돌이에 휩쓸려 어쩔 수 없이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길을 가야 될 때가 있다. 작가가 6.25전쟁으로 일상적인 평이함으로 가득했던 삶의 많은 부분이 바뀌었던 것처럼, 나도 지난 시간을 돌아보니, 어찌할 수 없는 역사적 사건들로 인생의 길이 바뀌어버린 듯하다. 내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말이다. 그중 하나가 작가와 같은 나이에 경험한 광주 5.18 의거다. 삶에 있어 가치관의 혼선을 불러 일으켰던 그 사건을 통해 많은 것을 잃고, 또한 많은 것을 얻게 만든,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 일대혁신을 가져온 사건이었다. 그로 인해 많은 것이 달라졌고 삶의 길 또한 상상 할 수 없을 정도로 달라졌다. 죽음의 공포와 마주한 그때 광주에서의 보름정도의 기간은 지금도 그 하루하루가 마치 어제의 일처럼 기억에 생생하다. 그때의 그 경험과 기억은 지금도 삶의 길에서 유효하다. 또 한 사건은 IMF. 이 또한 스스로의 의지가 아닌 그 시대에 살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우리의 겪어나가야 할 사건이었다. 그저 그 시대를 살았다는 이유 하나로 모든 것을 잃고서 삶을 새로 시작했으니 말이다. 그 두 사건은 내 삶을 바꾼 역사의 소용돌이였다. 그 두 사건이 아니었으면 아마 지금의 나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살고 있었을텐데. 작가의 고백대로 못가본 길에서의 나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역사란 때론 우리가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것들로 삶의 궤적을 바꾸어 버린다. 단순히 우리가 그 소용돌이 속에 끼워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말이다.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는 스무살의 처녀가 6.25 전쟁에서 보고 듣고 느끼고 경험한 것을 진실되게 기록한 것이다. 그 기록의 진실함이 마음으로 전해와 그 시대를 살아낼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고통에 가슴이 저며 온다. 거기에는 기아와 야만의 나날들, 피난민 보따리에서부터 포화에 불 탄 자리에서 피어난 목련 꽃, 현저동 골목의 충충한 우물, 그리고 상처 받은 내면의 그림자까지 섬세하게 재생되어 있다. 마치 그 시절의 다큐를 보는 것처럼 말이다. 또한 거기에는 그 모든 야만과 좌절과 고통을 인간된 도리로 바라보는 작가의 마음이 기록되어 있다. 너무도 사실적이고 너무도 인간적인 작가의 글은 이 책을 펴는 그 순간부터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박완서님의 사후에야 그분의 작품을 대하고 있음이 이렇듯 죄스러울 수가 없다. 그 사실적인 표현과 세세한 묘사는 박완서님의 작품이 갖는 위대함의 또 다른 상징이었다. 그분이 왜 우리 문학사의 한 축을 담당하는 분으로 추앙받는지 절로 이해가 되었다. 당분간의 작가의 책을 자주 접할 듯하다.

 

  새벽 140. 부산역에서 상경하는 기차는 없었다. 새벽 5시 첫 기차가 있을 뿐이었다. 밖으로 나왔다. 가을의 초입이라 새벽 공기에 차가움이 깃들었다. 서너 시간을 메꾸기 위해 모텔을 가기도, 사우나를 가기도 애매했다. 근처의 PC방을 찾아들었다. 그리곤 PC방의 모니터를 켜고 그 조명을 불빛삼아 읽다만 이 책을 펴들었다. 새벽 5. 출근을 위해 첫 기차에 몸을 실었다. 꼬박 날을 새었지만 머리는 그 어느때보다도 맑았다.

 

 

 



 
취소

댓글쓰기

저장
덧글 작성
0/1,000

댓글 수 10

댓글쓰기
  • 스타블로거 꿈에 날개를 달자

    박완서 작가를 굉장히 좋아해서.. 왠만한 책은 다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은 읽지 않은 것 같아요. 사실 전쟁 자체를 상상할 수는 없는것 같아요. 겪지 않은 상태에서는.. 그 시절의 표현과 묘사가 굉장히 사실적이었나 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는... 그런 전쟁이 없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집에는 잘 오셨나요?

    2012.10.10 14:15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후안

      네..꿈날개님...새벽기차를 타고 올라오는 그 느낌도 그리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날을 샌뒤에 오는 약간의 피로함만 제외하면 말입니다. 아마도 이책을 생각할때마다 그 추억이 떠올라 오랫동안 머리속에 남아있을 책인듯 합니다. 당분간의 박완서 작가님의 책을 많이 만날듯 싶네요..^^

      2012.10.14 00:48
  • 파워블로그 샨티샨티

    현대사의 비극을 고스란히 안고 견디며 지냈다는 선생님 인터뷰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극복이 아니라 그저 견디었을 뿐이라는 말에 야만적인 폭압 아래 스러져 간 이를 가족으로 둔 선생님의 자전적인 삶을 그려 봅니다. 독서 삼매경에 빠져 경주까지 가셨다니 몰입한 경험으로 추억 한 자락 담고 오셨네요. 꼭 읽어봐야겠습니다.

    2012.10.10 16:47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후안

      이 책을 보시기전에 그 전편이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부터 보시면 이 책을 이야기 하는데 좀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전편을 보시고 보시면 이책에서 기술된 작가의 감성의 편린들이 훨씬 더 잘 이해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전쟁이란 어찌할 수 없는 소용돌이 속을 헤쳐온 작가의 경험이 너무나도 가슴아쁘게받아들여지는 책입니다.

      2012.10.14 00:50
  • 슈퍼작살

    때로 부모님을 설득한답시고 '그때는 그때죠'라고 대들때가 있었습니다. 전쟁과 독재, 보릿고개와 3교대를 온 몸으로 살아오신 부모님의 이야기를 단 한번도 제 몸으로 듣고 이해하고 공감해보려 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은 20대 어느날부터는 절대로 부모님을 설득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분들이 살아 온 삶의 궤적을 부정할 수 없으니까요.
    박완서 작가가 온 몸으로 써 내려갔을거라는 추측을 해 봅니다. 저 처럼 젊은 세대가 꼭 읽어야 할 작품인 듯 싶습니다.
    동대구에서 내리시는 것도 깜빡할 정도로 후안님을 몰입케 한 대단한 작품이군요.^^
    저도 기차에서 책 읽는 걸 좋아하는데 단 한번도 목적지를 지나친 적은 없네요^^;;

    2012.10.10 18:27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후안

      저도 출장으로 수없이 기차를 타고 다니는데 내릴곳을 놓쳐버리고 지나친 경우는 처음인듯 합니다 그만큼 이책이 읽는 사람을 몰입하게 만들더군요. 가끔은 직접 경험해보지 않은 사건에 대해 너무도 아무렇지 않게 애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전에 제가 겪은 광주의거건만 해도 그렇죠 현장에 있었던 제 애기보다 그들이 일부 어용언론을 통해 들은 애기가 진실인양 호도하는 경우들이 많이 있었죠. 꽉막힌 그들과의 대화를 포기한적이 있었습니다. 동시대와 사건을 경험해보지 않고 그들을 이해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죠.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진리를 외면하고 있는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2012.10.14 00:54

PRID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