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장을 마치고 서울발 부산행 KTX 11시 기차를 탔다. 마지막 기차이다. 언제나처럼 자리에 앉아 책을 꺼내들었다. 그리곤 한참이 지났을까. KTX안내원이 다가와 물었다 “어디까지 가시나요?” 방해를 받았다는 생각에 약간의 불쾌함을 섞어 “동대구까지 가는데요”라고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러자 안내원은 “동대구는 이미 지났는데요”라며 나를 쳐다본다. 응 이게 무슨 소리,,, 보던 책을 덮고 다시 물어보니 동대구는 이미 지났고 조금 전 경주도 지났단다. 책을 보느라 내려야 할 역을 지나친 것이다. 이런 낭패가. 이젠 내릴 수도 없다. 어쩔 수 없이 기차의 최종 목적지인 부산까지 가는 수밖에 없었다. KTX안내원은 당연히 비어있어야 할 자리에 사람이 앉아있으니 행선지를 물어본 것이었다. 내려야 할 역을 지나치면서까지 나를 몰입하게 만든 책이 바로 이 책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였다.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는 박완서님의 자전적 소설이다. 전작에 해당하는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에 이은 후속작이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가 작가의 어린 시절과 학창 시절의 일들을 그리고 있다면, 2부에 해당하는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는 6.25 전쟁당시 스무살의 처녀로써 겪었던 체험을 회상하고 있다. 1951년 1.4후퇴 때부터 1953년 결혼을 할때까지의 이야기이다. 3년여의 기간이라는 것이 하루하루가 그저 단순한 반복의 연속으로 이어지는 우리네 삶이야 그리 특별한 것이야 있겠냐마는,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6.25전쟁이라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내던져져 매일 매일을 죽음의 공포와 마주하며 살아온 작가의 그 경험이 때로는 무심하게 때로는 강렬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 소설은 살아남기 위한 생존의 몸부림과 인간 군상들의 치열한 삶의 기록들이었으며, 본인의 의지도 아닌 스스로도 어쩔 수 없는 전쟁의 여파 속에서 삶을 영위하기 위한 처절한 투쟁의 기록이다.
작가의 가족사를 그린 전작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보면 작가는 어린시절아버지를 여의고 할아버지를 통해 아버지의 사랑을 대신하며 산다. 그러다 서울생활을 시작하면서 할아버지의 자리는 하나뿐인 오빠가 대신하게 된다.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는 1.4후퇴를 전후하여 오빠가 예전 근무하던 학교에서 오발로 인한 총상을 당하여 피난길에 나서지 못하는 이야기로부터 시작한다.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자리를 대신했던 오빠의 부상, 그로인해 거의 폐인이 되어버린 오빠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작가는 갓 스무살의 나이에 조카를 비롯한 식솔들의 생존을 책임져야 하는 가장으로서의 임무를 부여받게 된다. 오빠의 부상으로 인해 피난을 가지 못해 공산당 치하에서의 서울 생활, 식솔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빈집털이에 나서며 굶주림을 면하기 위해 인간적인 자존심과 부끄러움을 외면했던 일, 인공치하에서 인민위원회에 나가 했던 일, 월북당하기 직전에 재치를 발휘하여 임진강 근처에서 도망쳐 나온 일, 인민군의 방소 예술단을 보고 느낀 상황의 야만성, 피난길에 핀 목련꽃의 아름다움을 보고 “미쳤다”고 독백하는 작가의 심리, 그러한 모든 것들이 이 책에 때로는 덤덤하게 때로는 작가의 감성과 더불어 세세히 녹아져 있다.
이어진 오빠의 죽음, 쫒기듯 오빠의 장례를 치르고 허기를 달래기 위해 단팥죽을 먹으며 울부짓는 어머니,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삶을 영위한다는게 무엇인가 끊임없이 자신에게 묻고 답하는 작가의 그 오열과 생존을 위한 치열함이 군데군데 배어있다. 전쟁이란 무엇인가? 자신의 정당함을 주장하기 위해 타인의 생명을 뺏는 가장 야만적 행위이다. 인간은 그 치열한 전장터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야만적일 수밖에 없다. 살아남은 자들은 살아남은 대로, 죽은 자들은 죽은 자 대로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존재감도 없이 그저 살아야 한다는 일념하나로 생을 영위하기 위한 행위의 기록들과 전쟁이라는 그 아비규환의 현장에서 무얼 먹고 무슨 짓을 하고 무슨 일을 당하면서 살았는가가 너무도 세세히 기록되어 있다. 6.25 전쟁은 우리 민족사의 지울 수 없는 오점이며, 그를 소재로 한 수많은 영화와 소설등을 양산해 내었고, 그것들을 접해보았지만 이처럼 힘없는 민초들이 어떤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견디었는지를 상세히 기록한 소설은 본적이 없다. 아니 이 책은 어쩌면 소설이라기 보다는 그 치열한 현장의 살아있는 실록(實錄)이다.
이 책에 기록된 전쟁의 모습은 눈앞에 펼쳐보이듯 세세하다. 누군가에게 듣거나 보아서 아는게 아니라, 직접 경험해 보지 않으면 누구도 알 수 없는 애기들이다. 서울 수복 직후의 돈암동 시장의 모습과 작가가 일했던 회현동 미국 피엑스 앞 거리풍경에 대한 묘사와 더불어 박수근 화백과의 인연, 서울 수복 후 돈을 벌기 위해 물장사를 했던 이야기, 양공주를 상대로 장사를 했던 올케의 이야기, 미군을 상대로 초상화 장사를 하며 돈을 벌었던 애기들을 통해 그 시대의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엿보게 한다. 그래도 전쟁의 와중에 사랑은 싹트고 전쟁 속에서 작가는 결혼을 하게 된다.
작가에게 6.25 전쟁은 그의 인생을 바꾼 대사건이다. 작가가 쓴 수필 중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에서 작가가 전쟁을 겪지 않았으면 자신의 삶이 달라졌을 거라는 애기를 한다. 작가의 데뷔작이 《나목》인데 이 또한 6.25 전쟁을 소재로 한 소설이니, 작가에게 있어서 6.25 전쟁은 어쩌면 작가의 문학의 근원일지도 모른다.
역사라는 소용돌이에 휩쓸려 어쩔 수 없이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길을 가야 될 때가 있다. 작가가 6.25전쟁으로 일상적인 평이함으로 가득했던 삶의 많은 부분이 바뀌었던 것처럼, 나도 지난 시간을 돌아보니, 어찌할 수 없는 역사적 사건들로 인생의 길이 바뀌어버린 듯하다. 내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말이다. 그중 하나가 작가와 같은 나이에 경험한 광주 5.18 의거다. 삶에 있어 가치관의 혼선을 불러 일으켰던 그 사건을 통해 많은 것을 잃고, 또한 많은 것을 얻게 만든,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 일대혁신을 가져온 사건이었다. 그로 인해 많은 것이 달라졌고 삶의 길 또한 상상 할 수 없을 정도로 달라졌다. 죽음의 공포와 마주한 그때 광주에서의 보름정도의 기간은 지금도 그 하루하루가 마치 어제의 일처럼 기억에 생생하다. 그때의 그 경험과 기억은 지금도 삶의 길에서 유효하다. 또 한 사건은 IMF다. 이 또한 스스로의 의지가 아닌 그 시대에 살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우리의 겪어나가야 할 사건이었다. 그저 그 시대를 살았다는 이유 하나로 모든 것을 잃고서 삶을 새로 시작했으니 말이다. 그 두 사건은 내 삶을 바꾼 역사의 소용돌이였다. 그 두 사건이 아니었으면 아마 지금의 나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살고 있었을텐데. 작가의 고백대로 못가본 길에서의 나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역사란 때론 우리가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것들로 삶의 궤적을 바꾸어 버린다. 단순히 우리가 그 소용돌이 속에 끼워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말이다.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는 스무살의 처녀가 6.25 전쟁에서 보고 듣고 느끼고 경험한 것을 진실되게 기록한 것이다. 그 기록의 진실함이 마음으로 전해와 그 시대를 살아낼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고통에 가슴이 저며 온다. 거기에는 기아와 야만의 나날들, 피난민 보따리에서부터 포화에 불 탄 자리에서 피어난 목련 꽃, 현저동 골목의 충충한 우물, 그리고 상처 받은 내면의 그림자까지 섬세하게 재생되어 있다. 마치 그 시절의 다큐를 보는 것처럼 말이다. 또한 거기에는 그 모든 야만과 좌절과 고통을 인간된 도리로 바라보는 작가의 마음이 기록되어 있다. 너무도 사실적이고 너무도 인간적인 작가의 글은 이 책을 펴는 그 순간부터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박완서님의 사후에야 그분의 작품을 대하고 있음이 이렇듯 죄스러울 수가 없다. 그 사실적인 표현과 세세한 묘사는 박완서님의 작품이 갖는 위대함의 또 다른 상징이었다. 그분이 왜 우리 문학사의 한 축을 담당하는 분으로 추앙받는지 절로 이해가 되었다. 당분간의 작가의 책을 자주 접할 듯하다.
새벽 1시 40분. 부산역에서 상경하는 기차는 없었다. 새벽 5시 첫 기차가 있을 뿐이었다. 밖으로 나왔다. 가을의 초입이라 새벽 공기에 차가움이 깃들었다. 서너 시간을 메꾸기 위해 모텔을 가기도, 사우나를 가기도 애매했다. 근처의 PC방을 찾아들었다. 그리곤 PC방의 모니터를 켜고 그 조명을 불빛삼아 읽다만 이 책을 펴들었다. 새벽 5시. 출근을 위해 첫 기차에 몸을 실었다. 꼬박 날을 새었지만 머리는 그 어느때보다도 맑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