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새천년을 맞이한 지 벌써 12년이 지났다. 그 때 새로운 천년을 맞는 우리네의 마음은 그리 편한 것은 아니었다. 1998년 IMF로 인해 온 국민이 그 파고를 넘고자 온 나라가 고통을 분담하고 있던 시기여서 그저 새천년을 반기기보다는 먹고사는 문제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던 때였다. 그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밀레니엄 버그로 불린 Y2K다. 지금이야 희대의 사기극이 아니었나 의심도 하지만 그 시절 세계적으로 정말 큰 이슈였다. 종말론까지 거론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다행히 별다른 문제가 없어 넘어간 사건이어서 한때의 헤프닝으로 종말을 고한 사건이지만...
한세대가 바뀐다는 것은 하나의 매듭이 완성된다는 의미이다. 이 책『물리학 클래식』에서 국내파 이론 물리학자인 이종필 박사는 만약 인류가 멸망했을 때, 우주선을 타고 지구를 탈출하게 되면 어떤 논문을 챙겨야 현대 물리학을 복원할 수 있을까 하는 관점에서 20세기의 물리학 논문을 고른다. 그래서 저자는 현대 물리학을 그 전과 그 후로 돌이킬 수 없게 바꾼 획기적 발견, 인류의 세계관을 송두리째 뒤흔든 인식의 혁명, 새로운 발견과 패러다임의 혁명을 온전하게 담아낸 이론적 완성을 선정 기준으로 삼아 제시한다. 이 기준들을 하나의 축으로 지난 100년 동안 세상을 바꾼 물리학 논문 10편의 원전을 골랐다. 그리고 각 논문 속으로 들어가 각 논문을 써낸 12명의 물리학자들이 머리를 싸매고 고민한 문제들, 그들이 우연히 마주친 수수께끼들, 그리고 그들을 문제 해결로 안내한 아이디어들을 또 하나의 축으로 삼아, 놀라운 발견이 일어나고, 새로운 이론이 탄생하며, 천재성과 천재성이 충돌하고, 낡은 세계관이 새로운 세계관을 전복되는 순간을 과학자들의 생각의 흐름을 추적하면서 생생하게 재현해 낸다. 이로써 실제로 현장에서 이론과 실험 결과를 다루며 연구하는 현장 연구자만이 느낄 수 있었던 과학자들의 숨결을 공유할 수 있게 해 준다. 더불어 그 논문들과 그 발견으로 인해 우리의 삶이, 어떻게 바뀌었으며, 그로 인해 인류의 미래가 어떻게 바뀌고 발전해 왔는지를 보여준다.
획기적인 발견이란 그 발견으로 인해 그 이전과 이후가 확연히 구분되며 이후 세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성과를 의미한다. 그에 해당되는 논문으로 어니스트 러더퍼드의 원자력 발견, 에드윈 허블의 팽창하는 우주 발견, 펜지아스와 윌슨의 우주 배경 복사 발견, 그리고 바딘과 브래튼의 트랜지스터 발견을 선정했다. 인식의 혁명에 해당하는 논문으로는 현대물리학을 떠받치는 두 기둥인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과 양자 역학을 선정했다. 이 두 이론은 단지 과학자들의 사고만 바꾼 것이 아니라 인류전체의 인식 틀을 통째로 바꾸었다. 이론적인 완성부문에서는 전례가 없는 성공적인 이론들을 선정했다. BCS 이론과 입자 물리학의 표준모형이다. BCS이론은 초전도 현상을 설명하는 양자 역학적인 이론이다. 입자 물리학의 표준모형은 전자기력과 약력을 하나의 게이지 이론으로 성공적으로 통합했다.
이상의 10개의 논문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겠다. 하나는 우주의 생성 및 구조에 관한 논문이며, 또 한 분야는 우리가 사는 세상을 이루고 있는 물질의 존재와 기본 구성 원리에 관한 논문이다. 허블 망원경으로 우리에게도 낯익은 허블의 우주 팽창 발견은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발견으로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직접적인 증거를 발견함으로써 우주의 탄생과 운명에 얽힌 결정적인 단서를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포착했다. 펜지어스와 윌슨의 극초단파 우주 배경 복사의 발견은 우주가 태초의 대폭발로부터 시작되었다는 대폭발 이론을 뒷받침했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중력의 장 방정식은 우주의 구조를 꿰뚫어 볼 수 있는 이론적 기반을 제공했다. 리더퍼드는 원자핵을 발견함으로써 20세기를 원자의 시대로 만들었다. 입자물리학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친 표준모형은 약력과 전자기력을 성공적으로 통합하여 통합이론에 관한 가능성과 희망을 열었다. 또한 힉스입자의 발견은 표준모형의 경계를 막 뛰어넘을 경지에 이르렀다. 초전도 현상을 설명한 BCS이론은 미시 세계를 지배하는 양자 역학을 이용해 거시적인 물성 현상을 성공적으로 설명한 최초의 이론이다.
존 바딘과 윌터 브래튼의 트랜지스터의 탄생은 전자혁명을 가져왔다. 현대 전자공학은 트랜지스터 없이는 생각할 수도 없다. 뿐만 아니라 트랜지스터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반도체를 전자의 수준에서 완벽하게 이해할 수가 있었다.
이러한 20세기의 물리학 논문을 근거로 한 향후 21세기의 물리학의 숙제는 무엇일까? 아마도 기존 20세기와 같이 세상을 이루고 있는 물질의 근원을 찾는 것과 우주를 구성하고 있는 물질이 무엇인가를 찾는 것이 21세기 물리학의 가장 개척해야 할 부분일 것이다. 우주공간을 뒤덮고 있는 물질 중 4%만이 인류가 아는 물질이고, 나머지는 그 존재조차도 밝혀지지 않고 있다. 우주 공간을 뒤덮고 있는 정체불명의 암흑물질은 우주 전체 에너지의 약 22퍼센트, 암흑 에너지는 약 74퍼센트 정도를 차지하고 있지만 그 정체가 무엇인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단다. 또한 20세기 말에 등장한 초끈이론의 실제를 파악하고, 물질 구성의 기본입자인 커크의 존재와 그 역할을 밝히는 것이다.
중학교 이후 물리학을 접해보지 않았지만 이 책을 읽는 데는 무리가 없었다. 역사적인 물리학 논문의 주제들이 어떻게 세상을 바꿨는지를 친절하게 안내해주는 작가의 글쓰기 때문에 일부 내용에서는 흥미롭기까지 했다. 우리가 알든 모르던 세상은 많은 것들이 이런 물리학적인 발견과 발명에 의해 변화되어 왔다. 이 책에 등장하는 20세기의 기념비적인 물리학의 논문은 물리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낯 설은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혹은 과학 다큐등을 통해서 지나가듯이 들은 이론일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서 거론되는 그 물리학의 논문들이 우리의 세상을 바꿨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과학적인 편리함, 우리가 편리하게 사용하는 우리 주위의 전자기기들의 구성 원리들이 위의 과학자들의 논문에서 비롯되었다. 우주에 관한 그들의 발견은 우리의 사고의 폭을 넓히고, 우리의 생각을 바꾸고, 철학적으로 우리를 성숙하게 했다. 우리가 알든 모르든 세상은 정해진 원칙에 의해서 운행된다. 단지 그 법칙들은 예전부터 존재 해왔고 지금도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 단순히 우리가 그러한 사실을 모르고 있었을 뿐. 앞으로 21세기에는 어떤 새로운 이론과 새로운 발견이 우리의 삶을 바꿀지 모른다. 한 방향으로만 진행하는 시간의 비밀을 풀어 타임머신을 만들 수 도 있고, 암흑 에너지의 존재를 밝혀 새로운 에너지 혁명을 일으킬 수도 있다. 그러한 발견은 인류의 진보를 가져오고 우리의 삶을 바꿀 것이다. 향후 21세기에는 우리의 삶이 어떻게 바뀔지 그 미래가 그저 궁금하다. 어쩌면 이 책은 그러한 다가오지 않은 미래를 내다볼 계기를 주는 건 아닌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