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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술

[도서] 아무튼, 술

김혼비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아무튼 시리즈 중에서 제일 재미있게 읽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술이 너무 마시고 싶어졌는데 뚜렷하게 진토닉과 화이트 와인이 마시고 싶어서 토닉워터에 레몬까지 사들고 잔 2개를 준비해서 하나는 진토닉, 하나는 와인을 따라 놓고 번갈아 가며 행복하게 혼자 마셨다. 그래서 이 책 제목만 보면 재밌었던 책 내용에 좋았던 나의 추억까지 버무려져 늘 행복한 기분이 든다.


 코로나로 인해서 재택근무가 장기화되면서 심각한 일태기(일+권태기)에 빠진 적이 있다. 먹고 자고 생활하는 목적의 작은 원룸 공간에 업무하는 공간으로서의 목적까지 더해지니 늘 회사에 있는 기분이 들고, 업무의 스트레스가 풀리지 않고 계속해서 누적이 됐다. 코로나로 재택근무를 하기 이전에는 이렇게까지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던 것 같은데 요즘 왜 이러지?라는 의문이 들었다. 코로나가 도래하기 전 매일 회사로 출퇴근하던 시절에도 출근 시점에는 파이팅 넘쳤지만 퇴근 시점에는 잔뜩 스트레스를 받아서 늘 녹초 상태로 퇴근하던 기억만 떠올랐다. 근데 신기하게도 그날의 스트레스가 다음날로 이어지지 않았는데 대부분 퇴근 시간만 되면 회사 동기들에게 "엘리베이터 같이 타고 내려가자."라고 제안하면서 같이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으면 너나할 것 없이 하루의 고단함을 내비치고 1층에 도착해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 그중 한 명이 "그럼 우리 맥주 한 잔만 하고 갈까?"라고 묻는 순간 정신을 차리면 옆 건물 지하 1층의 치킨집에 착석해서 주문하고 있었다. 치킨을 뜯고 생맥주잔을 부딪히면서 나의 하루를 얘기하고, 동기의 하루도 듣고, 다 함께 얘기하다 보면 비워진 맥주잔만큼이나 내 마음도 언제 무거웠냐는 듯이 깃털처럼 가벼워져 있었고 다음 날 해가 뜨면 상쾌한 마음으로 다시 다음날의 업무를 시작할 수 있었다. 나라는 사람은 술에 취해 흥이 올라가는 기분도 좋아하지만, 좋아하는 나의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을 차려놓고 술잔을 부딪히며 이야기를 하는 것을 좋아하고 그럴 때 큰 행복과 소속감을 느낀다는 걸 다시 한번 제대로 느꼈다. 재택근무 때문에 퇴근하면서 동기들과 같이 술집으로 들어가는 소소한 행복을 느낄 수 없지만 가까운 미래에 그런 날들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세상은 우리에게 세계를 확장하라고, 기꺼이 모험에 몸을 던지라고 끊임없이 메시지를 보내지만 감당의 몫을 책임져주지는 않으니까. 감당의 깜당은 각자 다르니까. 빚내서 하는 여행이 모두에게 다 좋으란 법은 없으니까. 그러니 작은 통 속에서 살아가는 동료들이여, 지금 당장 감당할 수 없다면 때로는 나의 세계를 좀 줄이는 것도 괜찮다. 

 

-뾰족하게 깎아놓은 연필을 백지에 쓱쓱쓱쓱 계속 문지르다 보면 연필심이 점점 동글동글하고 뭉툭해지는 것처럼, 어른으로서, 사회인으로서, 그 밖의 대외적 자아로서 바짝 벼려져 있던 사람들이 술을 한 잔 두 잔 세 잔 마시면서 조금씩 동글동글하고 뭉툭해져 가는 것을 보는 것이 좋다. 

 

-냉장고 문을 닫는 순간 몇 시간 후 시원한 술을 마실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듯이, 신나서 술잔에 술을 따르는 순간 다음 날 숙취로 머리가 지끈지끈할 가능성이 열리듯이, 문을 닫으면 저편 어딘가의 다른 문이 항상 열린다. 완전히 ‘닫는다’는 인생에 잘 없다. 그런 점에서 홍콩을 닫고 술친구를 열어젖힌 나의 선택은 내 생에 최고로 술꾼다운 선택이었다. 그 선택은 당장 눈잎의 즐거운 저녁을 위해 기꺼이 내일의 숙취를 선택하는 것과도 닮았다. 삶은 선택의 총합이기도 하지만 하지 않은 선택의 총합이기도 하니까. 가지 않은 미래가 모여 만들어진 현재가 나는 마음에 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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