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표지를 꼼꼼히 보지 않았다. '인문학적 글쓰기'란 어떤 것일까를 생각하며 선택한 책인데, '글쓰기' 강의가 아니라 서울대에서 진행한 '글쓰기 강의'를 소개한 책이다. 이런 실수. 그렇지만 재미있게 잘 읽었다.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지는 못했지만 나중에 '책 읽기', '글쓰기'같은 수업을 해보고 싶은데 학생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방법이나 단계별 수업 진행의 팁을 얻을 수 있었고, 수업의 목표, 의도와 그에 따른 사례들이 많이 소개되고 있어서 도움이 되었다.
저자가 진행한 '인문학 글쓰기' 수업을 듣는 학생들은 '나를 소개하는 글', '감상 에세이', '주제 에세이' 등 총 3편의 글을 쓰게 된다. 각각 1쪽, 3쪽, 5쪽 이상으로 학생들이 쓴 글들은 ETL 프로그램을 통해 온라인 게시판에 올려 공개하고 각 글마다 사전에 지정독자를 두며 지정독자는 반드시 자신이 맡은 글을 읽고 답글을 달도록 했다. 지정독자가 아닌 학생들도 계획발표한 글들 중 두,세편을 선택하고 자신이 선택한 글에는 답글을 달아야 하며, 글쓴 학생은 답글을 고려하여 발표하면 된다. 이렇게 하는 동안 학생들은 자신의 '글'도 세 편씩 써내야 하지만 자신이 독자로 맡은 글에도 답'글'을 써야 한다. 또한 답글을 달기 위해 정해진 글을 꼼꼼히 읽어야 함은 물론이고, 수업 전에는 그 날 발표할 글들도 미리 읽어야 한다. 그야말로 쓰기 위해 읽고, 읽기 위해 쓰는 행위가 끊임없이 반복되는 구조다.
15쪽>
인문학 글쓰기 수업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다 함께 쓰고 다 함께 읽기'가 될 것이다
19쪽-23쪽>
새로운 글쓰기 경험을 위해 내가 만들어둔 1) 첫 번째 장치는 학생들 스스로 원하는 소재를 잡아 원하는 형식으로 쓸 수 있도록 최대한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다.
2) 글을 억지로 짜내는 고통을 줄이기 위해 글의 소재와 형식에 대한 구상을 동료들 앞에서 발표하는 기회도 갖는다.
3) 글마다 두 명씩 지정독자가 정해지는데 이 또한 새로운 글쓰기 경험을 위한 장치다.
4) 글쓰기 경험 못지 않게 우리의 글쓰기 강좌에서 중요한 경험은 글읽기이다.
5) 글을 바탕으로 전개되는 이야기 나누기는 글쓰기 강좌가 목표로 삼는 또 다른 경험이다. 우리의 글쓰기 강좌에서는 글을 바탕으로 소통을 극대화하려 애쓴다. 글에서는 모호했던 생각이 질문을 통해 구체화된다. 독자들의 이견이 쏟아지는 부분에서는 미처 고려하지 못했던 점을 새로 고민하게 된다.
6) 이렇게 이야기를 나눈 후 학생들은 자기 글을 수정한다. 그리고 수정본 또한 일방적인 전달로 그쳐서는 안 되겠기에 다시 한 번 답글 달기 과제를 부과한다.
저자는 자신의 글쓰기 강의에서 중요한 요소가 무엇인지, 반대로 고려하지 않는 요소, 즉 배제하는 요소에는 무엇이 있는지, 또 이 수업을 진행하며 선생으로서 자신이 배운 것들에는 무엇이 있는지도 써내려 간다. 무엇보다 강의를 진행한 저자 이상원 교수의 솔직한 마음도 책 곳곳에서 읽을 수 있었다. 일방적인 강의식이 아니라 전적으로 학생들이 주도하도록 하기 위해 이런 저런 방법들을 고심하고 철저히 조력자의 역할을 자처한 저자는 가르치는 행복, 스스로 성장해가는 학생들을 바라보는 감사를 잊지 않고 기록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