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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영원했다

[도서] 모든 것은 영원했다

정지돈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4점

리틀도서관 매주한권 휴먼터치

이번에 책맛보기하는 책의 제목은 모든 것은 영원했다,입니다. 30대의 젊은 저자, 정지돈이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두루 섭렵하여 거친 듯 섬세하게 소설화했습니다. 거친 듯 섬세하다라고 한 것은 저자가 즐겨 사용하는 표현을 패러디해 본 것입니다. 이를 테면 다음과 같은 표현이 책에 등장합니다.

신문은 저널 이상이었고 이하였다.

선제공격이자 방어였다.

그것이 죄인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한 번도 죄가 아닌 적이 없었다.

저자는 이번 책을 쓰면서 상상했다라고 하면서 추리하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저자의 이런 표현에서 치우치지 않으려는 건강한 경계인을 봅니다. 균형 잡아 보려고 하는 건전한 경계인을 봅니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으면, 열광하는 팬이 모이지 않는 요즘 현실을 감안해서, 건강하고 건전한 저자로 본 것입니다.

이 소설이 의미하는 핵심 단어는 경계인이 아닐까, 싶습니다. 소설은 남한과 북한, 미국, 체코의 경계인으로 살아야 했던 20세기 인물들의 처형, 유배, 방황, 자살을 알려줍니다. 네이버 국어사전은 경계인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둘 이상의 이질적인 사회나 집단에 동시에 속하여 양쪽의 영향을 함께 받으면서도, 그 어느 쪽에도 완전하게 속하지 아니하는 사람.

정지돈은 제가 처음으로 만나는 저자입니다. 어떤 저자인지 어떤 책을 써왔는지 배경지식이 전무한 상태에서 마주하자니 독해가 수월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묘한 끌림은 있었습니다.

저자가 역사를 이야기하는 방식은 기존의 픽션(fiction) 서사 구조를 따르지 않습니다. 역사적 사실(fact)에 상상력(fiction)을 더한 팩션faction이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논픽션(nonfiction)은 더더욱 아닙니다. 저자는 스스로 소설이 확실하다며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이 소설은 보지 못한 것에 대한 증언이다. 자료를 토대로 정웰링턴의 삶과 감정, 생각에 대해 상상했고 이야기를 덧붙였다. 나는 무엇도 추리하지 않았다. 진실을 밝히거나 진실에 다가가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그들의 속내를 짐작하거나 그들이 되어보려고 노력하지도 않았다. 소설 속에 나오는 인물들의 말과 생각은 흩어져 있는 자료와 이미지, 텍스트가 나와 나의 경계를 경유해서 씌어진 것이다. 이 이야기를 쓰기로 결심했을 때 원했던 것은 그들을 생각하는 것이었고 그들을 통해 생각하는 것이었다.

사실 우리는 누구나 둘 이상의 집단에 동시에 속한 경계인의 삶을 살아갑니다. 아이도 아니고 어른도 아닌 사춘기를 살고, 진보도 아니고 보수도 아닌 시민으로 살기도 합니다. 자립을 위해 전공을 고심하고 여러 직장을 전전하는 것도 경계인으로 사는 것입니다. 직장과 가정, 연인과 애인, 본가와 처가, 시가와 친정, 상사와 부하 사이에서 우왕좌왕하며 사는 것도 역시 경계인으로 사는 것입니다.

게다가 간혹은 이사할 곳을 찾아 이곳저곳을 지치도록 쏘다녀야 하고, 병이 들면 절박하게 이곳저곳을 알아보며 헤매기도 합니다. 생의 끝자락에서는 요양원과 요양병원 두 곳 모두에서 퇴짜를 맞는 가련한 처지에 놓일 수도 있습니다. 이렇듯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넓은 의미의 경계인으로 일상을 살아가고 있고 살아가야 합니다. 경계인의 삶은 누구에게라도 만만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소설 속 등장인물들이 경계인으로 살았다고 해서, 특별나거나 불운하게 보지는 않으려고 합니다. 다만 조선말기, 일제 강점기, 대한민국 건국과 육이오 전쟁을 지나온 앞선 세대들의 경계인으로서의 삶을 그대로 지켜보렵니다. 오늘날 코로나 정국에서 역시 경계인으로서 살아 가고 있는 우리들이니 말입니다. 책은 20세기 초 급부상하고 있던 공산주의 사상에 매료되어 북한을 신봉하다가 버림을 받았던 경계인들의 삶을 제시하고 나열하고 연결합니다. 거기에 저자의 사유를 곁들이며 소설은 전개됩니다

저자의 책 쓰기는 사진 읽기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눈이 크고 슬픈 아름다운 청년의 사진에 붙들려, 사진의 주인공 정웰링턴의 생애를 추적하고 추리합니다. 저자는 정웰링턴의 삶을 순차적으로 차근차근 보여주는 친절을 베풀지 않습니다. 저자의 불친절에 독자들이 반발할까봐 미리 방어라도 하듯 소설 말미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한 것을 발견했습니다. ,, 그저 웃고 말았습니다.

버지니아 울프는 순차적이지 않은 기억과 생각들이 비처럼 쏟아져 내리는 소설을 쓰고자 했다.  

저자가 자신의 지식, 정보, 사유들을 마구 쏟아내면 독자들은 그것들을 주워 담으며 정돈하고 간추려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독해가 시작될 수 있습니다. 저자는 덜 부지런해도 되고 독자는 더 부지런해야 합니다. 저자는 자신이 알게 된 지식과 정보들을, 전형적인 소설 구성으로 공들여 빚어내는, 그런 창작을 하지 않습니다.그건 아마 자신이 섭렵한 배경지식들이 워낙 방대하다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 같습니다.저자는 정보와 사유의 양을 주체할 수 없다보니, 기존 소설 구성의 틀에 맞추기가 버거웠을 법합니다.

저자의 책을 단 한 권만 읽은 독자로서 미숙한 견해를 풀어놓자니 부끄럽습니다. 정지돈 젊은 저자는 이미 하이퍼링크식 읽기에 능숙한 세대입니다. 그러니 쓰기가 하이퍼링크식으로 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클릭하면 바로 다른 정보와 지식으로 넘어가면서 끊임없이 연결되고 이어지는 하이퍼링크식 읽기와 쓰기는 젊은 저자에게는 자연스러운 읽기 쓰기 방식일것입니다. 그렇지만 전형적인 소설에 길들여 있는 독자에게는 저자의 소설이 자폐적으로 보일 수도 있고 즐기기 또한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이퍼링크식 읽기가 우리의 일상을 파고든지 오래되었으니 저자의 소설을 수월하게 독해하는 독자층이 점점 늘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 전망해봅니다.

저자는 떠오르는대로 ,쓰고 싶은 대로, 생각나는대로, 써지는 대로, 두서없이 이야기를 전개하더라도 독자는 클릭하며 하이퍼링크를 따라가듯 읽으면 됩니다. 퍼즐 맞추는 재미가 있습니다. 퍼즐은 처음에는 막막하지만 어느 시점을 지나게 되면 척척 즐길 수 있습니다. 저자의 소설입구는 퍼즐 맞추기의 처음처럼 만만하지 않았습니다. 전형적인 소설에 익숙한 독자인 저로서 소설의 초입에서 꽤 많이 서성거려야 했습니다. 과거 현재 미래가 제멋대로 오락가락하고 여러 인물들의 등장과 퇴장이 자유로워서 상당한 기억력을 요했습니다. 게다가 역사적 지식과 저자의 사유가 혼재되어있어 그 경계를 가리느라 집중해야 했습니다.

비로소 30쪽 정도에서 무난하게 안착함으로써 책의 세계에 진입할 수 있었습니다. 전형적인 소설에 익숙한 독자답게 저는 순차적으로 정웰링턴의 생애를 대충 재구성해 보려고 합니다. 제가 이해한 만큼, 이해한대로 재구성할 수밖에 없으니 완벽하거나 완전한 것은 아님을 미리 밝힙니다.  

정웰링턴은 1927년 하와이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어머니 현앨리스가 임신을 한 채 조선을 떠나왔기 때문입니다. 정웰링턴의 아버지는 일제강점기 조선에 그대로 살았습니다. 역관이었던 외할아버지 현순으로 인해 그 가족들은 조선 밖의 세계에 대해 두려움이 덜했을 듯합니다. 당시 미국은 아메리칸 드림을 표방하는 꿈의 나라 기회의 나라였습니다. 거기다가 공산주의 사상이 세계를 강타하고 있을 무렵이었으니 어머니 현앨리스와 아들 정웰링턴은 꿈을 붙들고 꿈에 매달려 미국에서 살았을 법합니다.

정웰링턴은 자라면서 자연을 직접 체험하는 것을 내켜하지 않았습니다. 자연에 대해 생각하기를 좋아했습니다. 미국에서 황인종으로서 현실을 직접 경험하는 것이 고역이었기에 그랬을까요? 단지 즐거운 상상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었을까요? 신봉하고 있는 꿈의 실체가 무너지는 것이 두려워서였을까요? 어쨌든 정웰링턴은 어려서부터 꿈과 현실의 경계를 넘나들려고 하지 않습니다. 꿈과 상상으로만 치우치려고 합니다. 그 상황을 책은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는 하와이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물과 친하지 않았다. 물을 바라보는 건 좋지만 물에 들어가는 건 싫었다. 숲을 바라보는 건 좋지만 숲에 들어가는 건 싫었다. 그는 신들의 정원이라 불리는 자연에 대해 생각하는 게 좋았다. 생각하고 말하고 글을 쓰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만성적이고 일상적인 노예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상상하는 것이다.  

10대 고교생 정웰링턴은 레닌이 쓴 [제국주의, 자본주의의 최고 단계]라는 책을 읽고 레닌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정웰링턴은 미국 교회를 다니며 친분을 쌓았고 미국 공산당에 가입하여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는 교회와 공산당 둘 모두가 자신에게 선사해 줄 천국과 유토피아 꿈을 신봉하면서 소련의 부패를 외면하고 레닌을 지지했습니다. 스탈린을 비판한 흐루쇼프에게서 새로운 희망을 발견했습니다. 공산주의 사상에 깊이 경도되어 가는 소년 정월링턴에 대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진단합니다.

소년 정월링턴은 모든 것을 말할 수 있었다. 말할 수 있다는 것은 아는 것이 없다는 뜻이다. 알게 되는 순간 할 말이 없어진다.  

이 부분을 인용해 쓰면서 정부 측근의 어떤 인사가 떠올랐습니다. 그 유명 인사는 시시때때로 요리조리 말 바꾸기를 청산유수로 읊어대는 달변가입니다. 인성이 마치 마비라도 된 듯 뻔뻔하게 우리들을 갖고 놀 때면 그 얍삽한 잔꾀가 빤히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교활한 저명 인사를 추종하는 선량한 이들이 많은 것이 의아스럽습니다. 그것은 아마 그 사람의 치사한 행위를 읽기 보다는 노련한 말솜씨에 홀리기가 더 쉽기 때문일 것입니다. 마르크스 그 당사자의 일상과 행위에 주목하지 않고 마르크스주의라는 이론과 언어에 빠지게 되는 것도 이와 같지 않을까, 싶습니다.

정웰링턴은 18(1945)에 뉴욕, 21(1948)에 파리를 거쳐, 22세에 체코 프라하에 도착했습니다. 1948년 프랑스 파리에서 샀던 잡지를 14년 후에 태우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죽습니다.

20대 초반의 청년 정웰링턴은 우리나라가 한참 건국의 무질서한 혼란기를 겪고 있을 때 프라하 의과대에서 공부를 합니다. 그때 미국에서 함께 공산당원의 교육을 받았던 선우학원을 만납니다. 선우학원은 무조건적으로 소련을 지지하는 웰링턴의 말에 반론을 제기하고 미국을 옹호하기도 했습니다. 선우학원은 마르크스와 멀어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선우학원과 정웰링턴의 미묘한 관계에 대해 책은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습니다.

정웰링턴은 선우학원의 나약함에 실망했다. 행동해야 할 때와 생각해야 할 때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은 변절자의 특징이다. 그는 선우학원에게 때때로 화를 냈고 확인되지 않은 소련의 부패에 대한 제국주의자들의 언론 플레이에 놀아나선 안 된다. 우리는 믿고 기다려야 하며 힘을 합쳐야 된다고 말했다.

정웰링턴이 선우학원을 나약하게 평가했던 것은 그 무렵 선우학원과 대조되는 인물 김강을 만났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김강은 분명한 목표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목표는 이승만 정권의 타도와 미 제국주의 타도였습니다. 정웰링턴이 20대 초반 의대에서 벙어리 취급을 받으며 차별과 싸우고 있을 때 김강을 우러러보는 부분을 옮겨봅니다.

그는 운동을 좋아했고 기독교 문학을 열심히 읽었고 경기장에서 권투시합을 빼놓지 않고 봤다. 그의 사고 안에서 모든 혁명은 필연적이었으며 그것 말고 가치 있는 일은 존재하지 않았다.

김강은 지금이 가장 중요한 시기라고 했다. 우리에게 민족의 명운이 걸려있다고 말했다. 김강의 이야기는 멈추지 않는 조류처럼 한번 흐름을 타면 지평선 너머까지 나아갔고 그것이 원대한 꿈인지 망상인지 정신이 아득해졌다. 김강의 연설은 길고 같은 말의 반복이었지만 정웰링턴은 지겹지 않았다. 같은 말 위로 같은 말이 올라타며 점점 높은 파고를 이루었고 거세게 흔들었다.

하와이 노예 출신의 동양인 이민자 의사로서 미국인들의 병간호나 하면서 살 건지, 차별과 국경이 존재하지 않는 인터내셔널의 일원이 되어 새로운 종을 탄생시킬 연구에 매진할 것인지 선택해야 했다.

정웰링턴이 24세가 되던 1951,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그때 프라하 카페에서 중년 남자 미스터 루다가 정웰링턴에게 접근합니다. 그는 담배를 선물하면서 친구이야기, 대학교에서 들은 이야기, 미국에서 들은 이야기를 해주라는 부탁을 합니다. 정웰링턴이 공산주의자가 진정 맞다면 공산주의의 번영을 위해서 협조하라는 것이었습다. 미스터 루다는 비밀경찰이었고 정웰링턴은 이때부터 감시에서 벗어날 수 없는 생활로 접어들게 됩니다. 간첩활동은 이렇게 하여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정웰링턴의 어머니 현앨리스와 박헌영은 1955년 북한에서 처형되었습니다. 정웰링턴이 28세 되던 해입니다. 정 웰링턴이 10대 시절 미국 LA에서 김강이 신문을 편찬했을 때 어머니 현앨리스는 신문의 주요 필진이었습니다. 정웰링턴은 그 신문의 열렬한 애독자였습니다.

어머니 현앨리스는 미국의 스파이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공산주의를 신봉하고 추종한 그녀는 북한에서 스파이로 판결 받고 처형됐습니다. 현앨리스는 진짜 혁명가이자 북한의 명령을 따르는 북한의 스파이였습니다. 책은 정웰링턴의 외삼촌이자 현앨리스의 남동생인 현피터를 등장시켜 다음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

누이는 하와이 상하이 도쿄 서울을 제집 드나들 듯 오갔는데 매번 이름도 바뀌고 남편도 바뀌고 하는 일도 바뀌었다. 현피터는 자신과 누이가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고 믿었고 나라를 구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현앨리스는 북한에서도 미국에서도 간첩이라고 했으니 경계인이 분명합니다. 박헌영은 남한의 단독정부수립을 반대한 공산주의자입니다. 자본주의를 지향하는 남한에서 공산주의 활동을 주도했으니 박헌영 역시 경계인이었던 셈입니다. 그들은 공산주의를 지나치게 순수하게 신뢰했기에 북한 정치 권력에 의해 제거되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195629세 정웰링턴은 체코 여자 안나를 연구소에서 만나게 됩니다. 이상주의자 정웰링턴과 회의주의자 안나였지만 두 사람은 결혼하게 됩니다. 안나가 회의주의자처럼 믿음도 기대도 없는 삶을 지향했던 것은 연구소의 또 다른 동료 이지의 영향이 큽니다. 이지의 아버지는 마르크스주의자였으며 10월 혁명 때 모든 것을 자진 반납했지만 오해한 농민들에 의해 살해당했기 때문입니다.

정웰링턴은 필연을 지지했고 안나는 우연을 지지했습니다. 그러니까 정웰링턴에게 진화는 생명체의 필연적 속성이었지만 안나에게는 불완전성으로 일어나는 우연적 사건이었던 셈입니다. 그렇지만 안나는 무력한 불완전성보다 이상을 품고 살아가는 정웰링턴에게 이끌려 결혼을 결심하게 됩니다. 정웰링턴이 우연이 아닌 필연을 지지한 이유에 대해 책은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습니다.

정웰링턴은 우연을 세계와 생명의 근본 원리로 볼 수 없었다. 그와 가족의 삶은 의지적인 삶이었다. 의지적인 삶이 우연의 작동에 의해서 파멸로 이어졌다는 말은 의지의 무의미함을 의미했고, 그건 곧 자신과 가족의 삶이 무의미함을 뜻했다.

정웰링턴은 195730세가 되던 해에 안나와 결혼을 합니다, 바로 그 해 정웰링턴은 비밀경찰에게 전경준 송안나부부에 대해 보고를 했습니다. 다음 해 그들 부부는 북한 입국과 동시에 연락이 두절됐습니다. 그 상황을 책은 다음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

송안나에게 말하고 싶었다. 어머니는 처형당했고 당신들도 북한에 가면 그꼴이 날 거라고, 미국으로 돌아가서 인권 단체에 호소하거나 공산주의나 자본주의 어느 곳의 힘도 미치지 않는 곳에 가서 숨어 살라고, 그러나 정웰링턴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북한이 히스테릭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단지 입국 절차일 뿐이라고 걱정말라고 했다.

정웰링턴은 미국시민권을 포기하고 체코시민권을 요청했다. 수락되었고 비밀 경찰 미스터 루다는 꽃다발을 보냈다. 정웰링턴의 내면에서 한 가지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안나를 판 대가로 안나를 얻었다. 그러니까 두 안나 모두에게 죄를 지은 거라고. 안나와 함께 살기를 결심한 일련의 선택과 순간들은 다른 곳으로 건너가기 위한 시도였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길을 건넜지만 건너간 곳은 존재하지 않았고 원래 있던 곳은 재가 되어 사라졌다. 모든 시도는 무산되었고 그는 어디에도 도착하지 못했다.

정웰링턴이 31세가 되던 1958, 딸 타비타가 태어났습니다. 다음 해 1959, 귀화 선서를 했습니다. 미국 국적을 버리고 체코 국적을 획득했고 체코인 가족을 이루었으며 비밀경찰의 감시도 중단됐습니다.1962년 독일과 국경이 가까운 헤프 시립병원 소장으로 임명됐습니다. 가족들은 병원 인근의 아파트로 이사했습니다. 안정 단계에 접어들었습니다. 그러나 1년 후 196336세에 병원 해부실에서 독극물을 삼키고 자살하고 맙니다.

시립병원 소장으로 임명된 1962, 비밀 경찰 루다가 나타나 젊은 시절의 우상이던 김강을 사찰하라고 지시했습니다. 미국에서 공산주의 활동을 하다가 추방당한 김강 부부는 북한으로 들어갈 예정이었습니다. 당시의 정웰링턴의 속내를 책은 다음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

나는 어릴 때 김강을 만났고 그는 우리 집안의 사람들과 잘 안다. 나는 북한에 가는 것이 옳지 않은 결정이라고 말할 것이다.

어머니가 북한에서 처형됐고, 비밀경찰은 자신을 협박하고 있으며 안나와의 결혼 생활은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말해야 할지 고민했다.

그러나 그는 속내를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았습니다. 두려움과 혼란스러움을 드러낼 수조차 없었습니다. 자신이 감시당하고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감옥살이에 처해있는 그를 아무도 몰랐습니다.

36세의 정웰링턴은 서가에서 책을 꺼냅니다. 14년 전 파리에서 샀던 잡지 입니다. 공산주의에 대한 원대한 꿈을 품고 설레던 20대 초반의 젊은 정웰링턴이 그려집니다. 우리나라가 건국의 몸살로 혼란을 겪고 있었던 1948년 정웰링턴은 미국을 떠나 파리를 거쳐 체코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북한의 번영을 위해 변절하지 않고 줄곧 은밀하게 일해 왔습니다. 하지만 그는 파리에서 샀던 그 잡지를 14년 만에 태우면서 품었던 꿈을 재로 만듭니다. 꿈이 재가 되는 광경을 담담하게 지켜보면서 정웰링턴은 다음과 같이 반추합니다.

예전에는 그렇게 믿었다. 공산주의는 국경과 인종, 성별과 나이를 뛰어넘는다. 자본주의는 반대다. 자본주의는 상이한 욕망과 먹이로 성장하고 국경과 인종, 성별과 나이를 나누고 계급을 형성한다. 그러나 이제 모든 게 변했고 이러한 변화를 설명할 수 없었다. 세계가 변한 건가? 내가 변했나?

정웰링턴은 자본주의에 비해 우위를 점했던 공산주의에 대해 의심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변절을 의미합니다. 변절은 죽음을 초래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자가 표현한 다음과 같은 문장에서는 아, 그렇구나, 신음을 토하며 공감했습니다.

한국전쟁 이후 한국의 공산주의자는 모두 죽었다. 남한의 공산주의자는 월북하거나 살해됐고 전향했으며 북한의 공산주의자는 숙청됐고 처형됐고 유배됐다.

그래도 정웰링턴은 6.25전쟁이 끝나고 나서 10년 동안이나 더 공산주의자로 살았습니다. 그런 그가 1963년 공산주의 대한 꿈을 완전히 재로 만들고 맙니다. 정웰링턴이 꿈을 접은 이후에도 남한의 젊은이들은 여전히 꿈을 품고 살았습니다. 정웰링턴이 죽은 지 60년이 지나도 줄기차게 북한에 대한 기대와 미련을 버리지 못한 채 짝사랑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북한은 공산주의를 신봉하는 사람들을 순순히 환영해 주지 않을까요? 그건 아마 자본주의 병폐를 조금이나마 희석시킨 북한의 공산주의 국가적 훌륭한 면모를 자신만만하게 보여줄 수 없기 때문에 그 파장이 두려운 게 아닐까, 싶습니다.

저자는 북한을 사모했던 이들의 20세기 흔적들을 찾아 접속하고 연결하며 나열했습니다. 역사 지식을 하이퍼링크시키듯 문학화했습니다. 그래서 이번 책맛보기의 제목은 다음과 같이 정해 보았습니다. 제목이 길어지고 말았습니다.

제목은 '공산주의를 신봉한 엄마와 아들이 첩자가 된 경계인이 된 역사를 하이퍼링크 시킨 문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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