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블로그 전체검색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도서]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에릭 와이너 저/김하현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리틀도서관 매주한권 휴먼터치 https://youtu.be/swO50rfN61s

 

이번에 책맛보기하는 책은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입니다. 저자는 에릭 와이너입니다. 저자가 엄선한 열네 명의 철학자의 행적을 다룹니다. 기원전부터 20세기까지의 시간대 중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한평생을 부여잡고 기필코 살아낸 인간들을 만나고 그 사유를 만납니다. 그것은 저절로 동양과 서양을 아우르는 실감나는 전 세계 여행이 됩니다. 고매한 철학과 고상한 철학자들 속에서 인간의 허물과 고통을 직시할 수 있었습니다. 책은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저의 삶의 방향과 태도의 지침을 마련하는 데 적잖은 보탬이 되었습니다.

 

책날개에서 책을 소개하면서 철학자에게 조언을 구하라고 유혹합니다. 호락호락하지 않은 인생을 제대로 살아내기를 바란다면 말입니다. 인생의 쓴맛을 이미 맛본 경력의 소유자들은 책을 펼치게 될 것도 같습니다. 책소개를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철학자들을 만나러 떠나는 여행기이자, 그들의 삶과 작품 속의 지혜가 우리 인생을 개선하는 데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 답을 찾아가는 책이다.

 

저자에게 철학은 문헌을 통해 머리로만 공부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철학을 향해 몸소 몸을 움직여 다가갔습니다. 철학을 현장에서 직접 체험하기로 한 셈입니다. 그 점이 이 철학 책을 독특하게 합니다. 저자는 철학에 머리만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아챕니다. 궁극에는 마음보다 신체에 최고의 지혜가 담겨있다는 것을 깨우치기도 합니다. 저자는 철학의 실용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힙니다.

 

고대 아테네 시절에는 철학이 곧 자기 계발이었다. 그때는 철학이 실용적이었고 철학이 곧 심리 치료였다. 영혼을 치료하는 약이었다. 철학은 스파보다는 헬스장에 더 가깝다.

디지털 기술이 삶의 커다란 질문에도 쉽게 답해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철학은 새로운 렌즈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게 도와주고, 바로 거기에 큰 가치가 있다. 과학 기술은 현재 중병을 앓고 계신 칼 삼촌을 찾아뵐지 말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저자는 자신을 끈질기게 따라다닌 우울증을 치료하기 위해 몇 년 동안 다양한 방법을 시도했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우울증을 완전히 해소할 수는 없었나 봅니다. 그런 와중에 철학책에서 느껴지는 열정을 발견하고는 철학 열차에 몸을 싣습니다. 그러니 저자에게 철학은 막연한 관념 놀이가 아니었던 셈이었습니다. 저자는 실용적인 목적을 분명히 갖고서 철학과 철학자가 머물렀던 자리를 찾아 떠납니다. 그리스 일본 독일 프랑스 스위스 등 거침없이 절박하게 그 곳을 향합니다. 이 여행에 대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밝힙니다.

 

언제 어디서든 가능할 때마다 기차를 탔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상가들이 사색에 빠진 곳을 여행했다. 이 여행들은 철학의 막간에 있는 인터미션, 내 다리와 정신을 스트레칭 할 수 있는 기회였다.

수백, 수천 명의 철학자 중에 열네 명을 선택했다. 이 열네 명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지혜롭다. 이들 철학자들은 신체를 가진, 활동적인 존재였다. 트레킹을 하고 말을 탔다. 전쟁터에서 싸우고 와인을 마셨으며 사랑을 나누었다. 한 명도 빠짐없이 실용적인 철학자였다. 그들의 관심은 삶의 의미가 아닌 의미 있는 삶을 사는 데 있었다. 그들은 완벽하지 않았다. 여러 자잘한 결점이 있었다.

 

책은 철학자도 우리와 다르지 않는 인간 중의 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려줍니다. 많은 철학자의 발자취를 추적하는 저자 역시 결국 인간 중의 한 명임을 보여줍니다. 따라서 책을 읽으면 우리도 그저 인간 중의 한 명으로서 주어진 한평생을 살아가면 된다는 위안이 저절로 생겨나게 됩니다. 철학자도 저자도 독자도 그저 인간으로 살아내야 하는 생애가 있다는 점에서 동등했습니다. 그들은 우리였고 나였던 것입니다.

 

책은 철학보다 철학자의 일상을 도드라져 보이게 합니다. 책은 맨 먼저 늦잠 자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를 등장시킵니다. 힘 있는 권력자도 주어진 인생을 살아내기 위해 철학에 기대는 모습으로 읽혀집니다. 로마 황제 마르쿠스는 제국을 지배했습니다. 그는 전쟁터에서 불굴의 용기를 보여주었지만 타고난 비관주의를 억누르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고 합니다. 대제국의 황제 마르쿠스가 어쩐지 안쓰러워집니다. 그가 철학을 가까이 했던 이유가 어렴풋 짐작됩니다.

 

늦잠 자는 자신의 이기심을 스스로 비판하는 마르쿠스에 대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

 

그가 쓴 [명상록]에는 침대에서 나오기가 힘들면...”이라는 문구로 시작하는 글이 많다. 마르쿠스는 스스로에게 생각을 그만두고 행동에 나서라고 누차 촉구한다. 좋은 사람에 대해 설명하는 것은 관둬라. 실제로 좋은 사람이 되어라.

 

사실 [명상록]은 책이 아니다. 혼자 보려고 쓴 자기 계발서이다. 훈계다. 독촉과 격려 모음집이다. [명상록]은 마르쿠스가 상담가 역할도 하고 환자 역할도 하는 심리 상담이다.

 

지금처럼 침대에서 빈둥거리는 것은 오로지 나 자신만 생각하는 것이다이불 아래 남아 있는 것은 결국 이기적인 행동이다. 이러한 깨달음이 마르쿠스를 움직이게 한다. “새벽에 침대에서 나오기가 힘들면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하라. ‘나는 한 인간으로서 반드시 일해야만 한다’” 황제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

 

책은 황제가 우리와 같이 몸을 지닌 인간임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이처럼 책은 고상한 철학자를 만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비슷한 열네 명의 인간을 만나도록 해줍니다. 그들의 구체적인 일상 속에서 따라 해보고 싶은 실천거리들을 챙겨보는 것도 재미났습니다. 철학자의 삶에서 본받고 싶은 것들에는 이를테면 공자처럼 상대를 배려하며 음식을 천천히 맛있게 먹기’, ‘몽테뉴처럼 고대 그리스인처럼 와인에 물을 타서 마시기와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저자는 소크라테스를 언급하는 부분에서도 철학의 실용성을 강조합니다. 그 부분을 옮겨봅니다.

내가 메타포의 땅 그리스에 온 것은 소크라테스가 걸었던 곳을 걷고 소크라테스가 들이마셨던 공기를 들이마시기 위해서다. 나는 소크라테스가 관념이 아닌 피와 살을 가진 인간이었다는 사실을 스스로에게 상기시킨다.

시장터인 아고라는 소크라테스가 가장 즐겨 출몰한 곳이었다. 아고라는 행상과 좀도둑, 온갖 사람들로 붐비는 냄새 나는 공간이었다. 소크라테스는 그게 좋았다.

철학은 삶, 우리 자신의 삶에 관한 것이고, 어떻게 하면 이 삶을 최대한 잘 살아내느냐에 관한 것이다. 철학은 실용적이다. 소크라테스에게 철학과 대화는 사실상 동의어였다. 소크라테스는 온갖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저자는 루소가 싫어했던 작은 마을로 향하는 기차를 타기도 하고, 루소가 살면서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냈던 장소를 찾아 나서기 위해 또 다른 기차를 탑니다. 과거의 철학자를 최대한 가까이에서 만나 체험하기 위해 집을 나섭니다. 저자가 만난 루소는 다음과 같습니다.

 

무엇보다 루소는 산책자였다. 그는 자주 걸었고, 혼자서 걸었다. 루소는 하루에 30킬로미터 이상을 걷곤 했다. 제네바에서 파리까지 2주 동안 걸은 적도 있었다. 루소에게 걷기는 숨쉬기와 같다. 루소는 더 이상 도망치거나 무언가를 찾거나 철학적 주장을 하기 위해 걷지 않았다. 그냥 걸었다. 루소는 아침 산책에서 돌아온 뒤 쓰러져 사망했다. 루소는 행복하게 죽었다.

신체와 분리된 철학자, 신체와 분리된 철학은 존재하지 않는다. 철학적 사고는 정신뿐만 아니라 몸으로 하는 것이다.

루소는 열성적인 산책자였지만 영웅적인 산책자는 아니었다. 티눈 때문에 아주 천천히 걸었다. 루소는 그저 그 어떤 판단도 기대도 없이 걸었다. 이렇게 걸을 때 우리의 경험은 성스러운 것에 가까워진다. 가장 느린 이동 형태인 걷기는 더 진정한 자기 자신을 만날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이다. 걷기는 움직임 속의 성전이다.

 

저자는 자신만의 월든을 찾으시오. 직접 만든다면 더더욱 좋고라고 말한 소로를 아침형 인간으로 소개합니다. 소로는 이상한 말을 했습니다. ‘더 잘 보려면 손을 움직여야 한다’.고 말입니다. 소로는 눈이 아니라 손으로도 볼 수 있는가 봅니다. 저자는 소로를 일러, 인도와 중국의 문헌을 처음으로 파고든 서구 철학자 중 한 명이라며 그의 일상을 다음과 같이 우리들에게 보여줍니다.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와 달리 소로는 아침형 인간이었다. 소로는 새벽 호수에서 목욕을 한 후 자신의 아침 일과인 읽고 쓰기에 착수했다. 매끈하지 못한 일기를 수정하거나 책의 한 챕터를 다듬었을 수도 있다. 종이 위에서 움직이는 손의 감각은 간헐적 요가 수행자였던 소로에겐 일종의 명상과 같았다. 보통 오후에는 매일매일 소로는 콩코드 교외를 걸었다. 소로는 하루에 7킬로미터를 걸었다.

 

저자는 인간의 목소리는 자연 최고의 거짓말 탐지기라며 진실 여부를 판가름할 수 있다고 합니다. ‘쇼펜하우어처럼 듣는 법이라는 제목의 챕터에는 매일 저녁 어김없이 인도의 옛날 책 [우파니샤드]를 몇 문단씩 읽은 쇼펜하우어를 소개합니다. 소리 내어 읽었을까? 마음속으로 읽었을까? 궁금해집니다. ‘듣기에 남다른 일가견을 가진 쇼펜하우어라면 자신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소리 내어 읽지 않았을까, 상상해 봅니다. 저자가 다음과 같이 쇼펜하우어의 일상을 엿보게 해줍니다.

 

쇼펜하우어는 매일 정오가 되기 직전 애정을 담아 플루트를 불었다. 쇼펜하우어는 로시니의 모든 음악을 플루트를 연주할 수 있도록 편곡했다. 쇼펜하우어는 이렇게 말한다.

듣기는 연민의 행위, 사랑의 행위다. 귀를 빌려주는 것은 곧 마음을 빌려주는 것이다. 아무런 판단 없이 음악을 들을 때 절대적 행복을 느낀다. 음악 외의 다른 예술은 그림자를 이야기할 뿐이다. 천국에 음악이 있으리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세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해도 음악은 존재할 것이다

 

저자는 쾌락을 말한 에피쿠로스를 향락주의자가 아닌 평정주의자로 소개합니다. 에피쿠로스만큼 크나큰 오해를 받고 부당한 비난을 받은 철학자는 없다면서 말입니다. 저자가 아테네에서 에피쿠로스를 만나고 있는 부분을 옮겨봅니다.

 

장소는 생각의 보고다. 그래서 내가 여행을 하는 것이며, 그래서 지금 에피쿠로스와 그의 정원의 흔적을 찾아 아테네에 와 있는 것이다.

 

에피쿠로스는 인간의 신체에 최고의 지혜가 담겨 있다고 믿었다. 에피쿠로스는 오로지 우리의 감각만을 통해 세상을 알 수 있다고 믿었다. 에피쿠로스는 자신의 감각을 갈고 닦았다.

그는 충분히 가진 사람들을 보았다. 그런데 왜 그들이 행복하지 않을까? 에피쿠로스는 이 미스터리에 접근했다. 에피쿠로스는 우리가 가진 것이 아니라 우리가 즐기는 것이 우리를 풍요롭게 한다며 아주 적은 양의 치즈만으로도 소박한 식사를 성대한 만찬으로 바꿀 수 있다고 말한다.

무언가를 진정으로 받아들이면 감사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에피쿠로스 철학은 수용의 철학이자 감사의 철학이다.

 

저자는 관심이라는 단어에 사로잡혔던 철학자 시몬 베유를 만나기 위해 영국의 와이 기차역을 찾습니다. 그 기차역은 시몬 베유와 참 잘 어울리는 것 같았습니다. 작은 마을의 일상을 따뜻하게 상상하도록 책은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습니다.

 

영국 와이 기차역은 아름답다. 잘 꾸민 오두막 같은 이 소박한 목조 건축물은 마음 따뜻한 공동체의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작은 게시판에는 다음 주 목요일에 지역 독서모임이 열린다며 감자 샐러드나 스콘을 조금 가져오면 좋을 것이라는 내용이 붙어 있다.

 

저자는 지금 이 순간에만 마음을 쏟고 미래의 보상에는 무관심하게 사는 것이 가능할까?’라는 의문을 제기하며 시몬 베유를 만납니다. 베유와 함께 했던 저자의 사유를 인용해봅니다.

 

무언가에 온전한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은 그의 노력이 눈에 보이는 결실을 맺지 못한다 할지라도 진전을 이룬 것이라고 베유는 말한다. 관심에 대해 깊이 고민한 이 철학자는 자신에게 관심이 쏟아지는 것은 원치 않았다. 관심은 제멋대로 퍼져 나간 베유의 철학과 삶을 하나로 묶어주는 끈이었다. 베유는 중국의 기근 소식을 듣고 눈물을 왈칵 터뜨렸다. 베유에게 관심은 용기나 정의와 다르지 않은 미덕이었다. 관심에는 다른 이름이 있다. 바로 사랑이다. 관심은 사랑이다. 사랑은 관심이다. 이 두 가지는 같은 것이다.

 

누군가에게 시간은 주지만 관심은 주지 않는 것은 그 무엇보다도 가장 잔인한 사기다.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그걸 안다. 진정한 관심은 그 사람을 인정하고 공경해야 한다. 병원만큼 이런 관심이 꼭 필요한 곳은 없다. 의사는 환자를 치료해 주지만 절대 관심을 기울이지는 않는다.

관심을 기울이는 능력은 우리를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능력 중 하나다. 모든 눈부신 과학적 발견과 모든 뛰어난 예술작품, 모든 친절한 태도의 근원에는 순수하고 사심 없는 관심의 순간이 있다. 관심의 질이 삶의 질을 결정한다.

 

저자는 친절을 중요하게 여긴 첫 번째 철학자로 공자를 꼽고 있습니다. 공자는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남에게 하지 말라고 말함으로써 친절을 일상생활에서 실천할 수 있는 길을 알려줍니다. 공자는 우리들이 타고난 친절함을 밖으로 끌어내는 방법이 공부라고 봅니다. 공자에게 있어 식사 예절은 다름 아닌 다른 사람을 배려한 친절이기도 합니다. 공자가 일러준 올바른 식사 습관에 대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나열하고 있습니다.

 

다음은 올바른 식사 습관에 관한 예의 일부다. 밥을 둥글게 말지 말 것, 여러 반찬을 한 입에 삼키지 말 것, 국을 꿀꺽꿀꺽 마시지 말 것, 먹을 때 소리를 내지 말 것, 이빨로 뼈를 씹지 말 것, 먹던 생선을 내려놓지 말 것, 개에게 뼈를 던져주지 말 것, 먹고 싶은 것을 잡아채지 말 것, 밥을 뒤적여서 식히지 말 것, 수수를 먹을 때는 젓가락을 쓰지 말 것,

 

저자는 일본의 궁녀 세이 쇼나곤을 통해 작은 것에 감사하는 법을 논합니다. 쇼나곤은 중전의 언저리에서 중전이 바라는 일이면 무슨 일이든 수행해야 합니다. 그 좁은 세상을 나름의 철학으로 살아내는 쇼나곤도 경이롭지만 그런 쇼나곤에 주목한 저자도 경이롭습니다. 자신이 갇혀 사는 그 조붓한 터전에서 아름다움을 영위할 줄 알았던 쇼나곤에 대한 사유를 저자는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습니다.

 

쇼나곤의 세상은 매우 한정적이었다. 황궁의 벽과 신분의 벽에 둘러싸여 있었다. 결코 만만치 않은 벽이다. 좁은 세상을 쇼나곤은 아름다운 구석으로 만들었다. 쇼나곤은 삶이 수만 가지 작은 기쁨의 총합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았다. 어쩌면 삶에서 흔히 사소하다고 여겨지는 것들, 작은 것들의 위대한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할 수도 있다. 어쩌면 구원은 보기보다 가까울 수 있다.

세이 쇼나곤은 그 어떤 철학 개론서에서도 그 이름을 발견할 수 없다. 철학자의 일이 사물을 다른 방식으로 보여주는 것이라면 쇼나곤은 확실히 철학자다. 철학자의 일이 삶을 더욱 좋아하도록 만드는 것이라면 쇼나곤은 철학자다.

쇼나곤이 찬미하는 많은 물건은 오래되고 낡았으며 심지어 더럽다. 쇼나곤은 정성들여 관리한 연못보다 버려져서 수초가 잔뜩 떠 있는 연못을 더 좋아한다. 그런 연못에서는 표면에 반사된 달빛 그림자가 초록색 사이사이로 하얗게 빛난다. 이런 불완전함을 향한 사랑을 일본인들은 와비라고 부른다. 와비는 해진 기모노와 땅에 쓸쓸히 떨어진 벚꽃 이파리, 희곡 한두 개가 빠진 셰익스피어 전집이다. 찢어진 청바지 낡은 가죽 가방도 와비이다.

 

저에게 철학자 니체는 언제나 오리무중이며 난공불락입니다. 니체가 비상한 철학자임을 흔쾌히 인정하다가도 그의 사상과 생애가 너무나 이질적이라서 평범한 제가 감당하기에는 버겁기 때문입니다. 이론과 실제가 언제나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인정합니다. 그러면서도 니체의 말년과 그가 주창한 철학이 겉돌고 있는 범위가 너무나 크게 다가올 때면, 그 이율배반성이 저로 하여금 니체를 가까이 하기엔 먼 당신으로 여기게 합니다. 하지만 명민한 많은 사람들에게 니체는 기발한 영감을 주기도 하고 한계돌파 의지를 키워주기도 합니다. 저자는 니체를 어떻게 공정하게 만나고 있는지 인용해 봅니다.

 

나는 니체가 처음으로 영원회귀 개념을 떠올린 곳, 그 거대한 바위를 찾을 작정이다. 그 바위를 보고 만짐으로써 그날 니체가 느꼈던 것을 느낄 수 있기를 희망한다.

걷고 또 걷는다. 다리가 아프다. 그 고통에도 불구하고 바로 그 고통 때문에 걷는다. 니체라면 내가 나의 권력에의 의지를 단련하고 장애물을 극복하며 위버멘시, 말 그대로 초인에 한걸음씩 다가서고 있음을 알아차리고 기꺼워했을 것이다.

 

니체는 일상의 규칙을 간절히 필요로 했다. 그는 아침 일찍 일어나 차가운 물로 목욕을 하고 자리에 앉아 날달걀과 차, 비스킷으로 수도사처럼 아침 식사를 했다. 낮에는 글을 쓰고 산책을 했다. 저녁 7시에서 9시 사이에는 어둠 속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니체는 건강을 미덕으로 찬양한 몇 안 되는 철학자 중 한 명이었지만 본인은 건강을 거의 누리지 못했다. 니체는 여러 치료법을 시도해 보았고 매우 의심이 많았던 사람치고는 돌팔이에게 너무 쉽게 속아 넘어갔다. 니체는 육체적 질병에도 불구하고 계속, 심지어 속도를 늦추지도 않고 고집스럽게 글을 썼다.

 

다른 많은 철학자들처럼 니체도 지혜를 직접 실천하는 것보다 널리 알리는 데 더 능했다. 니체는 제때 죽어라고 말했지만 자신은 그러지 못했다. 니체는 너무 일찍, 그리고 너무 늦게 죽었다.

매독으로 추정되는 병 때문에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었던 니체는 겨우 마흔네 살이었음에도 더 이상 한 글자도 쓰지 못했다. 그로부터 10년 동안 가족들이 니체를 돌봤다. 처음에는 어머니가,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엔 여동생이 돌봤다.

 

전에 있었던 모든 일이 빠짐없이, 정확히 똑같이 영원히 반복된다. 니체는 이 생각에 영원회귀하는 이름을 붙였다. 만약 우리의 삶이 실제로 되풀이된다면 우리는 무엇을 통제할 수 있는가? 니체는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행동이 아니라 태도라고 생각했다.

똑같은 삶을 똑같은 방식으로 영원히 반복해서 살아야 한다면, 웃는 것 외에 달리 무엇을 할수 있겠는가. 더 나은 것이 있다. 춤추는 것, 춤춰야 할 이유를 기다리지 말 것. 그냥 춤출 것, 마치 아무도 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 내키는 대로 흥겹게 춤을 출 것, 삶이 행복해도 춤을 추고, 삶이 괴로워도 춤을 출 것. 그리고 시간이 다되어 춤이 끝나면 이렇게 말할 것, 아니 외칠 것, 처음부터 다시한번.

 

니체는 우리가 겪은 고난을 다시 똑같이 매번 영원히 겪는다고 했습니다. 그 고난은 바꿀 수 없지만 고난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바뀔 수 있는 여지를 남겼습니다. 고난을 대하는 태도는 에픽테토스에게로 이어집니다. 책은 에픽테토스를 통해 고난의 가치에 대해 들려줍니다. 게다가 고난을 기회로 삼으라고까지 덧붙입니다. 책은 역경에 대처하는 법에 대해 니체가 언급한 운명애와 스토아철학을 버무려서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로마의 노예였다가 철학자로 변신한 에픽테토스의 가르침은 스토아 사상의 본질을 뽑아낸 것이다. ‘어떤 것들은 우리에게 달렸고 어떤 것들은 우리에게 달려있지 않다이 문장은 스토아철학의 정수를 보여준다. 우리는 모든 것이 본인에게 달렸다고 말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대부분이 자기 통제 하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사실 우리의 통제 밖에 있다. 부도 명성도 건강도 통제할 수 없다. 본인의 성공과 자식의 성공도 마찬가지다. 내 몸도 나의 통제 하에 있지 않다.

스토아철학은 지금 가진 것을 욕망하는 법에 대해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욕망한다는 것은 지금 내게 없는 것을 바란다는 뜻 아닌가? 니체가 이 질문에 가장 훌륭하게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운명에 체념하지 마라. 운명을 그저 받아들이지 마라. 운명을 사랑하라. 운명을 욕망하라

 

저자에게는 열세 살 난 딸, 소냐가 있습니다. 소냐는 나이 예순을 목전에 둔 저자를 할아버지라고 칭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저자는 자신이 아직 늙지 않았노라며 다음과 같이 다소 귀엽게 강조합니다.

나는 확실하게 나이 든 남자가 아니라 애매하게 나이든 남자다. 젊은이보다는 늙었지만 진짜 늙지는 않았다. 중년 후반은 후반이라는 말 때문에 별로지만 노년 초반보다는 훨씬 낫다. 늙을 노라는 글자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늙지 않았다.

 

시몬 드 보부아르는 한가한 노년은 인생의 황금기라는 말에 코웃음을 쳤던 사람입니다. 그런 보부아르가 노년을 심층 탐구하여 집필한 [노년]이라는 두꺼운 책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있습니다.

노인은 가난과 노쇠, 비참함, 절망을 선고받은...... 걸어 다니는 송장이다.

 

그렇지만 저자가 보기에 그런 보부아르가 노년을 훌륭하게 수용한 사람으로 비춰졌나 봅니다. 노년을 열심히 탐구한 보부아르를 열심히 탐구한 저자가 노년을 설계합니다. 저자가 만든 잘 늙어갈 수 있는 열 가지 방법목록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과거를 받아들일 것,

2. 친구를 사귈 것.

3. 타인의 생각을 신경 쓰지 말 것.

4. 호기심을 잃지 말 것.

5. 프로젝트를 추구할 것.

6. 자신의 습관을 지배할 것.

7. 일을 멈추고 휴식 기간을 가질 것.

8. 부조리를 받아들일 것.

9. 건설적으로 물러날 것.

10. 다음 세대에게 자리를 넘겨줄 것.

 

저자는 요즘의 의료현장 모습에서 몽테뉴를 떠올립니다. 기술과 약품을 동원하여 죽음을 수용하지 않는 병실의 모습을 몽테뉴는 용납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죽는 법에 대해 다음과 같이 논지를 펼칩니다.

 

내가 죽음을 가장 가까이에서 경험한 것은 장인어른이 돌아가실 때였다. 나는 수많은 기계가 삑삑 소리를 내는 동안 모르핀을 맞아 멍해진 장인어른의 눈을 바라보았다. 장인어른을 괴롭힌 것은 완화치료가 아니라 죽음에 대한 부정이었다. 그 방에 없는 것은 바로 죽음에 대한 수용이었다.

죽음의 해결책은 더 긴 삶이 아니라 수용이다. 마지못한 수용이 아니라 완전하고 관대한 수용이다. 질병은 자연이 우리를 서서히 죽음으로 몰고 가며 죽음에 대비시키는 방법이다. ‘고통스러운 삶에서 죽음으로의 변화는 그리 잔인하지 않다고 몽테뉴는 말한다.

 

몽테뉴는 자기 저택에서 쉰아홉 살의 나이로 사망했다. 사망 원인은 편도선염이었다. 죽기 몇 시간 전 몽테뉴는 하인들을 전부 불러 모아 돈을 나눠주었다. 그의 친구는 그가 죽음을 달콤하게 맛보았다고 말한다. 우리가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공포와 더불어 욕심 때문이기도 하다.

 

책맛보기를 마무리해야 할 시점에 도달했습니다. 저자가 언급한 열네 명의 철학자 중에서 단 한명을 책맛보기에서 다루지 않았습니다. 그는 비폭력을 주창한 정치가 간디입니다. 아직은 제가 간디를 수용할 만한 그릇이 못 된다는 점을 솔직하게 시인합니다.

 

저자는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철학의 효용에 관해 언급합니다. 신호등 아래에서 대기하다가 무심코 휴대폰을 떨어뜨렸을 때의 상황에 곁들여서 철학의 가치를 상기시켜 줍니다. 그 부분을 인용하면서 책을 덮기로 합니다.

 

온 우주가 나를 괴롭히고 있다. 깨진 액정은 우울과 불안을 줄줄이 끌고 온다. 박살 난 휴대 전화는 박살 난 인생을 상징한다. 잔뜩 나온 입으로 욕을 하면서 구글에 깨진 액정을 검색하며 몇 분을 보낸다. 피를 흘린다. 그때 깜짝 놀랄 일이 발생한다. 나는 멈춰 선다.

 

역사상 가장 훌륭한 사상가 열네 명이 제시한 삶을 고양시키는 철학을 흡수하면서 몇 년을 보냈는데 왜 그들에게 기댈 생각을 하지 못했는지 의아스럽다. 내가 이 작은 위기를 헤쳐 나가는 데 철학이 도움을 주지 못한다면 이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몇 분 후 나는 예술을 본다. 금간 액정에 형태와 패턴이 있다. 언젠가 피렌체에 있는 교회에서 봤던 스테인드글라스와 닮았다. 바로 내 눈앞에 우연한 아름다움이 있다. 나의 아름답게 박살 난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고 방금 경험한 예술에 감사하면서 집으로 걸어간다.

 

뭐가 바뀌었지? 내 휴대 전화는 여전히 깨져 있다. 바뀐 것은 내가 나 자신과 나눈 대화이다. 나는 다르게 생각했고 그래서 다른 것을 보았다. 작디작은 정말 사소한 관점의 변화지만 작은 것에는 위대한 힘이, 아름다움이 있다.

 


PRID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