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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1

[도서] 토지 1

박경리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20세기 1인가족은 랑자이면서 정착인이기도 했다라는 제목으로 윤보의 삶을 잠시 살아보기로 합니다. 독거 노총각 윤보는 고독사하지 않습니다. 길 위에서 죽음을 누린 듯합니다. 대개 뭇생명들은 본능적으로 죽음을 피하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윤보는 어찌하여 죽음을 향해 다가갈 수 있었을까요? 일자무식 윤보가 평소 중히 여겼던 사람의 도리와 연관되어 있을까요? 아니면 자기 과시와 상대 무시로 자기 파멸에 이르기도 하는 나르시시스트의 전형으로 봐야할까요?

 

윤보 얼굴은 얽죽얽죽 얽어 있습니다. 천연두 전염병이 지나간 흔적입니다. 곰보 자국이 심하다 보니 험상궂어 보입니다. 그렇지만 외모 때문에 기죽는 법이 없습니다. 외모에 얽매일 줄 모르는 그의 영혼은 자유롭습니다. 못생긴 외모가 윤보에게는 상처가 될 수 없습니다. 처자식 없음도 그에게는 결핍이 아닙니다. 자신의 처지를 그대로 수긍하는 척하지 않음위선 없음은 고스란히 그의 카리스마가 됩니다.

 

처자식을 거느리지 않는 1인가족 윤보는 전국을 떠돌며 새집을 짓습니다. 그는 목재를 자르고 다듬어서 단단한 집을 짜맞춰 세우는 대목수입니다. 그에게는 허름한 오두막이긴 하지만 고향 평사리에 돌아갈 집이 있으니 정착민이면서 유랑자인 셈입니다. 윤보는 낯선 타지에서는 목수가 되고 태어난 고향에서는 강태공이 됩니다. 타지와 고향을 오가면서 넓혀진 그의 식견은 유랑자와도 다르고 정착민과도 다를 듯합니다. 방방곡곡의 낯선 사람과 별의별 사건과 관계 맺으면서 또 고향의 이웃과 우정을 다져가면서 윤보가 세상을 보는 안목은 일취월장하였으리라 싶습니다.

 

그렇지만 나룻배에서 만난 윗마을 농부는 윤보의 삶을 비정상적인 것으로 단정 짓습니다. 처자식 없이 떠도는 윤보를 절대 본받아서는 안 될 사람으로 치부하면서 말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20세기 이땅의 1인가족 윤보가 기죽을 리 만무합니다.

 

평생 계집 처신도 못하고 물 떠놓을 자식이 있다말가. 역마살이 들어서 밤낮 싸돌아댕기니께, 사람이란 한자리를 지키고 살아야.”

, 내가 살인하더나? 내가 우때서. 삼신이 맨든 이 꼬라지와 전염병이 맨들어준 곰보딱지 말곤 버릴 기이 하낫도 없지.”

 

윤보는 자신의 생일이면 부모의 은혜에 정성을 바치는 마음으로 미역국을 끓입니다. 부모의 기일에는 물을 떠놓고 제사를 올립니다. 부모에 대한 특별한 그리움이나 사랑이 애틋해서가 아닙니다. 단지 사람이라는 생명으로 태어나게 해주었기에 생일과 기일을 챙길 따름입니다. 생명을 부여해 준 창조자에 대한 자식으로서의 근본 도리라 여기면서 말입니다. 윤보에게 부모는 사랑 혹은 상처를 준 존재로 기억되지 않습니다. 부모 덕 볼 것도 없고 부모 탓할 것도 없는 셈입니다. 윤보가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동학당이 되고 의병이 되어 싸웠던 것도 그와 다름아닙니다.

 

그는 지위나 명예를 얻기 위한 욕망으로 동학당이 되어 싸운 것이 아닙니다. 신분 타파나 만민평등을 위한 명분으로 봉기에 앞장선 것도 아닙니다. 단지 이땅에 태어난 사람의 도리를 지키고자 사람으로 살고 사람으로 죽고자 그 대열에 끼였던 것입니다. 자신이 속한 무장봉기가 사람의 도리에 어긋나는 무분별한 살상이나 파괴를 하면 동조하지 않습니다. 대열에서 빠져나와 고향의 낡은 오두막으로 돌아옵니다. 여기에서 윤보의 사람다움을 보는 듯합니다. 그의 타고난 성정에는 군중의 광기에 맹목적으로 휩쓸리지 않는 어떤 절제심이 내재해 있는 것은 아닐까요?

 

제 몸 낳아주고 키워준 강산을 남 줄 수 있나라고 했던 윤보는 1908년 의병활동에서 죽습니다. 그러니 1910년부터 본격화된 일제강점기의 살벌한 삶을 경험하지 못한 채 죽은 것입니다. 길 위에서 맞이한 죽음은 어쩌면 평생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의협심이 순수했던 그에게 베풀어진 복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윤보는 이웃과 친구가 지켜보는 길 위에서 맞이한 죽음에 당당하고 안심했을 것입니다. 그의 삶이 호탕하고 의로웠으니 말입니다.

 

살아 생전 윤보는 가족이 없어도 움츠러들지 않고 호기로웠습니다. 오로지 가족만을 위해 충실하게 사는 두만아비 이평을 측은히 여길 정도로 말입니다. 이평은 자기 식구만 중히 여기니 친구도 없고 이웃도 없는 편입니다. 그런 그가 큰아들 두만이를 목수로 자립시키고 싶은 속내를 갖고서 윤보를 찾습니다. 윤보가 조만간 서울에 있는 양반집을 짓기 위해 떠날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평이 찾는 윤보의 집은 명성에 걸맞지 않게 울타리도 대문도 없는 허름한 초가입니다. 언제든 연장 망태를 둘러메고 떠나야 했기에 수고로움을 바쳐 집을 짓지 않았던 걸까요? 아니면 혼자 잠시 거처하는 집이라 굳이 단장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일까요? 이곳저곳을 유랑하듯 일하는 윤보는 자기 집에서조차 유랑자처럼 지내는 듯합니다. 한여름도 아닌데 거적을 깔아놓고 마당에 누워있다가 이평을 맞아들이니 말입니다.

 

짚세기 삼을 일이지 머하러 왔노.”

와 오믄 안 되나?”

우리 집이사 사통팔방이니께, 올 기이 머 있노. 짚세기나 삼아서 팔아가지고 계집자식 봉양 잘하라 그 말 아니가.?”

우찌 그리 밤낮 삐뚜룸한 말만 하노.”

그 재미로 안 사나.”

오면서 한조를 봤는데 팔팔한 성미에 무신일 안 저지를란가 모르겄네.”

니도 남으 걱정 할 때가 다 있나. 자기 앞만 가리고 사는 줄로 알았더마는.”

자꾸 그래싸믄 옳은 죽음 못할라?”

허 내사 보나 마나 길바닥서 죽을 기구마. 아 어디서 죽으믄 무신 상관고. 어차피 계집자식이 있어서 임종해줄 것도 아니겄고.”

누가 말리서 계집자식 못 두었나?”

니맨치로 될까봐서 안 그러나. 목매인 송아지처럼 오도가도 못하고, 그꼴이 머꼬?”

다름 아니고......우리 두만이 놈 서울 데리고 안 갈라나? 농사꾼 팔자, 이놈의 팔자 평생 가봐야 펼 날이 없고 대목 일이나 배워서 자립해서 살아보는 기이 아무래도.”

목수 팔잔 별수 있건데? ”

땅임자 눈치 살피믄서 사는 것보다는 기술 하나 있이믄 밥이사 굶겄나. 좀 부리묵다가 내비리고 오라모. 그놈이 잘못되지는 않을 기구마

 

큰아들을 윤보에게 딸려 보내고 나면 이평은 농사일이 버거울 게 뻔합니다. 그렇지만 자식의 자립을 위해 열여덟 살 두만이를 떠나보내려 합니다. 서울에 두고 와도 상관없다고까지 하는 걸 보니 두만이는 집밖에서 자립할 길을 반드시 찾을 것 같습니다. 그것도 목수 실력이 전국적으로 파다하게 소문난 윤보를 첫 스승으로 삼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처자식 없는 1인가족 윤보는 장차 처자식을 건사할 능력을 갖춰야 할 청년의 자립을 기꺼이 돕기로 합니다. 그리하여 서울로 올라갈 때 두만이와 동행하게 됩니다.

 

처자식을 먹여 살릴 필요가 없는 윤보에게 일을 맡기려면 돈만으로는 안 됩니다. 목숨을 이어가고자 구차하게 구는 법도 없으니 양반 지위를 내세워 군림해서도 윤보를 매수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 윤보가 1905년 서울로 올라가 집을 짓게 된 계기는 이러합니다.

 

윤보는 강변 언덕에 있는 집까지 못 가서 소나기를 만났다. 집 앞에 이르렀을 때 나그네 한 사람이 처마 밑에 바싹 붙어서 오종종한 꼴을 하고 있었다.

아 곰보 목수 아닌게라우?”

나그네는 반가운 듯이 말했다. 이 년 전인가, 전주에 사는 윤참봉의 집을 지어준 일이 있었는데, 나그네는 그 집 하인이었다.

그래 그 노랭이 양반은 밥 잘 자시고 잠 잘 주무시는가? 그 양반 일이라 카믄 안 할 기다.”

그러지 말란께. 우리 댁 나리께선 곰보 목수를 참말로 대단케 생각허시지라우. 솜씨 칭찬이 이만저만이라야제. 이분에는 서울인디. 친척 되는 윤감찰께서 집을 짓게 되싰는디, 우리 나리 께서 곰보 목수 칭찬을 하신 모양이라우. 그 댁은 유복허고 인심도 후하니께로......가믄 해롭잖을 것이오. 여기 노자도 가지왔이니께로.”

 

윤보는 전국 각처에 집 짓기를 원하는 사람들과 연결되면서 관계가 풍성해집니다. 윤보의 식견을 넓혀줄 이들은 도처에 널려있었던 셈입니다. 특히 그에게 집 짓는 일을 맡기는 자들은 계층과 학식이 높은 자들이었을 것입니다. 세상 바닥에서 직접 몸을 움직여 일하는 윤보가 이런저런 먹물 든 자들을 상대하면서 세상을 통찰해 가는 재미는 제법 쏠쏠했을 듯합니다.

 

서울에서 집을 짓기 시작한 그해에 일본과 을사조약이 체결됩니다. 윤보는 통곡의 도가니가 된 서울을 직접 목격합니다. 그렇지만 경상도 지방 평사리 마을에 사는 열세 살 서희는 나라를 잃은 사건에 대해 그다지 실감하지 못합니다.

 

애기씨 나라가 망했다 합니다! 대신 놈들 다섯이 들어서 나라를 팔아묵었다 합니다! 이럴 수가 있겄십니까? 모두 땅을 치고 통곡을 한다 캅디다. 충신들은 칼로 목을 찌르고 죽었다 카고요.”

울며 봉순이 말했을 때,

죽으면 무얼 해? 죽는다고 나라가 안 망하나? 충신이라는 말이나 듣자고 하는 수작이지. 그럴 바에야 왜 망하기 전에 손을 못 썼으까. 병신들 같으니라구. 초상난 것도 아니니 울지 말아라.”

태연하고 냉정했다.

 

1905년 을사조약으로 나라가 망한 것을 알게 된 평사리 마을 김훈장은 주먹을 쥐고 마룻바닥을 치며 통곡합니다.

 

망했다. 나라 없는 백성이 어디 있으며 나라 잃고 살아 무엇하겠느냐! 원통하고 분하다! 충성스럽고 의로운 선비들은 자결하니 이런 일이 어디 또 있겠느냐? 내 강토를 팔아먹는 문서에 도장 찍은 역적 놈들! 앞으로 이 나라는 어찌 될 것이며 백성들은 어디로 간단 말이냐. 세계만방이라 하건늘 도적질하는 왜적을 견제할 만한 나라는 하낫도 없었더란 말이냐.”

 

울음을 거둔 김훈장은 발걸음을 끊은 지 일 년이 넘은 최참판댁을 찾아갑니다. 조준구에게 의병활동에 보탤 군자금을 얻을 요량으로 말입니다. 조준구는 이 땅의 주권이 일본으로 넘어간 실상이 자신에게 이득이 되도록 묘책을 강구하는 터인데 말입니다. 양반 계층을 절대적 신뢰하는 김훈장은 조준구가 지체 높은 양반이라고만 생각했지 이미 친일 단체 일진회와 어울리는 친일파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입니다.

 

조준구가 거처하는 사랑방은 옛날과는 달랐다. 기방을 연상할 만큼 채색이 여기저기서, 김훈장 눈에 거슬렸다. 열 폭 병풍의 그림도 채색화였다. 돈에 아양 떠는 화공의 솜씨임이 분명했다. 주홍빛 보료 한복판에는 호피가 깔렸고 방안에는 달착지근한 향내가 풍겼다. 이윽고 조준구가 들어섰다.

 

찢어 죽일 놈들! 조약에 도장을 찍은 다섯 놈들을 밟아 죽여야 하오! ”

그네들도 그러고 싶어 했겠소. 일본은 도장을 찍은 그 사람들 아니라도 얼마든지 오적을 만들어낼 거요. 이미 우리들 힘이 미치지 못하는 대세요. 아라사를 상대로 싸워서 이긴 그네들이니까.”

참으로 부끄럽소이다. 우리 일어서야 하오. 조공? 양반인 우리가 앞장서면 마을 사람들은 다 따를 것이오. 방방곡곡 백성들이 모조리 연장들고 나선다면 무슨 수로 그놈들이 대적할 것이오?”

지금 동학당의 거두들이 어떤 줄 알기나 하시오? 동학의 접주 이용구를 말할 것 같으면 일진회 두목으로서 친일의 앞장을 선 사람이요. 손병희는 일본에 편하게 있으면서 거금을 일본 정부에 헌납하고 오로지 아라사가 거꾸러질 것을 빌었다 그 말씀이오. 동학의 졸개 놈들은 또 어떠했겠소? 개미떼처럼 몰려나와서 일본군을 도와 철도를 깔고 군수물자를 날라주고, 허 참 그런 동학이 일본하고 싸워보겠다는 그 자체가 망동이오. 서울서는 모두 김생원만 못해 도장을 찍었겠소? 어리석은 말은 집어치우시오. 누굴 망해 먹으려고. 아 그래 내게 의병장이 되라 그 말씀이오? 개죽음을 하라 그 말씀이오? ”

 

김훈장은 일어섰다. 대문짝에다 대고 툇! 하며 침을 뱉는다. 밤길을 돌아오는 김훈장은 길섶에 주저앉는다. 고독했다. 김훈장의 행동거리 속에 군자금 한 푼 군량미 한 섬 내놓을 만한 처지가 못되는 향반들 밖에 없었다는 것은 그 자신을 위해 참으로 불행한 일이었다.

 

서울서 조준구가 얻은 정보에 의하면 일본은 치안유지에 만반태세였고 사태가 역전될 기미는 추호도 없다는 것이었으며 막강한 일본군에 대항하기에는 새 발의 피라고 생각했다. 더욱이 조준구의 마음을 편안케 한 것은 하동 고을에도 일본 헌병이 주둔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자신에게 태평성세를 가져다줄 일본에 대하여 준구는 충성심과 신뢰로 가득 차 있었고 나날은 쾌적하였다.

 

나라의 주권이 일본제국으로 넘어가는 정세는 이땅 권력 실세들의 판이 달라짐을 의미합니다. 나라는 잃어도 권력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권력은 새롭게 재편되고 추종 세력이 달라질 따름입니다. 그렇지만 제 몸 낳아주고 키워준 강산을 남 줄 수 있나라고 울분에 가득 찼을 윤보가 항쟁에 동참하지 않을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1907년에 들어서서 허수아비에 지나지 않던 고종이 퇴위하는 비극과 조선 군대의 해산은 빈사의 목숨에 마지막 칼질이었다. 대한제국의 마지막 군인들은 남대문에서 일본군과의 처참한 교전을 벌였다. 이 싸움에 서울로 일 갔었던 윤보가 뛰어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1908년 윤보는 연장망태도 없이 거지꼴이 되어 평사리로 돌아옵니다. 두만이는 진짜 서울에 두고 왔는지 혼자 돌아온 것입니다. 윤보는 의병이 되어 서울 근방을 누비고 다녔던 걸까요? 심신이 지친 채로 귀향길 나룻배에 앉으니 고향산천이 반갑게 다가옵니다. 다가왔다가 스쳐지나가는 고향 풍경은 고즈넉함 그 자체로 감개무량입니다. 눈에 익은 그 풍경에 푸욱 안기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집니다. 나라야 잃든 말든 이 좋은 고향 품에 심신을 편안하게 누이고 싶은 심사가 됩니다. 나라 잃은 백성으로서 떨쳐 일어나 싸우고 싶은 혈기도 다른 마음 한편에서 들고 일어납니다. 이 두 마음은 교차하고 요동칩니다. 오로지 하나의 마음만을 선택하라고 몰아붙이고 다그칩니다.

 

오래간만에 돌아와 보니 시시로 변하는 기이 세월이라 카지마는 산천은 예나 마찬가지로 좋구마. 이 좋은 고장을 버리고 내 참 많이도 떠돌아댕깄고나. 앞으로 어디를 갈 것이며 내 갈 곳이 어딘지 몰겄다. 어디기는 어디라? 그야 겔국에는 저승이겄지.

죽는 날까지, ....이 강변에 앉아서 낚싯줄이나 내리놓고 세상만사 다 잊어부리고 한분 살아보까. 남이야 북을 치든 나팔을 불든 조용히 한분 살아보까. , 그렇기 못 살 것도 없제. 살다가 굶을 판이믄 드러눕어서 눈 감으믄 고만일 기고. 세상에 나겉이 홀가분한 놈이 어디 또 있을라고. 울어줄 계집, 자식도 없고 남기놓고 떠나는 설움도 없일 기고.

허 참, 천지만물 어느 것 하나 멩이 없는 거는 없는 법인데 멩이 있고 보믄 죽을 날도 있기 매련 아니가. 인간 수멩이 칠십이라 카던가? 날포리는 하루를 살다가 가고 거북이는 천 년을 넘기 산다 카는데 곰곰이 생각하믄 어느 기이 질다 짧다 할 수도 없일 기구마. 제에기! 살다가 가기로는 매한가지 아니가 그 말이다. 굶을 판이믄 드러눕어서 눈 감고 죽음을 기다릴 기라고? 아서라. 그런 짓이사 논어 맹자 공부를 한 김훈장이나 할 짓이제. 상놈이 무신, 마른자리서 죽기는 다 글러묵었다.

사람우 사는 이치가 이러저러하고 여사여사하다고 글쟁이들은 말도 많더라마는, 날씨도 갠 날 흐린 날 눈비 오고 바람 불고 노성벽력 치고 하듯이 사람우 살아가는 펭생도 그 같은 거 아니겄나. 사시장철 갠 날만 있다믄 그기이 어디 극락이겄나. 산촌초목도 사람도 다 말라 죽어부리는 지옥이지 머겄노 말이다. 그러니 비 오고 바람 불고 눈 오는 그기이 땅을 다스리는 하느님의 이치이듯이 사람으 경우도 매한가지 이치일 기니 우찌 낚싯줄이나 내놓고 가만 있겄노.

용천지랄을 해보는 기다. 사나아 자석으로 태이나서, 하기야 상놈으로 태이나서 받은 거는 천대밖에 없다마는 내가 그래도 이 강산에 태이났이니. , 멩줄이야 탄탄하게 태이났지. 용천지랄을 하다가 아무래도 그렇그름 죽는 기이 나한테는 걸맞을 기구마. 용천지랄을.’

 

평사리에 내린 사람은 윤보 혼자였다.

 

그의 귀향에는 이미 험난한 의병 활동과 길 위의 죽음이 예비되어 있습니다. 그의 선택은 고향 강변의 강태공이 아니라 목숨을 내건 의병으로 기울어졌으니 말입니다. 윤보는 자신에게 어울리는 죽음을 향해 초연하고 꿋꿋하게 다가가려 합니다. 결국 그는 길 위의 죽음을 선택합니다. 고향 강변에서 사시사철 붕어를 낚으며 먹고 살 것인가, 생사가 오락가락하는 의병들 속에서 앞장서다가 죽을 것인가,하는 갈림길에서 그는 자신을 배려한 자신에 걸맞은 죽음을 창조하기로 작정한 것입니다.

 

마침내 결심을 굳히고 나룻배에서 내린 윤보는 마을로 들어섭니다. 소달구지를 몰고 가는 영팔이와 마주칩니다. 소달구지에는 보기 딱할 정도로 퉁퉁 부은 막딸네가 누워있습니다. 사람좋은 영팔이가 과부 막딸네를 읍내 병원으로 이송 중입니다. 윤보는 막딸네를 위로합니다만 정작 그 위로가 막딸네에게 가닿지는 못했을 성 싶습니다. 몸이 아픈 것은 몸에 신경 쓸 겨를이 생길 정도로 형편이 나아진 것이고, 병이 드는 것은 자연의 지극히 당연한 이치라고 하니 말입니다. 게다가 아픈 덕분에 소달구지 타는 호강을 누리지 않냐고 우스갯소리까지 건넵니다. 싱그운 유머에 아픈 막달네는 잠시 미소지었을 것도 같습니다.

 

막달어매, 벵이 나는 거를 본께 살기가 편해진 모양이구나. 사램이 살자 카믄 벵들 날도 있제. 마른 하늘도 울고 오뉴월에 우박도 내리는데 사램이라고 안 아프까? ”

이렇그름 몸이 짚동겉이 부었는데 우찌 살겄소. 이년의 무상한 팔자, 고생을 그리 하고 살았건마는 아즉도 죄 닦음이 안 끝났다 그 말이가. 아이고 내 못 살겄네

산다는 기이 죄를 보태는 기지, 어디 죄 닦음하는 기든가? 앓는 소리는 고만하고, 아픈 덕분에 과부가 호시하는데 멀!”

 

병들고 아픔에 대한 윤보의 담담한 통찰은 놀랍습니다. 그런 경지에 이른 윤보에게 죽음은 한사코 피해야만 할 두려운 것이 아니라 자연의 이치이며 해방이며 휴식일 것도 같습니다.

 

윤보가 고향에 돌아와 제일 먼저 찾는 사람은 용이입니다. 용이 집에 들렀더니 용이는 없고 임이네가 윤보를 붙들고 용이에 대한 불만을 쏟아냅니다. 용이 자식을 낳아준 사람이 바로 자신이라고 한껏 으스대는 임이네에게 한마디 하지 않을 윤보가 아닙니다.

 

임이어매는 남보고 이러쿵 저러퉁 안 하는 기이 좋을 기구마요. 하늘 보고 침 뱉으니 제 얼굴에 떨어지더라고. 그라고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하믄 안 되제. 임이어매도 과욕을 부리지 않는 기이 좋을 기구마. 신상에 해로우니께.”

 

험담이나 과욕은 결국 임이네 자신을 다치게 할 것이라는 경고를 윤보는 넌지시 던집니다. 윤보의 혜안은 임이네가 자식보다도 욕심을 더 귀히 여기며 살게 될 앞날을 꿰뚫게 했나 봅니다. 하지만 윤보의 조언에 임이네가 귀 기울일 것 같지는 않으니 불행한 앞날을 향해 직진해 갈 듯합니다. 오로지 욕심만이 임이네의 몸과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으니 다른 것들은 스며들 여지가 없어 보입니다. 윤보는 용이 집을 나와 개울가로 향합니다.

 

햇빛에 바래어 눈이 부시게 흰 자갈밭, 그 한복판에 맑은 물이 흐르고 있었다.

어이 씨원쿠나.”

얼굴을 북북 씻은 뒤 신발을 벗어버리고 두 발을 물 속에 집어넣는다.

용이 개울가로 내려온다.

 

윤보는 용이로부터 평사리 마을 소식을 전해 듣습니다. 신분타파와 인권 존중을 설파하여 마을 사람들의 마음을 샀던 예전의 조준구는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며, 사람들이 천하의 도둑 조준구에게 속았다고들 말한다는 것이며, 흉년에 최참판댁 고방을 부수고 곡식을 나눠줬던 사람들이 차례차례 당했다는 것이며, 마름 역할은 삼수가 아니라 지서방이 맡았는데 그의 악행이 참으로 모질다는 것이며, 김서방댁은 빈 몸으로 쫓겨나고 한조는 부치던 땅을 빼앗겼다는 것들을 용이는 조곤조곤 들려줍니다.

 

마을의 살림이 전보다 점점 더 어려워 허덕이게 된 것은 사실이다. 그 원인은 물론 조준구의 과도한 수곡 강요에 있었고 희망을 잃은 마을 사람들의 무기력해진 심리상태에도 있었다. 예전에 마을 사람들의 기색을 살피며 제법 온정을 베풀고 너그러이 행세했던 조준구는 요즈음

농사꾼이란 소나 말과 다를 것이 별로 없고 일하기 위해 세상에 태어났음이 분명하다

는 따위의 말을 서슴지 않는다. 이는 그의 지반이 그만큼 탄탄해진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조준구의 처사가 가혹할수록 그의 자리는 공고해져서 대항하기 어렵다는 얘기가 된다. 그것을 마을 사람들은 알고 있었고 자신들의 어리석음을 한탄했지만 조준구는 조준구대로

상놈이란 원래 귀여워하면 강아지 모양 기어오르려고 하고 채찍을 들어야 일을 하게 되는 소와 같아서 심히 다루어야, 그래야 질서가 잡히는 법이니라.”

지서방을 보고 말하며 너털웃음을 웃곤 했던 것이다.

 

조준구의 수탈과 괄시가 가혹해져도 마을 사람들은 누구도 나설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 윤보가 돌아왔으니 응징을 위한 술렁임이 구체화 되기 시작합니다. 그렇지만 양반절대주의자 김훈장은 양반 조준구를 습격하는 데에 동의할 수가 없습니다. 김훈장은 심정적으로는 동참하고 싶지만 내가 어찌 화적떼가 될 것이냐라며 소리칩니다. 윤보는 이에 맞서 자기 일신만 중히 여기는 양반때문에 나라가 망하지 않았냐라고 대꾸합니다.

 

다만 조준구 그 자를 치자는 거는 딱 두 가지 까닭이 있일 뿐인데, 그 하나는 그 자가 왜놈들 편에 빌붙어서 자기 영화만 생각는 역적이니께 이 차에 목을 쳐서 뽄뵈기로 삼자는 거요, 다른 하나는 누구 재물이든 간에 고방에 썩고 있는 거를 우리 의병이 써야겄다 그겁니다. 머 이런 일을 한다고 해서 잃은 나라를 당장 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니겄고 왜군이 물러갈 기라는 생각도 없십니다만, 부모가 돌아가시도 곡을 하는 법인데 나라가 죽은 거나 진배없으니, 자결하는 것도 충절이겄지마는 죽기로 작정하고 싸워보는 기이 지금은 도리가 아니겄십니까.”

 

두만 아비 이평과 아들 영만이는 조준구 습격에 빠지기 위해 피신을 갑니다. 그런데 뜻밖에 삼수가 윤보 편에 서서 따르고자 합니다. 조준구로부터 토사구팽 당한 배신감에 사로잡혔기 때문일까요?

 

나도 알 만치는 알고 있이니께요. 한 마디로 딱 짤라서 말하겄소. 왜눔들하고 한통속인 조가 놈을 먼지 치고 시작하라 그 말이오. 고방에는 곡식이 썩을 만큼 쌓여 잇고 안팎으로 쌓인 기이 재물인데 큰 일을 하자 카믄 빈손으로 우찌 하겄소. ”

 

그리하여 결전의 날 최참판댁 대문을 열어준 것도 삼수였습니다. 그렇지만 조준구와 홍씨의 목숨을 살려준 것도 삼수였습니다. 그들을 죽여야만 의거에 참여한 사람들이 훗날 피해를 입지 않을 수 있는데 말입니다. 악질 마름 지서방만 대창으로 찔러죽인 후, 가축 곡식 피륙 패물 은전 지폐 등을 모조리 실어내는 동안에도 끝내 조준구와 홍씨 두 사람을 찾지 못합니다. 삼수가 그들이 숨은 곳을 알았지만 발설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삼수는 사당 안으로 기어들어 간다. 조준구가 토지문서를 사당 마룻장을 뜯고 그 밑에 감춘 것을 삼수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마룻바닥에 엎드린다.

”“나으리 나으리 소인 삼수올시다. 지금 당장 내 말 한 마디믄 이 세상하고 마지맥이 될 깁니다. 삼수 놈이 그래도 나으리한테는 쓸모가 있는 놈이라는 것을 이자 아싰지요? 이놈한테 한몫을 주시는 기지요? 죽고 사는 기이 이 삼수 놈 손에 매있이니께요.”

 

구사일생한 조준구는 달려온 일본헌병 앞에서 삼수를 가리키며 여러 번에 걸쳐 폭도의 앞잡이라며 노려봅니다. 악한 조준구는 악한 삼수를 살려두지 않습니다. 살아남을 수 있는 악이 되기 위해 다른 악을 처단합니다. 약점이 잡힌 악은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나으리! 꿈을 꾸시는 깁니까? 목심을 건지디린 이 삼수 놈을 말입니다.! 소인은 나으리를 사 살리디맀는데 이럴 수 잇십니까?”

 

삼수는 걸레 조각처럼 끌려나갔다. 노비들은 숨을 죽이며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대문 밖으로 끌려나간 뒤에도 삼수의 울부짖음은 계속 들려왔다. 울부짖음이 끊어졌는가 싶었는데 얼마나 지났을까, 뒷산 쪽에서 총소리가 두 번 울렸다. 삼수의 죽음에서 조준구의 본성을 하인들은 똑똑히 보았다. 이용하고 나면 버리는 무자비한 생리에 소름이 돋았다.

조준구에게 이제 삼수는 성가신 존재, 없어져 주는 편이 홀가분하다. 어리석은 삼수, 그가 아무리 악독하다 한들 악의 생리를 몰랐다면 어리석었다 할밖에 없다. 악은 악을 기피하는 법이다. 악의 생리를 알기 때문이다. 언제나 남을 해칠 함정을 파놓고 있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시 궁극에 가서 악은 삼수가 지닌 그와 같은 어리석음을 반드시 지니고 있다. 왜냐, 악이란 정신적 욕망에서든 물질적 욕망에서든 간에 그릇된 정열이어서 우둔할 밖에 없고 찢어발길 수 있는 허위의 의상을 걸치고 있기 때문이다.

 

가을걷이가 끝났을 무렵 마을에는 쫓겨난 사람, 도망간 사람들, 하여 빈집이 많아졌다.

 

조준구 습격 사건 이후 서희는 간도땅 용정으로 주거지를 옮깁니다. 1908년 당시 서희 나이는 열여섯 살입니다. 그런데 용정에는 윤보도 없고 봉순이도 없습니다. 1911년 용정에 대화재가 일어나 도시 절반이 불에 타게 됩니다. 그때 집을 지을 목수에 대한 대우가 상전 모시듯 해지자 길상이와 김훈장은 윤보를 추억합니다.

 

목수 얘기가 났으니 말이네만 윤보 생각이 나는군. 그자가 죽지 않고 이곳에 함께 왔었더라면...의병장 홍범도만큼이야 할까마는 거 재목이 컸었는데......”

컷었지요. 그만한 인재도 드물겠지요.”

위인이 순직하고 입정이 나빠 탈이었지만 도량이 넓고, 무엇이든지 포용할 수 있는 인물이었지. 사욕이라곤 터럭만치도 없는, 목수로서 기량도 좋았고. 태어날 곳에 태어났더라면 아주 훌륭한 장수가 되었을 게야.”

김훈장이나 길상이는 다 같이 윤보에 대해서는 추억이 많다. 생사를 같이 했고 또 그의 죽음을 지켜본 이들이 감회 없이 윤보를 회상할 수 없는 것이다. 김훈장의 경우는 특히 그러했다. 김훈장은 윤보 말을 하고부터 풀이 죽는다.

하긴 윤보 목수가 함께 왔었더라면 김훈장이 저리 쓸쓸해 뵈지는 않았을 거야.’

 

중년 용이와 청년 거복이가 용정에서 마주칩니다. 윤보의 죽음을 전해 들은 거복이는 12년 전 열다섯 살 때 어머니 함안댁을 땅에 묻던 날의 우렁우렁했던 윤보 목소리를 상기하게 됩니다. 최치수를 살해한 죄값으로 처형된 김평산의 큰 아들 거복이가 20대 후반의 김두수가 되어 말입니다.

 

니가 우찌 여까지 왔노! 니 어무니 장사 지내고는, 처음이구나. 이런 곳에서 만날 줄은....허허헛....”

아재씨도 많이 늙어셨습니다. 니 어무니 장사 지냈다는 말씀만 안 했어도 지는 그냥 달아났을 겝니다. 그때...영팔이아재는 지게송장을 지고 갔지오. 윤보아재는....”

윤보 형님은 죽었다. ”

죽어요......”

 

김두수는 십이 년 전의 그날을 눈 앞에 보고 있는 것이다. 아버지가 관가로 끌려간 다음 날 이른 아침, 치마를 뒤집어쓰고 살구나무에 목을 맨 어머니, 시체도 살구나무도 비에 흠씬 젖어 있었다. 음산한 바람이 불던 북향의 산비탈, 추위에 먹빛이 된 동생의 얼굴, 얼어서 게 다리같이 꾸부려졌던 동생 한복의 손가락.

거복아, 니 오늘이 며칠인지 아나? 열이레다. 너거 어무니 돌아간 날 그러니께 이월 열엿새라 말이다. 여기가 니 어무니 산소고. 잘 명님해두어라. 알겄나?”

무덤을 만들어놓고 골통에 담배를 넣으며 말하던 윤보의 목소리는 지금도 귓가에 쟁쟁하다.

 

두만강 건너 멀고 먼 간도땅에서 뿐만 아니라 일제강점기를 살아내는 경상도 평사리 사람들 사이에서도 윤보 이야기는 은밀하게 오고갑니다. 친일파가 등을 찔려서 죽고, 일본 순사들의 목을 베가고, 경찰서 여러 군데에 불을 지르는 의병 활동들이 이어지자 그런 활동을 이끄는 사람이 윤보일 것이라고 사람들은 여깁니다. 그렇게 윤보는 전설이 되어 일제강점기의 희망이 됩니다.

 

떠도는 말을 조맨 들었는데 말이 윤보가 아즉 살아 있다고도 하고.”

그 말이야 나도 들었거마는. 내 그런 말 믿지는 않으나 축지법을 써서 동에서 번쩍 서에서 번쩍 별의별 놈의 재주를 다 부린다 카고, 그거는 머 그렇다 카더라도 이때꺼지 윤보가 살아 있다믄 국으로 있지야 않겄지. 무슨 사단을 꾸미고 댕기도 댕길 기라.”

그렇지요. 그 사람 동학 때도 장수 노릇했다는 말이 있십디다

하여간에 동학 때 쌈질한 것만은 틀림이 없지, 장수를 했는지 접주를 했는지는 모르겄다마는. 지리산 골짜기에 쥐도 새도 모르는 군사가 여차하믄 치고 나올 기라니 대단한 일이제.”

, 나도 그 얘기는 들었소, 잘난 장수 한 사람 있으믄 어렵은 일도 아닐 기요.”

윤보라는 그 사람이 곰보딱지 흉측스리 생겨서 아아들도 보믄 달아난다 카고, 연장망태 짊어지고 집이나 지어주는 목수라 해서 사람들이 대우를 안 해주지마는. 실상은 유식하기가 이를 데 없고, 옛날 동학군에 있일 적에 저어기 저 백두산, 그 백두산의 정기를 타고난 무슨 도사한테서 병법을 배웠다 카이, 예사 인물은 아니라더마요.”

 

죽어서 땅 속에 썩고 있을 윤보, 그 윤보를 두고 허무맹랑한 얘기는 솜뭉치처럼 부풀어간다.

 

1인 가족 윤보는 자신이 살고 싶은 삶과 죽음을 욕망했습니다. 명성이나 부에 대해서는 욕망하지 않았습니다. 욕망하지 않음을 욕망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윤보는 부모의 기일에 절을 올려 예를 갖추었지만 자신의 제사를 지내 줄 자식을 바라지는 않았습니다. 이 풍진 세상을 자식더러 어찌 살아내라고 자식을 낳겠냐,면서 말입니다. 일자무식인 그가 어떻게 이런 경지의 측은지심에 도달할 수 있었을까요? 그의 사유가 경이롭습니다.

 

전국을 떠도는 길 위에서 만난 선하고 악한 사람들, 고향 마을의 순박하고 간사한 이웃들, 사시사철 자연의 순리를 고스란히 담은 이땅의 산천초목들, 철통같이 튼튼한 집을 짜맞춰 세우던 목수 활동들, 그 모두가 윤보의 혜안이 되어 켜켜이 자리 잡았을 듯합니다. 윤보를 통해 사람의 도리란 어떠한 것이어야 하는가, 하고 곰곰이 생각하게 됩니다.

 

윤보는 불의에 맞서는 일이라면 몸을 사리지 않았습니다. 그런 행위가 사람의 도리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무분별한 살상이나 파괴를 일삼는 혁명과는 분명 결이 다른 행위인 듯합니다. 윤보는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는 순수한 협기로 동학 봉기 대열에 동참해 탐관오리를 몰아내고, 흉년에는 최참판댁 고방을 부숴서 배고픈 사람들에게 곡식을 나눠주고, 을사조약 이후에는 친일파 조준구를 습격해 의병 활동을 위한 군자금을 마련했습니다.

 

윤보는 자신에게 걸맞은, 일상을 창조하면서 자신에게 부여된 생명을 살아냈습니다. 어림짐작과 직감으로 튼튼한 집을 짓기도 하고, 강변에 앉아 호젓하게 낚시대를 드리우기도 하고, 때로는 봉기에 앞장서서 거침없이 날뛰기도 하면서 말입니다. 일자무식인 사람도 자연의 이치와 사람의 도리를 일깨울 수 있다는 사실을 윤보는 보여줍니다. 자신이 깨달은 바대로 솔선수범하여 이 세상을 살다간 사람이 윤보가 아닐까,싶습니다.

 

하지만 삼수가 조준구에게 이용당하고 폐기처분 되었듯이, 윤보같이 정의로운 사람을 은밀하게 조종하고 이용하려는 자가 어딘가에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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