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의대 유성호 교수님이 집필한 책.
학부시절 관악에 '죽과이'라는 명강의가 있는 건 알았지만, 매번 수강신청 앞에 무너져 내려 한 번도 듣지 못한 채 졸업할 수 밖에 없었다. 그 아쉬움을 이 책으로나마 달랠 수 있어 어찌나 감사하던지.
책은 법의학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 '죽음' 자체에 대한 여러가지 사유거리 그리고 죽음학의 필요성과 트렌드를 차례로 담고 있다. 법의학에 대한 인식이라 하면 누구나 생각할 수 있듯 '그것이 알고 싶다' 혹은 '국과수'에 대한 내용이다. 매체를 통해 법의학자를 마주할 땐 별 생각이 들지 않았는데, 실제 업으로써 시체를 주 1-2회 혹은 더 많이 봐야 한다고 생각하니 제법 고역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방송사의 입맛에 따라 편집된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 죽음을 맞이한 법의학자의 시선으로 표현된 사회적 죽음들은 독자로 하여금 더 많은 생각을 주체적으로 할 수 있게끔 한다.
이어지는 장에서는 사회적으로 이슈가 된 죽음 개별 케이스가 아닌, 죽음학 전반에 대한 논의를 이어나갔다. 일상을 보내며 죽음에 대한 생각을 별로 해 본 적 없는데, 생은 필연적으로 죽음으로 마무리된다는 점, 그런 개개인에게 주어진 죽을 권리, 생을 마감할 권리가 어떤 것일지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였다.
의학이 발달하며 대부분이 임종을 병원에서 맞게 된다. 병원에서 맞는 임종도 온전한 상태가 아니라, 대부분 생명유지장치에 목숨을 부지한 채 의사소통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간호사로 일했던 내게는 굉장히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말이었다. 맞다. 오늘날의 우리는 각자의 죽음에 대해 사유해 볼 기회도 없이, 의사소통할 능력도 되지 않는 상태에서 가족이나 의료진, 타자에 의한 죽음을 맞게 된다. 이에 대비해, 나의 존엄한 죽음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 고민하게 된다. 이러한 생각의 흐름을, 필자는 책장이 넘어가는 내내 독자와 함께 하며 이끌어준다.
자살율이 하루가 다르게 높아지고 있지만, 실제로 자살시도 후 생존한 사람들의 대부분은 죽으려던 그 순간 본인의 선택을 후회한다고 했다. 다들 생에 대한 집착이 있기 마련이다.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것이 당면한 문제의 해결책으로 여겨지는 사회 풍조가 사라져야 할 텐데, 안타까울 따름이다.
내가 내 삶에 충실할 때, 하루하루 온전히 보내고, 모든 유기체는 필연적으로 죽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직시하고 죽음에 대해 자주 생각해볼 때 비로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인간답게 생을 마감할 수 있는 것 아닐까? 죽음에 대해 미리 고민하고 (죽음에 사로잡혀 살라는 말은 아님!) 나만의 생각을 정리할 때에 비로소 내 삶을 주체적으로 살고, 하루하루를 귀하게 여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깨달음을 얻는다는 것 자체가 바로 방구석에서 보는 서울대 명강의 아닐까 싶다..!
책은 작고 귀여운 사이즈이고, 글도 읽기 쉽게 쓰였다. 삶에 대한 애착이 떨어질 때, 죽음이 궁금할 때, 평소 그알이나 궁금한 이야기를 즐겨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재미있게 읽기 좋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