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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운

[도서] 비행운

김애란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비행운'이라는 제목의 곡이 라디오에서 많이 나오던 시기에 나는 이 단어가 비행과 관련된 행운을 뜻하는 줄 알았다. 그러니까 내가 이해한 그 뜻대로면 요즘처럼 팬데믹 상황에 비행기타고 여행갈 기회가 없는 우리는 비행운이 지지리도 없는 셈이다. 하지만 책을 읽으며 알게된 이 <비행운>의 진짜 의미는 높은 고도에서 비행기가 지나가며 엔진에서 배출된 수증기가 차가운 외부 공기와 만나면서 급격한 기온 변화로 생긴 하얀 구름을 가리켰다. 마치 이 작품 속 인물들이 삶에 대한 애착과 기대로 뜨겁게 품었던 마음들이 한순간 좌절돼 얼음처럼 차가워지고 말듯이 그런 심정의 변화에 남은 상처같은 구름 자국이었다. 책의 뒷편에 실린 글에서 평론가는 '아닐 비'로 풀어 작품 속 인물들이 행운이 따르지 않는 비 행운에 처해 곤란해하는 것으로 이 단어를 이해하기도 한다. 상상력을 자극하는 중의적 해석이 가능한 재미있는 한글의 묘미가 아닐 수 없다.

김애란 작가의 작품 보다 귀에 먼저 들렸던 노래 비행운의 가수는 아쉽게도 김애란 작가에게 허락도 맡지 않고 책 구절과 감상을 갖다써 표절했으며 거기다 몰카범으로 잡혀 부끄러운 뉴스만 남겼던 사실도 이번에 알았다. 노래는 이제 그만, 김애란 작가의 이 책만으로 <비행운>을 기억할 것이다.

김애란 작가의 작품은 딱히 행복할 일이 드라마틱한 반전으로 일어날 것 같지 않은 평범한 인물들을 독자들이 느끼는 불안한 예감대로 질질 절망을 향해 끌고 가다가 오도가도 못하게 좌절의 구덩이에 내던지고 가는 것 같다. 나몰라라 하지만 답도 없는 이 비극을 우리가 바꿀 도리는 없어보여 망연자실하고 괴로워 견딜 수 없다. 마치 독자가 바라보지 못했던 세계에 이런 불편함이 있음을 인식시키고 뭐라도 하라고 그들을 위해 또 너를 위해 모두를 구원하기 위해 뭐라도 해야겠지 않느냐고 호통치는 것 같다.

마음이 통한다 믿어 오랜만에 온 연락이 와 들뜨게 만들었던 대학때 짝사랑 선배는 자신의 뚱뚱한 몸을 방송에 이용하려 하는 변변치않은 방송국 스탭이 되었고 어릴 적 자신을 익사위험에서 구해준 남자동기는 세상을 떠나 여주인공을 울게 하고 (너의 여름은 어떠니), 없는 살림에 재개발 지역의 허름한 주택에서 갖가지 벌레의 출현으로 괴로워하다 벌레를 죽이려는 공격성에 오히려 결혼반지를 창문에서 떨어뜨리고 그걸 찾겠다고 새벽에 건물 잔해에서 양수가 터져 듣는 이도 없는데 홀로 도움을 요청하고 있는 임산부도 있다(벌레들).

그런가 하면 어마어마한 홍수로 재개발 아파트에 고립돼 있다 당뇨로 죽은 어머니의 시체를 가지고 뗏목을 만들어 탈출하다 크레인 위에서 체불 임금을 요구하다 실족사한 아버지처럼 크레인 위에 가까스로 도착해 불안한 채 흔들리며 버티고 있는 소년, (물속 골리앗) 조부때부터 성공의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흑수저로 살며 택시운전하다 조선족 아내를 만나 이제 행복을 꿈꿔볼까 하던 찰나 병으로 아내를 잃고 밤에 운전하면서 중국어 몇마디를 배우며 현실을 버티고 있는 택시운전사의 이야기도 불편하다 (그곳에 밤 여기에 노래).

 

추석을 맞아 여행떠나는 사람으로 가득한 공항에서 원형탈모 머리를 감추고 고단하게 일하는 청소 노동자가 교도소에서 보내온 아들의 편지에 한가닥 희망을 품었다가 엄마 마음도 모른 채 사식 넣어달라는 편지 한줄만 남겨 한톨만한 희망마저 날아가 버리는 처절한 쓸쓸함을 목격하게 한다(하루의 축). 친구의 결혼식을 앞두고 자기 소비수준보다 과한 비용을 들여 손톱관리를 받지만 하이힐을 신고 걸어온 탓에 땀범벅이 된 채 부케를 받고, 여행가방을 준다는 말에 카드를 만들어 부케를 여행가방에 넣어 힘들게 끌고 다니다 부케는 망가지고 친구와 맥주한잔 하려 연 캔뚜껑 때문에 관리받은 손톱마저 부러지고, 여행가자던 친구는 여행을 못간다해 수준에 맞지 않는 꿈을 꾸는 것이 죄인양 20대 여성의 꿈조차 바스라지는 순간을 보게한다 (큐티클).

두 친구가 여행을 떠나지만 중산층에 거침없고 자유롭게 살던 은지와 조심스럽고 신중한 성격의 서윤이 여행지에서 간극을 발견하면서 거리감을 느끼게 되고, 죽은 사람을 꿈에서 볼 수 있게 한다는 호텔에서 자는 동안 죽어서도 폐지를 줍는 할머니를 보고 괴로워하는 서윤의 그늘을 통해 좁힐 수 없는 빈부의 차를 새삼 깨닫게 한다(호텔 니약 따). 열심히 살았지만 학자금 대출빚에 허덕이고 학원선생 노릇을 하며 근근히 살다 선배에 의해 다단계에 빠지고 거기서 나오기 위해 자신을 따르던 학원생을 끌어 들였다 그 학원생이 자살시도로 식물인간이 돼 망연자실한 채 서른을 맞는 여성의 이야기도 전한다. 선생으로서 학원생을 바라보며 가졌던 '너는 자라 내가 되겠지.... 겨우 내가 되겠지'라는 생각처럼 어린시절의 꿈은 현실에 부딪혀 곧 사그라질 것이고 이 고단하고 슬픈 현실은 뒤에 올 이들에게도 되풀이될 수 밖에 없음을 회의적으로 이야기한다. (서른)

작가가 실낱같은 희망을 한군데도 남겨놓지 않았다 여겨지기도 했지만 산자는 살아내야하기에 긍정의 마음으로 흔들릴지언정 작은 점 같은 희망을 찾는다.

유토피아를 아직 놓치 못하고 중국어를 배우는 택시운전사, 언제고 떠날 수 있는 여행용 가방이 생긴 20대 여성, 첫사랑 선배는 뒤통수쳤을지언정 자기를 바라보고 있다가 물 속에서 건져 살려낸 아이의 기억이 있는 그녀, 그동안 어떻게 살았든 앞으로 더 행복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고 믿어도 좋을 아직 서른인 주인공, 여행지에서 돌아오면 그래도 아마 어떤 의미로든 다시 친구일 두 사람, 교도소에서 출소하면 이제 잘 살 수 있는 아들을 기다릴 수 있는 청소노동자, 높은 크레인 위에 있으니 아마 구조 헬리콥터에 의해 발견될 소년도 있다. 새벽에 낯선 곳에서 양수가 터진 임산부의 상황은 어디서 희망을 찾아야 좋을지 곤란하지만 임산부나 아기는 대부분의 이야기에서 희망을 이야기하기 위해 위기를 모면할 기회를 갖고 마침내 살아남으니 클리쉐를 믿기로 했다.

그리고 지금 이 상황조차 내가 오해했듯 비행을 할 수 있는 행운으로 이해하고 팬데믹 상황이 종식된 후 모두에게 그러한 비행할 수 있는 행운, 비행운이 닿기를 빌려 한다. 표지의 그림처럼 나를 방어할 어떤 것도 갖추지 못한 벌거벗은 몸으로 아슬아슬 줄타기를 하고 있지만 그래도 살아있으니 완벽하고 안정된 삶은 애초에 없을테니 이렇게 흔들거리며 가자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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