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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m.blog.yes24.com/document/5047220

무라카미 하루키는 왜 옴진리교의 사린가스 테러를 소설로 쓰기에 앞서 다큐멘터리 풍의 리포트로 썼을까? <언더그라운드><약속된 장소에서>를 읽어보면 해답이 슬쩍 드러난다. 그가 취재한 숱한개인들은 이미 소설이란 형식으로도 묶을 수 없는 엄청난 세부를 지니고 있었다. 하루키는 그들 모두를 소품처럼 모으고 엮어 연합된 소설을 쓸 수 있었겠지만, 굳이 그러진 않았다. 하루키와 개인들이 맺은 숱한 관계는 그것 하나하나가 고유하고 온전했기 때문에.

 

‘안녕 달빛요정은 글쓴이 스크루지와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이 맺은 관계의 전모를 처음부터 끝까지 드러내면서도 시종 담담하다. 한 대상을 정하고 그와 관련된 삽화 속에서 소량의 상념을 추출해낼 때,그 대상과 그와 무관한 대다수를 한꺼번에 만족시키는 일은 얼마나 어려운가. 누군가의 기억은, 오직 그 사람이 만든 삶 안에서만 해당되는 거니까. 그 대상이 비틀즈라고 해도 다르지 않을 테다. 그런데, ‘안녕 달빛요정을 읽는 동안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음울한 생을 더 많이 더 자주 반추하는 건....

 

완결된 글과 문장으로서의 허물이야 웹이라는 제약없는 형식에서 작성되었다는 걸 감안해도 더러 보인다. 하지만, 그가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과 겪은 삽화들과 그 일들의 뒷결을 다시 들추어보면, 더 분방하고 더 마음가는대로 옮겼다고 해도 용납될 것 같다. 그런데 바로그런 대목 때문에 스크루지는사실그리고절제라는 덕목을 내내 꼭 붙들고 있었던 건 아닐까.

 

한 사람과의 성실한 관계가 그대로 글이 되었다. 상상력만으로 무엇인가를 글로 옮기는 것에는 국경이 있다고 가르치면서. ‘안녕,달빛요정은 역설적으로, 우리가 거짓말을 하기 전에, 잠깐 주춤하는 순간이 얼마나 중요한지 나직하게 들려주고 있다.

 

그렇게 트윗에 뛰어들기 전, 트윗팅은 한 때의 쓸데없는 짓이며,세상과 모든 것을 지나치게 단순화시키는 무엇이라고 생각했다. 현대의 삶 속에선 모든 게 근심거리라는 걸 매순간 토해내는 얍삽한 출구라고.자기는 트윗을 할 시간도 없고, 그렇게 세상을 향해 떠들 의향도 없으며, 굳이 해야 한다면 그 시간에 책을 낼 거라는 누군가의 말을 차라리 더 옹호하고 싶었다. 무엇보다 SNS, 일상화된 문맹으로 우리들을 끌어들여 언어를 파괴하는 어리둥절한 책략 같았다. 언어가 저열해지도록 문화에 가해진대뇌 전두엽 백질 절제술이라고.

 

트위터를 시작하자 예전의 반감이 희미해졌다. 트윗을 싫어하는 건 휴대폰과 페니실린을 싫어하는 것과 같아. 전서구나 이메일처럼 정보를 나누는 도구들을 멀리 둠으로써 지금 이 순간, 몇 백 만이 소통하는 순간을 외면하는 거야, 라는 숭고한 깨달음이 펼쳐졌다. 트위터는 지금 이 순간의 발신음이며, 2011년에SNS를 거부하는 건 지금 세상에서 침묵의 맹세를 하는 것과 같다고 믿었다. 동시에! 140자 안에는 충분히 말할 공간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번에SNS로 표현된 짧은 글을 읽으면서 두루 착잡해졌다.

 

진심으론,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로 자동차 지붕을 애무하는 빗방울처럼이 아니라, 예기치 않은 순간에 방아쇠를 당기듯 하는 새로운 언어가 보고 싶었다. 집이 작아서 인테리어를 못하겠다,차가 작아서 탈 맛이 안 난다, 연인의 키가 작아서 친구들을 만나기도 우세스럽다는 사람의 말은 다 변명 같았으니, SNS의 협소한 공간이 실은 얼마나 광활한지 느끼고 싶었다. 하나의 낱말 안에 우주를 아우르는 또하나의 세계가 머무르고 있으며,배타적인 공간 안에서조차 세련되게 축약된 관점과,정금처럼 번쩍거리는 정신성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철학과 사상의 긴장이 극단적으로 닦인 언어의 방식으로 작열할 것 같았다.

 

그러나 SNS는 확실히 신중한 코멘트나 지적인 대화 대신 뻔한 것들의 폭발적인 쓰나미에 불과한 걸까. ‘자유를 믿는다고 말하면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설명해야 할 텐데, 그러기엔 여백이 충분하지 않았을까. 개인의 말을 들려주는 기회로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더불어 만져야 할 때도 단순히테크놀러지와 스스로 거룩한 관점의 혼합으로 기능할 수밖에 없는 건 또한 그 때문일까.

 

SNS가 길고도 사려깊은 대화를 대체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급기야, 그래본들 머나먼 미래의 일이라는 결론을 내렸다.전화가 시를 대체한 것보다, 트위터가 산문을 대신하는 것은 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SNS가 휴가 사진을 보여주며 가상의 애정을 구하는,그렇게 자신의 남루를 홍보하는 멍청이의 장소는 아니라고 믿고 싶다. 왜냐하면 그 안에서 다루는 것은 결국 문명이 우리에게 준 정수로서의글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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