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진북스가 펴내고 정팔영 작가가 쓴 <소소한 듯 깊은 생각들_찰나의 삶, 얽히고설킨 갈등의 일상>을 읽었다. 약 40여 년간 교직과 학교에서 근무한 정 작가는 교직과 일상에서 느낀 다양한 이야기들을 담담하게 풀어낸다. 책은 총 다섯 파트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파트는 '여유로운 개똥철학'. 두 번째는 '잡학, 알면 득, 몰라도 무탈'. 세 번째는 '말 안 하면 뭔가 부족한 것인가?' 네 번째는 '사는 게 별거냐고'. 마지막은 '지그시 눈 감고 가다듬으며 방하착'.
제목을 참 잘 지은 책이다. 읽다 보면 소소하고 사소해 보이지만 깊은 생각들이 쏟아진다. 인생의 가을쯤을 걷고 있는 아빠, 엄마가 나지막이 해주는 조용한 수다 같은 느낌. 하지만 읽다 보면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수다.
인생이란 흐르는 물과 같다. 어느 곳에 있든, 언제든, 역류나 치솟는다든지 하는 깜짝 놀랄 일이 전개되지 않는다. 다만 인위적 조작에 의한 변화일 뿐이다. 오늘은 다만 어제의 결과이지 무사고, 무대응의 결과는 아니다. 매일 아침 신은 누구에게나 '하루'라는 선물을 부여한다. 좀 더 일찍 일어나 이것을 흥분으로 받아들이고 충만감을 느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복되는 지겨운 일상에 조금이라도 더 이불 속으로 파고드는 사람도 있다. 습관이 천성으로 굳어져 더 늦기 전 변화를 택함이 옳을 듯.
251p
그간 작가가 읽어 온 책에서 수집한 삶의 다양한 은유들이 풍부한 감성을 더한다. 유명한 이들의 입에서 튀어나온 정곡을 찌르는 문장들을 많이 건질 수 있었다. 밑줄을 그으며 읽다 보니 책의 많은 페이지들이 접혔다.
아이가 세상에 태어날 때 우는 이유는 “미친 자들이 가득한 끝도 없는 무대로 입장함을 알았기 때문이다”
-윌리엄 셰익스피어
인간에게서 가장 놀라운 점이 무엇인가요?
신이 대답했다.
돈을 벌기 위해 건강을 잃어버리는 것.
그리고는 건강을 되찾기 위해 돈을 잃는 것.
미래를 염려하느라 현재를 놓쳐버리는 것.
그리하여 현재도 미래도 살지 못하는 것.
나짐 히크메트, <신과의 인터뷰>, 32p
공자는 “선행은 적절한 때 행하는 것”이라고 했다. 즉 역설적으로 적절하지 않은 때 행하는 것은 선행이 아니다. 비록 선한 의도에서 나온 행위 일지라도 말이다. 모든 행위는 적절, 필요, 믿음이 있는 것이다. 87p
그 나이의 지혜를 갖지 않은 자는 그 나이의 모든 어려움을 겪는다. 볼테르 135p
요즘 '웰다잉(Well-Dying)'에 대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한다. 결국 '어떻게 죽을 것인가'로 귀결되는 삶. 나는 어떻게 살다가 죽어야 할까? 이 책에 인용된 죽음 연구가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말에서 큰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그녀가 오랜 연구를 통해 알아낸 사실. 임종을 앞둔 대부분의 사람은 너무 심각하게 살았던 것을 후회한다고 한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포근하고 유쾌하고 앞서 살다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귀담아들을 것을…이라고 말이다. 중요한 인생의 정답들은 언제나 쉽다.
이렇듯 삶이 단순하고 쉽고 뻔히 보이는 허탈한 것이었더라면 왜 뒤틀고 끌어내리고, 시기하고 돌아가야만 했고 자신만이 세상의 모든 굴레를 걸머지고 살아온 듯 억울해하고 부귀공명은 영원불변인 듯 먼 허공을 보며 숨을 내리쉬어 본다. 현재의 나는 아니었기를... 그리고 되돌릴 기회가 주어진다면
첫째, 지금 살았던 생과는 반대로 살아보고 싶다.
둘째. 먼 훗날 지금의 생을 어떻게 볼 수 있을까? 하는 전제를 달고 살아 보고 싶다.
셋째. 부족은 행복의 척도에는 없다.
그야말로 '일체유심조(모든 것은 생각하기에 달려 있다)'이니 언행에도 '삼사후일언'하면 만사 평화롭다. 253p
'지금 살았던 생과는 반대로 살아보고 싶다'라는 작가의 고백이 왜인지 모르게 나의 생각과 관념을 전복해버려도 된다는 허락 같아서 용기가 생기는 기분이었다. 먼 훗날 지금의 생을 어떻게 볼 수 있을지 전제를 달고 살아보고 싶다는 고백도 마찬가지다. '내려다보는 감시와 질시를 잘 견디고 모였다 흩어짐이 한낱 떠다니는 구름과도 같은 인생'을 잘 지나왔다는 작가.
그리고 삼사후일언(三思后一言).
언젠가 읽은 박준 시인의 문장은 이랬다. 말은 사람의 입에서 태어났다가 사람의 귀에서 죽는다. 하지만 어떤 말들은 죽지 않고 사람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살아남는다. 시인은 타인에게 별생각 없이 건넨 말이 내가 그들에게 남긴 유언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고 했다. 그래서 같은 말이라고 조금 따뜻하고 예쁘게 하려 노력한다고.
삼사후일언도 비슷한 맥락에서 해석된다. 누군가에게 유언이 될 수도 있는 문장이라니 조금 섬찟하기도 하지만, 나는 늘 어떤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신중하게 말하려고 노력하다. 어떤 문장이든 조금 더 긍정적으로, 조금 덜 부정적으로 사용하기. '안될 것 같아'가 아니라 '다음에 될 것 같아', '미안해'가 아니라 '고마워', 나쁜 말을 하고 싶을 땐 한 번만 삼켜본다. 정말 필요한 말인지, 분풀이를 위한 말인지 고민하는 1초의 시간이 많은 것을 변화시킨다. 무심코 뱉은 내 문장이 그 사람의 귀에서 죽지 않고, 살아서 마음까지 가닿을 수도 있으니까.
아주 사소하지만 결정적인 삶의 기술이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이 책에는 그런 기술들이 많이 숨어있다. 그러니 지친 하루의 끝에 삼촌이 해 주는 잔잔한 위로 같은 이 책을 읽어보는 건 꽤 좋은 선택이 될 것 같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