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살 심이는 다섯 살에 베이징으로 가서 오 년 간 유년 시절을 보내고 최근에 한국에 왔다. 한국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어서 아이는 귀국 초반에 베이징을 많이 그리워하는 동시에 이곳의 생활에 적응하려고 분투했다. 원래 조금 소심한 데다 걱정이 많은데 환경까지 180도 바뀌니 불안과 걱정 세포가 폭발했는지 자려고 누운 침대에서 심이가 이런저런 걱정들을 쏟아낸다.
교실에 갔는데 갑자기 아무도 없으면 어쩌지?
갑자기 나를 아무도 못 알아보면 어쩌지?
내가 갑자기 내가 아니면 어쩌지?
친한 친구가 안 생기면 어쩌지?
엄마, 내가 걱정이 너무 많은데 이거 이상한 거지?
걱정이 많은 것마저 걱정하는 아이에게 이 책을 들이밀었다. 5학년 세 여자아이의 우정과 다툼, 걱정과 해결의 과정을 진솔하게 담은 <걱정방, 팔로우했습니다.> 그린애플에서 나온 사과밭 문학톡 다섯 번째 시리즈로 최은영 작가가 쓰고, 박현일 작가가 그렸다. 150페이지가 넘는 짧지 않은 글인데 아이는 단숨에 읽었다.
주인공은 뿌미 특공대 삼총사인 진아, 수연, 혜리. 셋은 둘도 없이 좋은 친구이지만 진아는 친구 관계, 수연이는 치매 할머니를 돌보는 문제, 혜리는 의대에 가기 위한 공부 스트레스로 다들 각자의 고민을 안고 있다. 자신들의 고민과 걱정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기에는 아직 서툰 까닭에 사소한 다툼과 갈등이 이어진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은 토라지고, 쉽게 서운해하며 본심과 다른 가시 돋친 말을 서로에게 내뱉으며 상처를 받기도 한다.
내 걱정과 마음을 몰라주는 친구들 때문에 더 속상해지는 셋. 그때 셋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 따서 만든 SNS 그룹방, <우리들의 방, 리연아>가 다리 역할을 해 준다. 아이들은 쌓아 온 추억과 지금의 걱정들, 서운한 감정들까지 그 방에 솔직하게 적어 내려가면서 서로를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한다. 걱정을 크게 만드는 방이었던 리연아는 이제 서로의 마음을 알게 해주는 역할을 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걱정을 줄여 준다는 의미로 '걱정방'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붙였다. 세 친구는 사랑하는 친구와 함께 더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갈 용기와 지혜를 얻는다.
그 과정들이 뭉클해서 읽다 보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맺혔다. 어린이들을 위한 글이 어른인 나에게도 큰 울림을 준다. 요즘 아이들에게 필수가 된 SNS를 예전 교환일기 새로운 버전으로 해석한 점도 마음에 들었다. SNS와 함께 살아가야 하는 세대들에게 어떻게 하면 조금 더 현명하게 이 도구를 활용할 수 있을지 좋은 팁을 알려준다. 친구와 우정이 제일 중요한, 그래서 필연적으로 친구들에게 크고 작은 상처도 받는 학생들이 읽는다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심이는 이 책을 읽고 독서노트에 이렇게 썼다. 어른들은 어린이들이 걱정이 없다고 늘 말하지만 어린이들은 어린이들만의 걱정이 있다고. 우리는 학원 숙제 걱정, 이상한 어른들 걱정, 친구 관계 걱정 등 걱정이 계속 나온다고. 어른들은 돈 걱정만 하니 걱정의 종류가 차이가 있을 뿐 비슷한 걱정이라고. 그러니 어린이들의 걱정을 무시하면 안 된다고.
너무 심이 같은 감상이라 손뼉을 치며 웃었다. 맞는 말이다. 어린이들이 가지고 있는 걱정은 결코 어른의 그것에 비해 사소하지 않다. 우리는 각자 그 나이대에 걸맞은 엄청난 걱정들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니까. 혹시 엄마가 너의 걱정을 사소하게 취급해서 속상한 적이 있었다면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그렇다고 어른들이 돈 걱정만 하는 것은 절대 아니라고 일러두었다.
걱정 해소법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걱정은 한 번 시작되면 가끔 자신도 모르게 걷잡을 수 없이 커져버려서, 우리는 그 걱정들이 너무 커지기 전에 그 마음을 해체해서 걱정을 작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우리는 세 가지를 해보기로 했다.
첫 번째는 걱정 노트 만들기. 걱정 노트는 유독 걱정과 불안이 많은 날에 내 머릿속에 '바로 지금' 담긴 생각들을 그려보는 방법이다. '내일 수학 시험 걱정 15%, **와의 다툼 20%' 등 이런 식으로 차분히 그려보면 내 마음에 가득 찬 걱정들이 무엇인지가 명확하게 보이고, 해결책이나 생각들도 함께 적어볼 수 있다. 일단 한 번 내 손과 입을 통해 밖으로 나온 걱정은 조금 옅어지는 효과를 노리기도 했다.
아이가 그려 둔 뇌 그림에는 아주 다양한 생각들이 있었다. 한창 드림렌즈 스트레스를 받을 때라 드림렌즈가 40%인 날도 있었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 5%, 영어 학원 15%인 날도 있었다.
또 하나는 가족 교환 일기를 만들었다. 얼굴 보면서 쉽게 얘기할 수 없는 고민들을 함께 적어서 고민하자는 취지에서였다. 말보다 글이 더 편할 때도 있으니까 이 교환일기는 우리 가족에게 <우리들의 방, 리연아>같은 걱정방 역할을 해 줄 것이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마지막.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연습하기. 친구들에게, 가족들에게, 누구에게라도 현재의 마음을 또박또박 설명해 보기. 오늘 해소되지 않고 쌓여 있는 감정들과 하고 싶었던 말들을 담담하게(가장 중요한 것은 흥분하지 않기, 울지 않기) 내뱉어보기. 이런 연습들이 쌓이면 내 마음과 친구들의 마음까지 조금 더 너그럽고 따뜻하게 어루만질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정독해서인지, 아이가 걱정 노트를 찾는 일이 눈에 띄게 줄었다. 그만큼 마음이 편해진 까닭일 것이라 믿는다. 친구들에게 서운한 일이 생길 때에도 마음에 쌓아두지 않고 현명하게 조금씩 표현하는 기술도 늘고 있다. 아이가 책을 읽으며 조금씩 성장하는 것을 보는 것이 좋은 책을 함께 읽는 또 다른 기쁨이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