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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턴 록

[도서] 브라이턴 록

그레이엄 그린 저/서창렬 역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그녀는 숨을 느긋하게 한껏 들이마시며 아름답고 우아한 다리를 쭉 뻗었다. "옳고 그름." 그녀가 말했다. "난 옳고 그름을 믿어요." 그런 다음 만족과 여유가 묻어나는 한숨을 내쉬며 조금 더 깊은 곳에 있던 얘기를 꺼냈다. "흥미진진할 거예요. 재미있을 거예요. 그리고 인생의 일부가 될 거예요, 크로 영감님." 그것은 그녀로서는 최고의 찬사였다. 그 말을 하는 동안 노인은 이빨을 빨았으며, 워윅 디핑의 소설책에는 분홍색 불빛이 아른거렸다.

- 그레이엄 그린 <브라이턴 록> 90P


<사랑의 종말>의 작가 그레이엄 그린의 장편 소설이다. 화려한 휴양지인 브라이턴의 한 골목에서 신문 기자 헤일이 죽은 상태로 발견된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죽음은 너무나 빠른 속도로 '자연사'로 인정되고 그가 우연히 마주친 사람들은 진실을 외면한다. 그가 자살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누가 보기에도 당연한데 말이다. 그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만난 여인 아이다는 이 모든 것에 의문을 제기하고 그의 죽음에 무엇이 숨어있을지 파헤치기로 한다. '옳고 그르다고' 믿는 행위를 하기로 한 것이다. 그 사이 그가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식당의 종업원 로즈를 찾아가 진실을 말할 것을 설득하지만 너무나 어린 그녀는 이미 남자를 죽인 소년 핑키를 사랑하게 되었고 그를 위해서라면 불구덩이에라도 뛰어들겠다고 말한다. 그 죽음 하나를 두고 핑키에게 다가오는 현실은 냉혹하다. 믿을 수 없는 사람들과 죽음으로 인도한 죄를 저지른 자신을 향한 압박감이 핑키를 옥죄어 온다. 그가 건장한 젊은이나 중년의 남성이 아니기에 사람들은 핑키에게 어리다고 이야기하고, 그의 미래를 위해 '남들처럼' 살아가자고 회유하기도 한다. 하지만 아직은 멀리 앞을 내다보기 힘든 핑키에게는 그 모든 모습은 그들의 두려움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은 용감하다고, 이 죽음이 미스터리로 남아있지 않게 하고야 말겠다고 생각한다.

핑키가 따르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생각한다.

소년은 자기는 그 동네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처럼 꾸며 댔다. "난 종교에 관심이 없어. 지옥...... 그건 그냥 있는 거야. 지옥에 대해 생각할 필요도 없어. 죽기 전에는." (186p)

핑키와 로즈는 끊임없이 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자신이 지은 죄들에 대해서 물러서지 못할 것임을 안다. 로즈는 물론 그를 사랑한 것뿐이지만 핑키가 부정하는 진실을 정확히 바라보고 외면하지 않으려 한다. 그래서 핑키가 가장 두려워한 존재는 로즈였을 거다.

7시 30분 미사에서 돌아오는 사람들과 8시 30분 아침 예배에 참석하러 가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검은 옷을 입은 그들을 스파이처럼 훔쳐보았다. 그녀는 그들을 부러워하지 않았다. 그들을 멸시하지도 않았다. 그들에게는 그들의 구원이 있고, 자기에게는 핑키와 지옥의 벌이 있는 것이었다. (400p)

"나는 적어도 네가 모르는 것 하나를 알고 있어. '옳고 그름'을 분간할 줄 알지. 그건 학교에서도 가르치지 않아."

로즈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건 여자 말이 맞았다. 그 두 단어는 로즈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띠지 못했다. 그 두 단어의 맛은 더 강렬한 음식인 '선과 악'에 의해 소멸되어 버렸다. 여자는 자기가 모르는 선과 악에 대해서는 로즈에게 말해 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고-로즈는 핑키가 악하다는 것을 산술적인 수학처럼 분명히 알고 있었다-따라서 이 경우에 핑키가 옳은가, 그른가 하는 것이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411p)

처음에 유난히 책 이름에 쉽게 익숙해지지 않았다. 록인지 룩인지, 브라이턴은 또 무엇인지 싶은 생각으로 여러 번 앞표지의 제목을 다시 읽었다. 본문에서 스쳐 지나가듯이 브라이턴 록이 막대 사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끝까지 먹어도 그 사탕 안의 '브라이턴'이라는 글자가 변하지 않고 그대로 보이인다. 그리고 그런 브라이턴 록 막대 사탕처럼 변하지 않는 인간의 본성을 핑키의 모습을 내세워 말하고 있는 것을 마지막 장까지 덮고 나서야 인정하였다. 한 번쯤은 그도 망설였다고 믿는다. 그가 순식간에 공격을 당해 죽을지도 모를 정도로 아픔을 느낄 때 그는 두려움을 느꼈다. 당당하고 강해 보이려 애쓰던 핑키가 그때만큼은 두려워서 모든 것을 멈추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독기를 품은 그는 그 독기를 포기하지 않으려 한다. 독기가 자신을 대신해서 말해준다고 생각하면서.

사실 이 소설의 흐름만큼 조금씩 보이는 죄에 대한 이야기는 이야기가 흐르면서도 부지불식간에 떠오른다. 그들은 구원을 바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을까 생각하게 되는 거다. 어디서부터 시작된 죄를 꼬인 실을 풀듯이 조금씩 풀어낼 수는 없을까 생각하지만 핑키에게 그것은 너무나 단순하게도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이 없게 하는 것이었다. 이런 소설을 읽으면서도 어떻게든 그들이 결국 회한에 빠져 용서를 구하는 모습을 보길 바라는 나는 전형적인 행복 추구형 인간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실 핑키가 바다에 빠지고 나서야 모든 게 끝났다는 안도감의 한숨을 쉬며 책을 덮을 수 있었던 것은 또 하나의 잔인한 인간의 본성이 드러난 것이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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