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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의 높은 산

[도서] 포르투갈의 높은 산

얀 마텔 저/공경희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소설의 운명은 반은 작가의 몫이고 반은 독자의 몫이다. 독자가 소설을 읽음으로써 작품은 하나의 인격체로 완성된다"라고 얀 마텔은 말한다. 알랭드 보통도 어느 글에서 모든 독자는 자기가 읽은 책의 저자다,라고 했는데 얀 마텔의 말과 맥을 같이 하는 것 같다. 자신 안에 있는 경험과 생각이 책을 통해 다시 한번 자신만의 이야기로 재탄생되는 거라 믿는다. 내 마음 안에 없는 것이 불현듯 내 안에 들어올 수는 없을 테니까.

 

근 몇 년간 성서 통독을 하고 있다. 성서의 내용을 음미하고 묵상하는 이유겠지만 해마다 반복해서 읽는 이유는 복음의 말씀과 비유가 해마다 다르게 읽히기 때문이다. 성서는 살아있는 말씀이다. 끊임없이 우리 현재의 삶 속에서 해석하고 복음을 이해해야 한다. 지금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과의 삶의 이야기, 우리가 직면한 상황 속에서 비유와 이야기를 통해 우리 삶의 이야기 안에 살아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성서는 거룩한 책이라는 이름으로 오랜 세월 동안 세대를 거치며 읽히고 있는 오래된 책 중의 책일 터이다. 그런 나의 얕은 신앙적 믿음으로 <포르투갈의 높은 산>을 읽다 보니 나에게는 또 다른 복음 말씀을 읽는 것 같았다.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만의 이야기로 새롭게 완성되어야 할 것 같은 책이다.

 

<포르투갈의 높은 산>은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고 살아갈 희망을 잃은 채 살아가는 세 사람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1부에서는 갑작스럽게 아내와 아들 그리고 아버지를 잃은 토마스, 2부에서는 삶의 동반자였던 아내를 잃고 의미 없는 삶을 살아가는 병리학자인 에우제비우, 3부에서는 병으로 아내를 잃고 자신이 소유했던 부와 명예 가족들로부터 모든 것을 내려놓고 새로운 여정길에 오른 피터의 삶을 담았다. 다른 시대, 다른 장소에서 살았던 이 세 사람은 저자의 마법 속에서 신기하게 한곳으로 이어진다. 포르투갈의 높은 산에서.

 

포르투갈의 높은 산은 어떤 기대, 살아갈 희망, 구원으로 상징된다. 피터가 높은 산이라고 찾아간 곳은 우리가 상상하는 현실에서의 산과는 사뭇 다르다. 어디에도 없고 산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산이다. 허나 그 옛날 누군가가 그토록 찾아 헤맨 산이었고, 우리 마음속에 간직한 신기루였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모두 그런 믿음 하나쯤 가지고 살아가기 마련이다. 다다를 수 없는 궁극의 높은 산을.

포르투갈의 높은 산에 도착한다. 공기가 더 서늘하다. 피터는 어리둥절하다. 산이 어디 있지? 그가 예상한 것은 겨울 색을 입은 우뚝 솟은 알프스가 아니었다. 하지만 숲이 높은 골짜기 사이로 숨어 있고, 봉우리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 들쭉날쭉하고 황량한 사바나도 아니었다.

<포르투갈의 높은 산> 본문 319쪽

 

살면서 누구나 상실을 경험하며 살아간다. 갑작스러운 황망한 감정만큼 삶을 힘들게 하는 것도 없겠지만 세상은 그런 감정과는 별개로 흐르기 마련이다. 나의 감정과는 다르게 변함없이 흘러가는 또 다른 세계, 그런 세계를 살다 보면 우리가 있는 곳이 다름 아닌 긴 어둠의 터널임을 깨닫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내야 하는 현실을 직시할 때 마침내 우리는 근원적인 물음을 던질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왜 살아가고 있는지. 인간은 고난을 통해 과연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결국 소멸의 종착지를 향해 나아갈 뿐인 이 삶이 왜 지속되는지 묻게 된다.

 

그 해답을 찾기 위해 그저 묵묵히 앞으로 나아갈 뿐인 삶. 하지만 궁극에는 깨닫게 된다. 종말의 끝은 세상의 끝이 아닌 바로 구원이라는 것을. 신앙의 궁극점은 바로 우리 인간의 구원이라는 것을. 비로소 긴 어둠의 터널을 통과해 빛으로 우리를 이끄는 것이다. 얕게나마 그동안 내가 터득한 믿음의 정의다. 삶과 죽음의 모호한 경계, 인간이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 그 근원적인 물음 앞에 탐욕과 이기심을 버리고 존재하는 그대로 가장 단순한 형태의 삶으로의 회귀는 그 근원적인 해답이 될지도 모른다. 그 안에서 독자는 자신만의 삶을 반추하고 경이로운 삶의 여정을 계속해나갈 것이다. 집을 잃고 헤매던 토마스로 시작해 이야기가 집으로 끝나는 것처럼 집은 곧 희망, 빛, 삶의 근원, 구원이 아니었을까.

 

사랑은 흔들리지 않는 토대와

무너지지 않는 천장으로 된 집이다.

본문 35쪽

 

고백하자면 저자의 유명한 소설 <파이 이야기>를 통해 나의 얕은 신앙을 성찰할 수 있는 시간이었고, 누군가의 소설 속에서 인간적인 것과 종교적인 것이 예리하게 연결될 수 있음에 놀랐고, 한 권의 소설이 한 인간의 마음속에 깊게 새겨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경험했던 내 인생의 한 사건으로 남아 있다. 그런 경험 때문인지 <포르투갈의 높은 산>이 소설을 넘어 인생의 나침반 역할을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어떤 시련과 고난에도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기, 상실과 좌절 속에서 빛을 찾아 나아가기, 온갖 탐욕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의 삶을 바라보고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것이 되지 않을까. 나에게 그것이 곧 또 다른 희망, 구원, 집이 될 것 같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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