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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선택을 강요하는가?

[도서] 누가 선택을 강요하는가?

고동연,고윤정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영화 <82년생 김지영>에서 남편이 아내 김지영에게 아이를 낳자고 조르는 장면이 있었다. 아이가 있는 행복한 삶을 꿈꾸며 남편은 김지영에게 말한다. 자기가 다 도와주겠다고. 변하는 건 없다고. 그러니 "내 아이를 낳아도'라고.

남편의 말에 김지영은 혼자말로 말한다.

 

"그런데 왜 나는 세상이 바뀔 것만 같지?"

 

영화 속 김지영의 대사는 내내 마음에 머물렀다. 결혼과 출산을 하면 원하지 않아도 세상이 바뀌어버리는 현실. 그 현실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여성들. 현모양처를 요구하면서 동시에 멋진 커리어우먼을 원하는 사회. 지금이야 조금씩 나아가고 있지만 8,90년대에서는 도전하기 쉽지 않은 일이었다.

 

『누가 선택을 강요하는가?』는 그 당시 자신의 일을 한다는 것만으로 저항으로 받아들였던 시대. 그럼에도 끝까지 나아갔던 그 시대를 어떻게 연대하고 나아갔던 여성 미술가들의 인터뷰이다.

여성, 엄마, 예술가 사이에서 양립하기 어려웠던 시대 그들이 어떻게 선택해왔고 일을 지켜왔는지 이야기한다.

 

내가 여성 작가이기 때문에 인터뷰도 하는데,

거기에 한정되고 싶지는 않아요.

그냥 작가로서 끝까지 가고 싶어요.

근데 그것이 여성 작가에게 좋은 롤 모델이 될 수 있다면

정말 고마운 거죠.

끝까지 그리고 싶어요.

 

여성 작가이기보다 한 명의 작가로 서고 싶다는 윤석남 작가. 늦은 나이에 그림을 그리며 자신의 일을 확장해 간다. 자신에게 맞는 선생을 고르기도 쉽지 않았던 때 윤석남 작가는 뉴욕에 가서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되고 그림을 인식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시어머니와 남편이 아이들을 돌보아주는 계기가 있지만 윤석남 작가와 달리 이 책의 인터뷰에 참여한 작가들의 상황은 녹록치 않다.

 

어떤 결혼도 여성이 작가가 되는 데에는 도움이 안 돼요.

제일 좋은 건 방해되지 않는 남편이에요. 도움은 기대하면 안 돼요.

결혼 잘못하면 작가는 자신의 정체성을 반납해야 해요.

 

누군가는 극단적이라고 할 수 있다. 결혼이 굳이 여성에게 부정적인 면만 있지 않다고. 긍정적인 면으로도 작동할 수 있다고. 하지만 결혼생활의 속에서는 여성의 희생과 배려를 전제로 유지되고 있다는 걸 남자들은 알지 못한다. 정정엽 작가는 결혼 잘못하면 자신의 정체성을 반납해야 한다고 했지만 결혼 자체만으로도 정체성이 흔들리기 쉬운 위험을 항상 견디고 있다. 엄마이기에, 아내이기에, 며느리기에 본분에 먼저 충실하라는 압박...

 

나의 경우 글쓰기 수업을 듣고 싶다고 했던 남편의 반응이 떠올랐다. 돈도 안 되는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말고 차라리 직장생활에 도움 되는 학원이나 애들 반찬을 더 잘 할 수 있는 요리학원에 다니라는 핀잔. 돈 한 푼 요구하지 않았건만 나의 배움을 가로막으려는 남편의 말. 정정엽 작가의 말대로 내게 도움은 커녕 방해가 되지 않는 것만으로 고마웠다.

 

작가니까 그림을 그리는 것만으로 1차 성공이라고 하는 작가를 보며 당연할 수 있는 바램이 여성에게는 얼마나 큰 도전이고 모험인가를 깨닫게 한다. 계속하기가 쉽지 않기에 여성 작가들이 서로의 선례를 만들어내고 후배들을 이끌어줄 수 있는 기록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저는 모든 여성 작가들의 삶이

기록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남성들에게는 사회적 성공에 대해 이미 제도화된 무엇이 있어요.

그렇지만 여성 작가는 성공 사례, 실패담

이런 것 자체가 별로 없거든요.

비극적인 어떤 삶의 스캔들만 있죠.

여성은 전형만 있을 뿐 좋은 선례가 없어요.

작품만 창작이 아니라 삶의 방식도

여성 작가들은 모두 개척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요.

 

 

여성에게만 유난히 좁은 선택의 굴레. 그 위기 속에서도 작품을 놓지 않았던 건 지금 놓으면 다시 일어서기 힘들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빨리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흐름을 놓지 않으려는 몸부림이 인터뷰에 넘쳐난다. 책 속 밑줄이 늘어나고 나의 상황에 대입하며 공감하며 읽게 된다.

 

그들의 계속하는 것이 후배들에게 좋은 선례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 현장을 지키고 있는 미술계의 거장들을 보며 나는 내 위치를 생각해본다. 회사에서 또는 내 아이들에게 어떤 선례를 남기고 있나. 나를 보며 아이들은 어떤 길을 선택할까. 결코 쉽지 않지만 내 딸들이 살아갈 미래를 위해 나 자신이 먼저 내 정체성을 지키고 살아가야 함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한다.

 

이 책을 모든 엄마들이 꼭 읽기를 권장한다. 특히 나와 같은 딸을 둔 엄마들이 읽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리고 말하고 싶다. 우리 딸들에게 좋은 선례를 남겨주자고. 쉽지 않겠지만 그 길을 걸어가고 지켜나간 선배들이 있다고.

그러니 우리의 정체성을 잊지 말고 끝까지 계속하자고 꼭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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