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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한 도전

[도서] 치열한 도전

김병삼 저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독서후기

[선한리뷰 2021-002] 김병삼의 <치열한 도전>

 

한줄평 : 우리가 어떤 교회여야 하는지를 성찰하게 하는 탁월한 책

 

2020년부터 읽어오던 책을 2021년 새해 첫날에 마무리지었다. 만나교회 김병삼 목사님의 치열한~” 시리즈 도서 중 한 권이다. 본서 <치열한 도전> <치열한 순종>, <치열한 복음>이 있다.

 

치열하다,는 말은 불길이 매우 세고 맹렬하다는 뜻이다. 주의 복음에 순종하고 도전하는데 이런 치열함이 필요하다는 말인가. 너무 과하지 않은가. 책을 읽기 전에는 책 제목에 다소 상업적인 과장이 포함되어 있으리라 생각했다. 이보다 더한 책제목도 많지 않는가, 이 정도는 눈감아 줄 수 있지,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나서는 치열한외의 다른 꾸밈어는 생각할 수가 없었다. 우리의 도전은 치열해야 했다.

 

이 책은 만나교회 담임목사로 섬기고 있는 김병삼 목사가 이 시대의 교회는 어떠해야 하는지를 밝히는 교회론이다. 기존 교회의 목회자 입장에서 보면 매우 파격적이라고 볼 수 있는 다양한 도전들이 교회 내에서 이루어졌다. 가령 교회 내에 설치된 흡연실같은 것이 있다. 교회 안에 흡연실이 있다고? 이걸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할까. 당회에서 이걸 쉽게 수용했을까?

 

그러고보니 설교 시간에 가끔 우스갯소리로 가끔 소개되었던 얘기가 생각났다. 교회 신자가 담배를 피는 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안 되지요. 그러면 반대로 만약 담배 피는 사람이 교회를 나오는 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건 괜찮지요. 설교시간에 사람들은 웃으면서 신자가 담배를 피는 건 안 되지만, 담배를 피는 사람이 교회를 나오는 건 좋다고 했다. 추측해보니 만나교회에서 흡연실을 교회 안에 설치하고 나서 목회자들 사이에 김병삼 목사의 이 말이 유행처럼 나돌았나 보다.

 

(교회 내 흡연실에 대하여)

흡연실을 만들게 된 동기는 이렇다. 한 젊은 부부를 심방했는데, 아내가 말하기를, 남편이 아이와 자신을 교회에 데려다주기만 하고 자신은 예배를 드리지 않는데, 그 이유가 예배 시간 동안 담배를 참기도 힘들거니와 자신에게 담배 냄새가 날까 신경이 쓰인다는 것이었다. 그때 이 남편과 같은 사람들을 위한 예배공간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기도하고 예배하는 사람이 담배를 피우면 될까? 안 된다. 그러면 담배 피우는 사람이 교회 와서 기도하는 건 어떨까?”

생각해보니 이것은 생각의 패러다임을 바꾸면 간단한 문제였다. 그 일이 계기가 되어 그 남편의 헌금으로 교회 내 흡연실을 만들었다. (81~83)

 

우스갯소리로 남의 얘기로 들으면 재미있지만 흡연실을 당신 교회에 진짜로 만든다고 생각해보라. 이 도전은 정말 치열한 도전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설득하고 반대자들을 돌려세워야 할 것인가. 대부분의 장로들이 격렬한 반대를 했을 것이고, 문제 생기는 걸 싫어하는 목회자였다면 금방 두 손을 들고 포기하였을 것이다. 생각의 틀, 기존의 거대 프레임을 바꾸지 않고서는 감히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이러한 것들이 바로 복음의 열정으로 교회를 바꾸려는 치열한 도전이 되는 셈이다. 세상 속으로 나가려는 도전이요, 세상 사람을 교회 안으로 이끌려는 치열한 도전인 것이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고 모인 회중, 에클레시아다. 그러니까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 교회가 되는 것인데, 우리는 아직도 예배당을 교회로 오해하고 있다. 교회는 예배당, 예배처소라고 불려야 한다. 하지만 사회적 암묵적 합의로 이제 누구라도 교회라고 하면 그 교회의 이름을 달고 있는 하나의 건물을 떠올린다. 하지만 교회가 건물이 아니고 모인 회중의 집합체라면, 교회의 대표는 누구일까? 상징적으로 담임목사가 교회의 대표가 될 수는 있겠지만 교회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다. 하지만 많은 교회들이 그 사실을 잊어버린다. 목사가, 장로가 교회의 대표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말한다. 교회의 주인이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라면 그곳은 교회가 아니라고.

 

(진짜 교회인가?)

어떤 인물이 드러나는 교회가 아닌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교회가 되어야 함에도, 지금도 알게 모르게 서로가 자신의 뜻을 하나님의 뜻이라 우기며 분열하고 갈등하고 있다. 그래서 교회는 끊임없이 물어야 한다.

누가 우리의 머리인가?”

그 답이 예수가 아니라면, 그곳은 교회가 아니다. (52)

 

김병삼 목사는 이제 교회는 흩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유대인들이 모진 핍박과 박해를 피해 흩어지면서 이방인에게 복음이 전해진 것처럼, 교인들이 교회 안에만 머무르지 말고 세상 밖으로 흩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만나교회는 토요예배를 만들었다. 주일에 흩어지기 위해서였다. 이 사역에 동참하는 성도들은 토요일에 예배를 드리고 주일에는 사역이 힘든 농어촌 교회를 찾아가 수년씩 그곳 목회자와 함께 교회를 세워나간다.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이고 도전인가.

 

세상이 변하고 있다.

교회는 변하지 않고 있다.

이렇게 고여 있다가는 얼마 가지 않아 썩은 물이 되고, 말라 증발하고 말 것이다.

세상을 향해 흩어지지 않고 세상속으로 나가지 않는 교회는 노화되고 비만에 걸린 상태로 종말을 맞이할 것이다.

 

도전하자.

치열하게 도전하자.

이 책은 복음 앞에서 우리를 더욱 치열하게 이끌어 줄 것이다.

당신이 고민하던 것들, 머뭇거리던 것들, 생각 속에만 있던 것들.

그 모든 것에 대해 치열하게 도전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직한 공동체에 대하여)

정직은 삶 속에서 손해를 무릅쓰고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것이 목적이 될 때 빛을 발한다. 삶이 예배가 되는 교회는 정직한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정직하게 하나님을 믿고 살다가 기꺼이 망할 수 있는 용기, 하나님의 나라를 확신하기에 이 땅에서 자꾸 움켜쥐려는 욕심을 포기할 줄 아는 정직이 공동체에 흘러야 한다. (98)

 

(당연한 낯섬)

부르심의 이유가 분명한 교회가 되려면, 교회를 찾아온 이들이 편안하게 복음을 받아들이고, 전 인격적으로 공동체 일원이 되도록 해야 한다. 기존 교인들이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는 모습이 누군가에겐 낯설고 불편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117)

 

(공동체란)

공동체라는 것이 그런 것 같다. 한 사람의 아픔이 곧 우리 모두의 아픔으로 다가오는 것, 그 사람이 함께 가기 위해 모두가 기다려 주고 참아 주는 인내와 관용, 희생이 필요한 공동체라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생각하는 공동체의 범위가 상당히 좁다는 것이다. 대부분 같은 교회를 출석하는 지체들을 자신의 신앙 공동체로 여길 뿐이다. 이렇게 한 몸 된 공동체의 개념이 과연 자신의 교회 안이라는 한정된 집단에만 적용하는 것이 옳은지 고민해 보아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 교회의 하나님이 아니라 온 세상의 하나님이시며, 따라서 이 땅에는 우리가 지체로 여겨야 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 (129)

 

(삶으로 예배드리기)

예배도 해야 하는예배가 있고 저절로 해지는예배가 있다. 예배시간을 정해놓고 특정한 장소에서 드리는 것이 해야 하는 예배라면, 장소나 시간에 관계없이 삶에서 저절로 드려지는 예배가 있다. 진정 하나님을 예배한다면 해야만 했던 예배를 드려지는 예배로 바꾸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삶과 예배를 구분짓지 않아도 된다. (171)

 

(종교 소비자인가)

자신이 종교 소비자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기준은 간단하다. 나의 행동이 교회 내의 다른 사람들, 나아가 세상에서 예수를 믿지 않는 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의식하고 있느냐 아니냐이다. 아무리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해도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않으면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님을 성경은 분명히 하고 있다. (185)

 

(미디어 교회)

미디어 교회를 시작하자 흡연실을 만들 때와 유사한 질문을 받았다.

교인들더라 흡연실에 가서 담배를 피우라고 권하는 것입니까?”

교인들더러 교회에 나오지 말고 온라인으로 예배드리라는 것입니까?”

 

이 질문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무엇인가? 무도 현재 교회에 나오고 있는 사람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선교적 교회는 패러다임이 다르다. 선교적 교회는 교회 바깥에 있는 사람들의 움직임에 먼저 관심을 둔다. 그래서 이렇게 답변한다.

 

교회 밖에 계신 분들이 흡연실에서 담배 피우시고 교인이 되라고 하는 것입니다.”

미디어를 통해 온라인에서 예배 드리다가 오프라인 공동체에 참여하시라는 것입니다.”

 

방향이 문제다. 흡연실과 미디어 교회는 모두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이 교회 안으로 들어오는 움직임을 돕기 위한 것이다. (233~234)

 

(담장을 넘어 세상 속으로)

1973년 빌리 그레이엄 목사 방한 집회에 1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여의도 광장을 채웠던 장면을 회상하며 대형 집회를 통해 한국 교회의 반전을 시도하는 사람들도 있다. 적어도 내 개인적인 판단으로는 이제 그런 방식으로 사람들을 참여시키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복음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탁월하다. 나는 지금 복음의 탁월성 그리고 말씀과 기도, 예배가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 복음의 탁월성을 전달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가야할 길은 담장을 넘는 것이다. 세상속으로 들어가 그들이 살아가는 방법을 이해하며 그들이 이해하는 방법으로 복음을 전해야 한다. (272~273)

 

[선한리뷰]

이제는 모이기에 힘쓰기를 넘어, 흩어지기에 힘써야 할 때다.

이제는 우리 교회만의 공동체가 참 공동체가 아님을 깨달아야 한다.

익숙한 기존 성도들만의 익숙한 예배 공동체가 아니라, 밖에서 안으로 쉽게 들어올 수 있도록 문을 넓히는 공사를 해야 한다.

 

내 마음부터 먼저.

익숙한 공동체의 평화를 내 것인 양 움켜쥐지 말고,

쭈볏거리며, 머뭇거리며, 문 밖에서 서성거리는,

영혼에 목말라 하는 사람들을 위해

과감하게 내 것을 버리자.

교회 안에서 우리끼리 예배 드리고 은혜 받는 것보다,

조금 불편하고 낯설더라도, 여러 사람과 함께 가는 것이 더 소중하고 아름답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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