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후기
1q84, BOOK 3 - 간절히 소망하는 것에 대하여
악을 선으로 갚지만, 그 선은 현실세계에서 악이 된다.
성폭력 희생자들을 세이프하우스라는 집에서 돌보며 섬기는 할머니가 있다. 할머니는 피해자들을 돌보기만 하는 선한 사람이 아니다. 그녀는 폭력을 가하는 자들을 그냥 둘 경우 계속해서 같은 피해자가 생기기 때문에 이를 원천 차단하려고 한다. 그렇다. 그를 없애야만 한다. 경찰에 신고할 수도 있지만 이는 자칫 일을 그르칠 뿐 아니라, 오랜 시간이 걸리고 그 동안 계속해서 다른 피해자가 나타날 것이다. 그래서 할머니는 자신의 뭉친 근육을 풀어주던 아오마메를 불러 그 일을 대신 맡긴다.
악을 처단하지만 사실 그 일을 하는 행위와 결과는 현실세계에서는 살인죄에 해당한다.
아오마메와 할머니는 그렇게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할머니를 돕는 수족같은 집사 다마루는 조선인이다. 그 역시 역사의 희생자다. 한국으로 돌아가지 못해서 어쩔 수 없이 일본에 남아 일본인이 되었다.
아오마메는 종교집단 선구로부터 도망쳐나온 쓰바사의 성폭력 이야기를 할머니로부터 전해듣고 쓰바사를 만나본 뒤 결행의지를 다진다. 성폭력 가해자인 종교집단 선구의 리더는 <공기번데기>로 종교집단을 고발한 후카에리의 아버지다.
아오마메가 간절히 바라는 사랑의 남자인 덴고는 후카에리의 <공기번데기>를 문학성 있는 작품으로 다시 작성하면서 후카에리와 떨어질 수 없는 인연의 관계가 되었고, 그렇게 아오마메의 1Q84 세계에 들어오게 된다.
아오마메가 달이 두 개 떠 있는 기묘한 현상 앞에서 스스로 1Q84년이라고 이름을 짓는다. 덴고는 <공기번데기>에서 달이 두 개 떠있는 장면을 가져와 자신만의 소설을 창작한다. 덴고가 작성하는 소설의 이야기는 1Q84의 세계와 합쳐진다.
두 사람은 달이 두 개인 세계에서 만난다. 그리고 달이 한 개인 세계로 손을 잡고 떠난다. 탈출하려고 한다.
달이 한 개인 세계가 원래 그들이 살던 세계인데, 그렇다면 달이 두 개인 세계에서 사라진 사람들은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덴고는 연상의 여자친구를 잃었다. 그리고 갑자기 60대에 불과한 아버지를 잃었다.
아오마메는 새로 사귄 절친 여자경찰을 잃었고, 세이프하우스를 지키던 세퍼드 개를 잃었다.
달이 두 개인 1Q84년에서 달이 한 개인 1984년으로 탈출하면서 이야기는 끝나지만, 그 이후 그 세계에서 실종되거나 죽었던 사람들이 다시 살아나 만난다는 이야기는 없다. 1Q84에서 죽거나 사라진 사람은 그냥 사라진 것이다.
너무 많은 장치가 혼재되어 있어, 일일이 그 개연성을 확인할 수가 없다. 요양원에서 갑자기 의식을 잃고 사망한 덴고의 아버지나, 여자친구인 유부녀의 실종 사건이 1Q84(덴고는 고양이마을,라고 부르는) 세계에서 자신을 쫓아다니는 종교집단 선구에서, 벌인 일인지 명확하지 않다.
"깊은 고독이 낮을 지배하고, 큰 고양이들이 밤을 지배하는 마을이야. 아름다운 강이 흐르고, 오래된 돌다리가 놓여 있어. 하지만 그곳은 우리가 머무를 곳이 아니야."
우리는 이 세계를 각자 다른 말로 부르고 있었던 것이다. 아오마메는 생각한다. 나는 '1Q84년'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그는 '고양이 마을'이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하지만 가리키는 건 똑같은 한 가지다. (BOOK 3, 703쪽)
1Q84 아니 고양이마을에서, 덴고의 아버지가 의식을 잃고 상태에서 NHK 수금원이 되어 집을 돌아다니며 문을 두드리고 돈을 받으려고 하는 행위가, 아오마메의 1Q84 세계에서 숨어 있는 아오마메의 집과 실제 연결되 것인지, 두 세계에 대한 명확한 기준은 보이지 않았다.
작가는 자신만의 설계도를 통해 이 세계를 창조했을지라도 여전히 모든 것은 안개와 같다.
지나치게 많이 나오는 성적인 장면과 단어들은 읽는 이를 당혹하게 만드는 요소다. 일본은 그런 부분에서 더 개방적이어서 그런 것일까. 문학적인 요소라 해도 조금 과해보이는 건 어쩔 수가 없다. 굳이 그런 표현과 장치를 이용해야 할까 하는 의문은 아쉬움으로 남겨둔다.
아오마메가 덴고와 성적인 결합 없이도 덴고의 아이를 임신하는 장면은, 역시 예수를 처녀의 몸으로 수태하는 성경 이야기를 차용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기독교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인류를 구원하는 구원자로 나온다. 1q84에서 아오마메가 임신한 덴고의 아이는 종교집단 선구의 차세대 리더로 선택되어 추격을 받는다.
"거센 낙뢰와 함께 도심에 큰 비가 내렸던 그날 밤에, 나는 수태했어요. 내가 리더를 처리한 바로 그날 밤에. 전에도 말했든 성적인 교섭은 일절 없이."
아오마메는 수화기를 움켜쥐고 고개를 흔든다. "그건 있을 수 없어요. 이건 덴고이 아이예요. 나는 그걸 알아요." (BOOK 3, 640쪽)
아오마메는 성적인 관계 없이 아이를 임신하고, 그 아이가 덴고의 아이임을 확신한다. 그리고 종교집단 선구가 요구하는 것이 자신이 아니라 뱃속의 아이이며, 그 아이를 종교집단의 또다른 리더로 데려가려는 것임을 알게 되면서, 자신의 운명을 바꾸기로 마음 먹는다.
"지금부터는 지금까지와는 다르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제 마음대로인 누군가의 의지에 조종당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부터 나는 단 하나의 원칙, 즉 나의 의지에 따라 행동할 것이다.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작은 것을 지킨다. 그러기 위해 나는 사력을 다해 싸울 것이다. 이건 내 인생이고, 이 안에 있는 것은 내 아이다." (BOOK 3, 651쪽)
1Q84이 세계에서 천신만고 끝에 덴고를 만난 아오마메는 덴고와 함께 이 세계를 떠나기로 마음 먹는다. 죽음을 각오하고 운명을 거슬러 올라가려고 한다. 마치 폭포를 뚫고 자신이 태어난 곳으로 되돌아가려는 연어와 같다.
"그래. 우리는 이제부터 고양이 마을을 떠날 거야. 둘이서 함께." 그녀는 말한다. "이 마을을 나가버리면, 이제 낮이건 밤이건 우리가 따로 떨어지는 일은 없어." (BOOK 3, 704쪽)
하지만 독자인 나는 여전히 의심의 구름 가운데 있다. 그들이 탈출하는 세계는 진짜 1984년 세계일까, 이 모든 이야기가 덴고가 쓰고 있는 소설의 일부는 아닐까. 워낙 소설 앞부분에 설명되고 있어서 대부분의 독자는 놓치겠지만, 나는 그 의심을 마지막 장을 놓을 때까지 놓지 않고 있었다.
"달이 두 개 뜨는 세계에서 전개되는 이야기를 그는 썼다. 리틀 피플과 공기 번데기가 존재하는 세계다. 그 세계는 후카에리의 <공기 번데기>에서 빌려온 것이지만 이제는 완전히 그 자신의 것이 되었다. 원고지를 마주하는 동안, 그의 의식은 그 세계에서 살고 있었다. 만년필을 내려놓고 책상 앞을 떠나도 의식은 아직 그쪽에 머물러 있곤 했다. 그런 때는 육체와 의식이 분리되는 듯한 특별한 감각이 생겨서, 어디까지가 현실세계이고 어디서부터가 가상의 세계인지 제대로 판별하지 못하는 상태가 된다."(BOOK 3, 67쪽)
그렇다면 1Q84의 원저자는 덴고가 아닌가. 하지만 BOOK 4의 맨 마지막 문장을 보면, 그런 의심은 의심에 불과함을 알 수 있다.
"그녀는 공중에 가만히 손을 내민다. 덴고가 그 손을 잡는다. 두 사람은 그곳에 나란히 서서, 서로 하나로 맺어지면서, 빌딩 바로 위에 뜬 달을 말없이 바라본다. 그것이 이제 막 떠오른 태양빛을 받아, 밤의 깊은 광휘를 급속히 잃고, 하늘에 걸린 한낱 회색 오려낸 종이로 변할 때까지." (BOOK 3, 마지막 문장, 742쪽)
하지만 다시 의심은 고개를 내민다. 이 마지막 문장이 바로 덴고의 소설, 마지막 문장은 아닐까. (내가 너무 나가고 있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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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리뷰)
책을 덮으면서 느낀 첫 감상은,
이 거대한 서사는 결국 간절히 소망하고 바라는 것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 이다.
두 사람이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손을 잡고 한 곳을 바라보는 것.
그것이 사랑이고 행복이라는 것.
간절히 바라고 소망하고 기도할 때, 자신의 운명을 개척할 수 있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
사람은 사랑을 갈구하며 사는 존재라는 것.
그렇지만 그 사랑과 행복은, 현실세계에서는 가혹하고, 아프고, 처참하고, 어렵지만
상상 속의 세계, 자신이 만들어내는 세계에서는 결국 이겨내고, 앞으로 나아가고, 인내하고, 쟁취한다는 것.
그래서 우리는 현실을 참고 견디며, 그 꿈의 세계를 현실의 세계로 가져오기 위해 죽음을 불사한다는 것.
이제 2022년이 끝나고, 2023년이 온다.
나는 2J23년이라고 나만의 세계 이름을 지었다. 점프, 도약, 건너감, 다른 세계로의 이동.
위로 점프할 수도 있고, 아래로 점프할 수도 있다. 단단한 지형일 수도 있고, 아래로 폭삭 흘러내리는 지반일 수도 있다. 튼튼하여 흔들림 없는 징검다리일 수도 있고, 흔들흔들 물살에 움직이는 불안정한 징검다리 일 수도 있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말자.
내가 사람을 두려워하리요.
내 손을 잡고 이끌어주시는 분을 믿고 의지하고 앞으로 나아갈 때,
나는 머무르지 않을 것이다.
2J23년은 점프하는 세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