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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에서 튀어나온 죽음

[도서] 모자에서 튀어나온 죽음

클레이튼 로슨 저/장경현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4점



 

    클레이튼 로슨『모자에서 튀어나온 죽음』은 1930년대 작품입니다. 영미권 추리소설의 황금기라 불리던 시절의 소설이고, 개인적으로 뜻 모를 로망을 품고 있는 시대의 글이라 애착을 갖고서 무척 기대하며 읽어 보았습니다. 아마도 추리소설을 즐겨 읽는 독자라면 이 시대의 소설이 국내에 번역되어 소개되는 것 자체만으로도 반갑고 행복한 일이라 여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시대의 소설이 거의 비슷한 형태를 보여서 괴목떡판으로 떡 찍어낸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일일 테지만, 『모자에서 튀어나온 죽음』은 존 딕슨 카의 소설과 닮아도 너-무 닮은 듯합니다. 오마주는 분명 아닐 테고, 이토록 비슷한 소설이 나올 수 있는 게 가능한가 하며 궁금해 하던 찰나에 이 둘이 굉장히 친한 친구 사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아! 그래서 이토록 닮은 소설을 쓸 수 있었구나! 하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친구 따라서 강남 간다 하더니, 로슨 강남 스타일을 추구하며, 내 친구는 나의 거울이요, 하는 추리소설이었을 줄이야.

 

 

    『모자에서 튀어나온 죽음』은 특히 존 딕슨 카의 대표작, 『세 개의 관』과 닮았습니다. 그 소설이 갖는 장점뿐만 아니라 단점까지 그대로 빼다 박은 듯합니다. 가끔씩 소설에서 기드온 펠 박사가 했던 대사를 그대로 차용하고 있어서 그 모습이 괜히 반갑게 느껴졌습니다. 또한 존 딕슨 카가 그의 소설에서 밀실 강의를 했다면, 클레이튼 로슨은 추리소설의 형태와 살인수법, 범인유형 등을 장황하게 설명하며 두 소설 간의 유사한 모습을 보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살인이 일어나는 시점, 탐정과 경감이 이동하는 부분과 그때 나누는 대화, 범죄 현장의 모습과 단서를 던져놓는 방식, 밀실을 구성하는 요소, 몇몇 등장인물의 개성 있는 모습과 그들을 묘사하는 방식 등, 소설 간의 닮은 부분을 굉장히 많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모방 속에서 클레이튼 로슨만의 재치를 느낄 수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마술사 겸 아마추어 탐정 멀리니와 뉴욕시 살인반 개비건 경감이 말끝마다 투닥거리며 옥신각신하는 대화가 무척 재미있습니다. 그 시대에 이미 꽤 유명해진 명탐정들을 거론하며 추리소설 자체를 풍자하는 블랙코미디가 오가는데, 이때 어떤 추리소설을 말하고 있는 것인지 그것을 알아내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소설의 트릭은 마술에서 쓰이는 트릭처럼 굉장히 기계적인 느낌의 것이라 저는 이부분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가끔은 추리소설 매니아들이 이런 기계적인 트릭을 실제로 실험해보고 동영상을 찍어놓기도 하던데 아마 저만 이해하지 못했을 뿐이지 충분히 실현 가능한 트릭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어쨌든 제가 풀지 못했던 그 트릭은 이 소설의 일부분일 뿐이고 그 밖에 많은 부분에서 추리해야할 요소들을 던져놓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여기서 그 부분을 다시 정리해내기가 쉽지 않을 정도로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역시나 대단한 소설이었단 생각만 마술처럼 남습니다. '여긴 어디, 난 누구'하며 모자 속에서 튀어나온 토끼의 어리둥절해할 심정이 이해됩니다.

 


    끝으로, 이 소설을 읽으며 몇 차례에 걸쳐 신경쇠약에 걸릴 뻔 했단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하지 않을 수가 없어 아니 할 수가 없다는 듯, 펠 박사를 닮은 멀리니가 사건의 진상을 설명할 때 참고 지식을 장황하게 나열하는 모습을 종종 보이는데, 이러한 장면을 보고 있자니 장문의 대사를 읊으려 하는 멀리니의 말을 미리 자르지 않은 개비건 경감이 원망스러울 정도였습니다. 빨리 해답을 알고 싶어서 안달이 나있는 경감의 모습을 변태처럼 즐기는 경향이 있는 겐지, 멀리니는 감칠맛 나도록 일정한 속도로 사건의 풀이를 가능한 한 길 수 있는 가장 긴 이야기로 풀어서 말합니다. 왜 하나같이 명탐정이란 인물들은 이렇게까지 있는 뜸 없는 뜸 다 들여가며, 있는 척 없는 척 다 해야만 하는 것일까요. 아오! 뒷골이야. 평소에 피지 않던 담배를 찾아서 잘 보이지도 않는 코담뱃갑을 찾는다고 아주 혼쭐났습니다. 그건 마치 그의 글을 모방한 이런 제 글과 닮았습니다. 


 




 


    이런 이들이 모두 범인이 되어 왔다. 저마다 또는 함께. 그리고 독자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 이렇듯 많은 작가들이 소재의 고갈이라는 딜레마에서 탈출하려 애쓰다가, 교활하게도 통상적인 용의자 리스트 바깥에서 범인을 만들려 시도하여 그 악역을 탐정과 지방검사, 배심원, 배심원 대표에게 맡기다 보니 결국에는 참신함을 추구하는 마지막 절박한 시도로 서술자 자신에게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제 남은 것이 거의 없어 보인다. 남은 것이라고는 독자뿐이다! (19쪽)

 

 

    멀리니가 진지한 태도를 취하고 있을 때와 마술 준비 과정으로 수다를 떨고 있을 때를 구별하기란 전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는 사람들에게 어떤 것이든 팔 수 있다. 그는 불가능을 파는 것이다. (79쪽)

 

 

    어떤 이들은 추리소설이 개연성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물론 그렇습니다! 모든 소설이 마찬가지요.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하하! 간디스토마의 일생에 대해 연구해본 적 있소? 아프리카 영양, 와상 성운, 현미경으로 확대한 파리나…… 아니면 여자의 치마받이 같은 것을 본 적 있소? 이런 것들 모두가 개연성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193쪽)

 

 

    이 사건은 난해합니다. 하도 난해해서 나는 오직 하나의 설명밖에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대단히 비현실적입니다. (306쪽)

 

 

    나는 살인자가 누구인지 알고 있습니다, 경감. 아까부터 알고 있었소. 하지만 여전히 미스터리가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무언가 발견할 때마다 미스터리가 더욱 깊어집니다. 어쩌면 살인자는 우리가 상대하기에 너무 영리한지도 모르오. 어쩌면……. (328쪽)

 

 

 



 

크롱의 혼자놀기 : http://ionsupply.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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