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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당

[도서] 대성당

레이먼드 카버 저/김연수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한 남자가 진흙밭을 걸어간다. 발을 디딜 때마다 진흙들이 그의 발목을 잡는다. 그럼에도 땀을 뻘뻘 흘리며 그 진흙들에서 힘겹게 발을 뗀다. 그러다가 결국에는 주저앉고 온몸이 진흙투성이가 된다. 일어나려고 몸부림치면 칠수록 진흙들이 그를 바닥으로 끌어당긴다. 오래 주저앉아 있을수록 몸무게의 중력이 점점 더 그를 바닥으로 떨어뜨린다. 사람들은 이제 그가 끝났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그는 일어났고 다시 걸었다. 그렇게 10년의 진흙밭을 더 걷고 작품을 남기고 생을 마감했다.

 

얼마 전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의 레이먼드 카버 편을 읽었다. 카버의 인생과 작품을 보면서 떠오른 이미지가 바로 진흙밭을 힘겹게 걷는 한 남자의 모습이었다. 그가 얼마나 처절하게 살았는지, 그리고 그 처절한 삶에서 나오는 작품들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를 다시 한번 느꼈다. 그리고 오래전에 읽었던 [대성당]을 꺼내어 다시 읽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레이먼드 카버라는 한 인간이 더 또렷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대성당]은 대성당이란 작품으로 대표되는 카버의 단편소설집이다. 그러나 단순히 소설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나 처절하다. 알코올중독과 가족과의 갈등으로 점철되었던 그의 인생답게 소설 속에서는 바닥에 떨어진 인생에 대한 예리한 묘사들이 기록되어 있다. 가장 감동 있게 읽었던 소설은 [굴레]라는 소설이다. 이 소설의 모텔에 거주하는 주인공이 경마로 모든 것을 잃고 삶에 지친 홀리츠 가족을 보는 시각으로 진행된다. 처음 홀리츠 가족이 모텔에 들어오던 모습을 이렇게 묘사한다.

 

"미네소타 번호판을 단 낡은 스테이션왜건이 창 너머 주차장으로 들어온다. 앞자리에는 남자와 여자가, 뒷자리에는 남자아이 둘이 타고 있다. 7월이고 기온은 화씨 100도가 넘는다. 그들은 채찍질이라도 당한 듯 지쳐 보인다. 차 안에는 옷들이 걸려 있다. 뒤에는 여행 가방, 박스 등이 쌓여 있다. 할리와 내가 나중에 얘기를 맞춰본 바에 따르면, 미네소타에 있는 은행에다가 집, 픽업, 트랙터, 농기구, 소 몇 마리를 넘겨버린 뒤, 그들에게 남은 것은 다다." (P 257)

 

그들은 그곳에서 살아보기 위해 발버둥 치지만 삶은 만만치가 않다. 아내만 겨우 취직하지만, 아내 역시 가족들을 혼자 부양하기가 만만치 않다. 힘겹게 삶을 살아가는 중 어느 날 수영장에서 모텔 사람들이 모여 파티를 한다. 술에 한참 취한 홀리츠는 다이빙대에서 뛰어내리다 크게 다친다. 사람들이 그를 병원으로 데려가려 하자 그는 술주정처럼 이렇게 말한다.

 

"난 더 못 가겠어!"

 

어쩌면 홀리츠는 레이먼드 카버 자신이 아니었을까. 또 홀리츠의 아내 베티는 어려서 카버와 결혼해 알코올중독인 남편과 자녀들을 혼자 책임져야 했던 카버의 아내 메리앤이 아니었을까? 실제로 카버와 메린앤은 카버의 술주정으로 인해 두 번이나 파산하고 모텔을 전전했던 경험이 있다.

 

 

 

카버와 메리앤을 연상시키는 소설 중의 또 하나는 [깃털들]이란 소설이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은 친구 부부에게 부부가 함께 초대받았던 좋았던 날들을 회상한다. 그리고 그것들이 깃털처럼 사라졌음을 회상한다.

 

"버드와 올라의 집에서 보낸 그날 저녁은 특별했다. 특별하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그날 저녁, 나는 내 인생이 여러모로 썩 괜찮다는 것을 느꼈다. 내가 느낀 걸 프랜에게 말하고 싶어서라도 나는 어서 둘만 있고 싶었다. 그 저녁에 내게는 소원이 하나 생겼다. 식탁에 앉아서 나는 잠시 두 눈을 감고 열심히 생각했다. 소원이란 그날 저녁을 절대 잊지 않겠다는 것, 혹은 다시 말해 그날 저녁을 놓아버리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 소원은 실제로 이뤄졌다. 그리고 그렇게 된 것은 내게는 불행했다. 당시에는 그것을 알 도리가 없었다." (P 40)

 

카버의 경험 때문인지 알코올 중독에 대한 소재가 많이 등장한다. [보존]이란 소설에서는 알코올 중독에 걸려 하루 종일 집에서 빈둥대는 남편, 그리고 그 남편을 위해 하루 종일 일하다가 지쳐서 돌아오는 아내가 등장한다. 어느 날 아내가 집에 왔을 때 남편은 술에 취에 잠들어 있고, 냉장고는 고장이 나서 그 안에 있는 아이스크림이 다 흘러나와 있었다.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을 이처럼 극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읽은 소설이다.

 

"어느 늦은 오후, 퇴근한 그녀가 차를 주차한 뒤 집으로 들어갔다. 부엌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거실 켜놓은 TV 소리가 들렸다. - 중략- 다른 쪽 끝으로는 소파의 팔걸이에 걸쳐 놓은 베개 위에 놓인 남편의 정수리가 보였다. 그는 꼼짝하지 않았다. 잠든 건지, 잠든 게 아닌 건지, 그녀가 들어오는 소리를 들었는지, 듣지 못했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그녀는 그렇든 그렇지 않든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식탁 위에 핸드백을 놓고 요구르트를 먹으려 냉장고로 갔다. 그러나 냉장고 문을 열자, 갇혀 있던 미적지근한 공기가 그녀에게 밀려왔다. 그 안이 어찌나 엉망진창인지 믿지 못할 정도였다. 남은 생선 스틱과 양배추 샐러드가 냉동칸에서 녹아내린 아이스크림으로 뒤범벅이었다. 아이스크림은 스패니시 라이스를 넣어둔 용기로도 흘러들었고 냉장고 바닥에도 고여 있었다. 죄다 아이스크림 범벅이었다. 역겨운 냄새가 얼굴로 밀려들어 욕지기가 치밀었다." (P 61-2)

 

 

 

이 소설의 곳곳에는 진흙에 발이 잠겨서 발버둥 치는 남자의 이야기가 그려져 있다. 소설의 인물로 그려지는 레이먼드 카버이다. 그가 경험했던 인생의 바닥들과 아내와 자녀들과의 애증이 애틋하다 못해 애절하게 그려진다. 아마 그 당시의 그에게 사람들은 왜 그렇게 사느냐고 말했겠지만, 그도 아마 최선을 다해서 그곳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을 쳤을 것이다. 어떻게 아냐고? 그것이 소설에서 느껴진다. 비록 카버 자신에게는 불행한 시간들이었겠지만, 그런 시간들이 있었기에 인생을 녹여내는 이런 소설들을 우리가 읽을 수 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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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워블로그 책찾사

    진흙에 발이 잠기는 묘사는 커버는 물론 슬럼프를 겪을 때의 모습과도 통하는 것처럼 보여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 우리의 삶이라서 비록 커버의 굴곡진 삶이 독특해 보여도 우리의 삶과 통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그의 삶의 다양한 모습들이 반영되어 있는 이 단편집의 내용은 그의 이야기로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공감의 대상으로 느껴지는 것이 아닐까요? ^^

    2019.11.27 10:09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가을남자

      맞아요^^ 인생이 담긴 소설이기에 읽으면서 더 공감하고 감동하는 것 같아요... 왠지 연민가 공감이 느껴지는 작가예요^^

      2019.12.09 14:00
  • 파워블로그 나난

    작가에 대한 책을 읽고 그 작가가 쓴 책을 읽으면 왠지 무언가 더 잘 이해되는 느낌이 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아는 사람이 쓴 글 같은 그런 느낌이요.

    2019.11.27 11:02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가을남자

      아!! 바로 그 느낌이예요 ㅎㅎ 내가 아는 사람이 쓴 글 같은 느낌요 ㅎㅎ 이 책을 다시 읽으면서 그런 비슷한 느낌을 받았네요^^

      2019.12.09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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