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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제국 패망사

[도서] 일본 제국 패망사

존 톨런드 저/박병화,이두영 역/권성욱 감수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역사상에서 보면 전쟁이나 반란 등에서 큰 성공을 거두는 경우에 예기치 않은 우연 들이나 상대방의 어리석은 실수들이 반복되는 경우가 많다. 조선 초 이방원이 권력을 잡는 과정에서 정도전이나 다른 세력들의 방심이 결정적이었다. 수양대군이 김종서 등을 제거하는 과정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세계사의 큰 전쟁들의 경우에도 상대방의 어이없는 실수가 상황을 크게 반전시키는 경우가 많이 있다. 일본의 태평양 전쟁 초기의 어마어마한 승리도 사실은 미국과 연합군의 방심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일본제국 패망사]의 3부에서는 바로 이런 태평양 전쟁 초기의 상황에서부터 시작해서 미드웨이 해전의 반전까지의 시기를 다루고 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일본 제국주의의 황금기이다.

 

당시 태평양을 지키고 있는 미국과 연합군의 결정적인 근거지를 세 가지로 요약하면, 하와이 진주만의 군함들과 공군기지의 전투기 전력과 필리핀의 클라크 공군기지의 전투기 전력과 말레이반도의 영국의 Z 기동부대라고 불리는 함정들이었다. 이중 단연 진주만의 전력이 가장 막강했고, 그다음은 필리핀의 클라크의 공군기지의 전력, 마지막으로 영국의 Z 함대였다. 당시 영국은 독일과의 전쟁 중이어서 Z 함대에 많은 전력을 보강하지 못하고 낡은 군함으로 이루어진 함대를 구성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전통적인 해군 강국인 영국의 함대는 무시 못 할 수준이었다.

 

 

 

당시 일본은 미국의 압박으로 인해 석유가 고갈되어 가는 상황이었고, 이렇게 버티다가는 1년 안에 모든 군사장비들이 무용지물 되어 고사된다는 위기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결국 그들은 모험을 하기로 결정한다. 바로 진주만을 공격하고 동시에 동남아의 여러 지역을 점령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난관이 필요했다. 우선 일본의 항공모함이 미국의 정찰대에게 들키지 않고 진주만 근처까지 잠입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장거리 항해를 항공모함과 호위함들로 구성된 선단이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항해하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항공모함과 호위 선단, 그리고 중간에 급유를 위한 지원 선박까지 어마어마한 규모의 항모 선단이 일본에서부터 하와이 근처까지 들키지 않고 이동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런데 그런 불가능이 일어난 것이다. 일본 항공모함에서 전투기와 폭격기가 발진할 때까지 미국에서는 그것을 알아차린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만큼 당시 미국은 일본이 진주만을 공격해 올 거라고는 상상도 못하고 있었다. 그로 인해서 진주만에 공군기지의 활주로에 대기 중이던 전투기와 폭력기, 그리고 항구에 정박해 있던 전함들이 순식간에 불덩어리가 되었다. 이 책에서는 당시의 끔찍한 장면을 이렇게 묘사한다.

 

"애리조나는 화산처럼 폭발했다. 부근의 전함에 있던 사람들은 애리조나가 수면 위로 튀어 올랐다가 두 동강이 나는 모습을 봤다. 9분 만에 두 쪽이 난 3만 2600톤 급 전함이 거대한 불덩이가 되어 개펄 속으로 가라앉았다. 검은 연기가 배의 잔해 위로 자욱했다. 애리조나에 승선한 1500명이 넘는 사람 중 단 한 명도 목숨을 건지지 못할 것 같았다. 그 앞에 있는 배는 전함 대열 중에서 마지막인 네바다였다. 이 배는 좌현의 선수에 어뢰 한 발과 후갑판에 폭탄을 한 발 맞고 선수가 물속으로 처박혔다. 전함 대열 곳곳에서는 사람들이 바다로 뛰어들어 가까운 포드 섬으로 헤엄쳐가려 했다. 하지만 어떤 곳은 떠 있는 기름 두께가 15센티미터나 될 정도로 기름이 수면을 뒤덮고 있었다. 급기야는 이 기름에 불이 붙어 물로 뛰어드는 대부분의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P 355)

 

 

진주만의 공격과 함께 일본의 말레이반도와 필리핀에 대한 공격이 시작되었다. 미국 태평양을 지키는 함대가 진주만에 주둔하고 있었다면, 필리핀의 중심기지는 클라크 공군기지였다. 이곳에 필리핀 방어의 주된 공군 병력이 주둔하고 있었다. 그런데 진주만이 공습되고 나서 얼마 후 어이없이 이들 역시 거의 무방비 상태에서 일본의 폭격을 받는다. 일본 전투기의 이동을 목격한 전보들이 전해졌지만, 진주만과 같이 안이한 태도들로 인해 클라크 공군기지 사람들은 이 정보를 받지 못했다.

 

"미쓰비시 항공기 27대에 탄 일본군은 이미 햇볕에 반작이는 여러 대의 거대한 미군 폭격기를 볼 수 있었다. 그들에게는 비행장 동쪽 24킬로미터 지점에 거대한 교통 표지처럼 솟아 있는 아라야트 산을 배경으로 펼쳐진 활주로에 표적이 고스란히 모습을 드러낸 꼴이 우스꽝스럽게 보였다. 바로 위에는 다시 27대의 폭격기가 더 따랐다. 고공에서 35대의 제로 전투기가 정지 비행을 하고 있었다. 오후 12 35분이었다. 진주만 공습에서 10시간이 지난 지금, 클라크 기지의 모든 비행기는 손쉬운 먹잇감이었다." (P 378-379)

 

 

마지막으로 Z 기동함대 역시 너무나 손쉽게 일본 항공기의 공격으로 궤멸된다. 당시는 함대끼리의 포격전이 대부분이었다. 진주만 공습처럼 항공모함과 전투기들의 공격의 승패가 갈라지는 전투는 생소했다. 이 점에서는 일본이 새로운 전투 양상을 만든 것이다. Z 기동함대는 전쟁이 발발했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감에 항구를 출발해서 바다로 나온다. 그러나 전투기의 호위 없이 함대가 바다로 나온다는 것은 자살행위와 같았다. 결국 일본 폭격기에 의해 함대가 이동하는 과정에서 발견이 되고 어이없이 궤멸되고 만다. 일본 지휘부조차도 일본 전투기와 폭격기들이 Z 함대를 침몰시켰다는 소식을 믿지 않을 정도 너무나도 손쉬운 승리였다.

 

그다음의 과정은 일본의 파죽지세였다. 물론 필리핀의 경우 맥아더의 저항이 만만치 않았지만, 결국 철수를 하게 된다. 말레이반도의 경우도 너무 쉽게 점령을 당한다. 그 후의 태평양의 여러 섬들도 마찬가지이다. 미드웨이 해전이 있기까지 일본은 역사상 가장 광대한 제국을 건설한다.

 

 

이런 일본제국주의의 승리에는 일본의 전투 방식의 영향이 컸다. 일본의 전투 방식의 특징은 기습공격이다. 상대에서 선전포고 없이 순식간에 적의 핵심을 공격하는 방법이다. 그 후에야 선전포고를 한다. 이 작전으로 가장 재미를 본 것이 러일전쟁이었다. 그리고 그 러일전쟁의 모델을 그대로 적용한 것이 바로 진주만 공습이다.

 

또한 당시의 미국과 영국 등 서구 열강들이 동양으로 대표되는 일본을 얕잡아 본 것도 컸다. 거의 몇 백 년간 일방적으로 동양을 점령해 온 서양인들에게 일본은 동양의 작은 나라라는 인식이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 그들은 커다란 위기의식 없이 일본과의 전쟁을 막연하게 준비하고 있었다.

 

이런 태평양 전쟁의 과정을 통해 우리가 일본을 대할 때 무엇을 대비해야 할지에 대해서 알 수 있을 것이다. 마치 격투기 선수들이 경기 전에 상대의 전술을 간파하듯이, 일본이 어떤 방식으로 공격해 오는지를 역사를 통해 알 수가 있다. 그것을 알면서도 대비하지 못하면 우리는 어리석은 실패를 반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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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워블로그 나난

    표지가 아주 딱 맞아 떨어지는군요. 읽어가다가 다시 올라가서 저자를 확인했더랍니다. 대체 어느 누가 지은건가 하고 말이죠. 역시나 일본 사람이 쓴 글을 아니군요. 이런 식의 제3자의 입장이 가장 객관적이겠죠. 아마도.

    2019.12.01 11:19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가을남자

      존 톨랜드라고 전쟁이나 역사, 인물 등에 관한 책에서는 꽤 알려진 인물입니다. 아쉽지만 저자의 처가가 일본 사람이여서 어떤 부분에서는 일본적 시각이 조금씩 첨부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방대한 자료조사와 인터뷰를 통해 역사적으로 매우 귀중한 책이라고 생각됩니다^^

      2019.12.09 13:59

PRIDE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