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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소설은 좋은 향처럼 읽고 나서 그 여운이 계속해서 남는 소설이 있다.

이 소설은 좋은 향이 남는 소설은 아니다.

마치 쓴 커피를 마신 후 입 안에 쓴맛이 계속해서 남는 것과 같은 소설이다.

오래 전에 읽었지만 계속해서 남는 이 씁쓸한 기분은 무엇일까?


소설은 주인공이 9급 공무원을 준비하던 시기에 만났던 '영자'라는 여자에 대한 이야기이다.

당시 주인공은 9급 공무원 시험에 재수를 하고 있었고, 노량진의 집현전이란 고시텔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당시의 팍팍한 삶은 작가는 아래에서처럼 담담하게 표현한다.

 

노량진 고시텔은 주상복합 십틍이었다. 일층은 박리다매형 대형 식당과 편의점, 약국, PC방 등이 세들었고 이층 삼층은 9급 행정직, 9급 법원직, 9급 세무직, 9급 경찰직, 9급 소방직, 9급 보건직 시험 학원의 강의실이었다. 사층부터 십층까지는 삼 평이나 사 평짜리 원룸인데, 입주자들은 모두 9급  공무원 시험 준비생들이었다. 노량진에는 대로변이나 뒷골목에 이런 고시텔들이 수십 동 들어서서 끼니대마다 식당 앞에 늘어서는 긴 줄이 노량팔경 중 제1경을 이루었다. 일층 대형 식당에서는 사천원짜리 뚝불과 돈가스, 삼천원짜리 김밤+라면을 팔았다. 사천원짜리 식권 열 장을 사면 삼만 오천원을 받았고, 월식은 구십 끼니에 육만원을 갂아줘서 삼십만원을 받았다. 식당 앞 골목에는 무허가 노점상들이 일회용 컵에 소시지 복음밥, 야채비빔밥, 카레라이스를 담아서 이천원에 팔았다. 식당 옆에 붙은 책방 서가에는 국어, 영어, 국사, 행정법 소방법 공무원법 교재와 최신 판례 해설, 기출 문제 분석, 최근 십 년간 출제 경향 분석, 면접 가입드북이 꽂혀 있었다. 기출 문제 분석이 서가의 맨 앞자리를 차지했다. 9급 공무원 시험 준비생들은 우너룸에서 잠자고, 트레이닝 바지에 삼선 슬리퍼를 끌고 이층에 내려와서 강의를 듣고 일층 식당이나 노점에서 밥을 먹었다.

- 본문 중에서-


그나마 주인공은 아버지가 어선을 판 돈을 보내왔기에 그나마 상황이 좋은 원룸에 기거하고 있었다.

그리고 인터넷 카페에서 동거녀를 구했는데 그 동거녀가 '영자'였다.

둘은 친구도 아니고, 연인도 아니고, 그렇게 함께 동거하며 시험을 준비한다.

그런데 그 과정이 왠지 슬프다.

결국 주인공은 시험에 붙고, 영자는 떨어진다.

그리고 영자는 말이 없이 떠난다.

주인공은 시골 면사무소에서 일하는 9급 공무원이 되었지만 생활이 특별히 나아진 것은 아니다.

그는 씁쓸하게 영자와의 만남을 회상한다.

 

월급에서 방세 내고 밥 사먹고 마을 노인들 환갑 칠순 팔순 잔치에 축의금 내고 초상 때 부의금 내고 경로잔치 때 떡값 보내고 나면 남는 것은 없지만 아버지의 돈을 받지 않고도 연명할 수 있게 된 것은 다행이었다. 노인들만 남은 시골은 초저녁부터 캄캄했고 개구리들이 울어댔다. 개구리 울음이 그친 자리에서 별들이 와글거렸다. 나는 때때로 노량진 집현전 원룸의 어둠을 가르던 지하철 전조증 불빛과 거리에서 짐승처럼 울어대던 버스의 에어브레이크 소리를 생각했다. 섹스가 끝나면 영자는 씻지도 않고 돌아 누워서 잠들었다. 마젤란 해협의 고래는 수심 사천 미터 암흑 속에서 만나서 짝짓기를 하고 끝나면 곧 헤어진다는 글을 잡지에서 읽은 적이 있다. 개루리 울음이 그치는 밤에 나는 그 먼 고래들을 떠올렸다. 노량진과 마장면 같은 동네처럼 겹쳐졌다. 이런 헛것에 끄달리다가 마장면에서 나는 늘 별이 사위는 새벽에 잠들었다.

- 본문 중에서-

 

 

얼마전 요사이 인기를 끌고 있는 장강명 작가의 [한국이 싫어서]를 읽었다.

그는 그 책에서 여주인공의 시선을 통해 한국에서의 각팍하다 못해 잔인한 현실을 여과없이 보여 주고 있었다.

또한 여주인공의 입을 통해 '한국이 싫다!' '한국에서는 미래가 없다!'는 직설적인 비판을 쏟아낸다.

그런데 김훈 작가의 글에서는 한국에 대한 비판이나, 젊은 청년들의 암담한 현실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없다.

그러나 그의 글들에서 젊은 청춘들의 삶이 너무나도 서글프게 느껴진다.

문단에서 어느 정도 위치를 차지한 중견 작가가 어떻게 이런 글을 쓸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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