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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좋아했지만 그의 단편 소설을 읽은 기회는 거이 없었다.

이 책은 하루키의 리뷰대회의 부상, 혹은 보너스 비슷하게 받은 책이었다.

내가 나이가 들어서인지, 아니면 하루키가 나이가 들어서인지 요사이는 하루키의 소설에 별로 공감을 못하고 있던 참에 이 소설을 읽으며 다시금 하루키의 감성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이 책에 두 번째로 등장하는 [예스터데이]라는 소설에서 다시금 그 예전에 느꼈던 하루키의 감성을 느낄 수 있었다.

아마 내가 아는 가장 하루키적인 단편소설일 것이다.


도쿄의 와세다 대학을 다니던 주인공은 대학 앞의 찻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삼수생인 '기타루'라는 친구를 사귀게 된다.

기타루는 도쿄 출신이면서도 간사이 사투리를 유창하게 구사하며, 특히 비틀즈의 예스터데이라는 노래를 간사이 사투리로 멋드러지게 불른다.

이유인즉슨 기타루가 어렸을 때부터 간사이에 연고를 둔 한신 타이거즈의 팬이었기에 한신타이거즈의 팬과 어울리기 위해 간사이 사투리를 배웠다는 것이다.

반대로 주인공은 간사이 출신이지만 도쿄말을 구사한다.

기타루는 자신의 여자친구인 '에리카'를 소개시켜 주며 그녀와 사귀라고 말한다.

소설에서는 기타루의 복잡한 심리를 아주 간결한 문체로 서술하고 있지만, 그 간결한 문체 속에 기타루의 여러 가지 마음들이 담겨 있다.

결국 주인공은 에리카와 두 번 만나지만, 기타루나 에리카와 모두 소식이 끊긴다.

그리고 18년이 지난 어느 날 우연한 모임에서 에리카를 만난다.

그리고 그 시절을 다시금 회상한다.


하루키의 소설은 대부분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상실감을 다루고 있다.

특히 그는 무언가 정형화 되는 것, 남들과 똑같아 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는 그것을 어떤 거대한 세력으로 묘사하며 음모론적으로 다루기도 한다.)

그러나 사람은 나이가 들고 세상에서 살아가면, 당연히 남과 똑같아지는 것이다.

나도 그렇고 하루키도 그렇다.

몸부림쳐도 어쩔수 없는 것이다.

다만 그것에 대한 자신 안의 '안타까움'마저 잃어간다면...

하루키가 지키고자 하는 것은 그런 '안타까움'에 대한 감성이 아닐까?

주인공에게 있어서 '가타루'는 그 '안타까움'으로 바라보는 과거의 자신일지도 모른다.

가타루는 자신은 버린 간사이 사투리를 쓰고, 자신은 미련없이 잊어버린 어린 시절의 여자친구를 끝까지 사랑하고, 자신은 남들과 닮기 위해 들어간 대학을 거부한다.

그러나 가타루는 그로인해 상처받고 사라져 버린다.

소설에서 다른 사람에게는 피해를 주지 않지만 남들과 다른 것을 고민하는 가타루에게 주인공은 갑자기 거칠게 이야기 한다.


"그럼 된 거 아냐?" 나는 말했따. 나는 아마 그때 (누구에 대해서인지는 모르겟지만) 좀 화가 났었는지도 모르겠다. 말투가 약간 거칠어졌음을 스스스로도 느겼다. "그게 대체 뭐가 잘못인데? 지금 당장은 어느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다, 그러면 된 거 아니야? 어차피 우린 지금 당장 말고는 한 치 앞도 모르잖아. 간사이 사투리를 쓰고 싶으면 마음껏 써. 죽도록 쓰라고. 입시공부하기 싫으면 하지마. 네 인생이야. 뭐든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다른 누구한테도 신경쓸 거 없어." (P101)


소설의 마지막은 에리카와의 만남으로 자신의 스무살을 회상하는 주인공의 독백으로 끝난다.


하지만 스무 살이던 시절을 돌아보면 떠오르는 것은 내가 외톨이고 한없이 고독했다는 느낌뿐이다. 나에게는 몸과 마음을 따스하게 해 줄 연인도 없었고, 흉금을 터놓고 대화할 친구도 없었다. 하루하루 뭘 해야 좋을지도 알지 못했고, 마음 속에 그리는 장래의 비전도 없었다. 대부분의 시간을 내 안에 깊이 틀어박혀 있었다. 일주일 동안 거의 아무와도 말을 나누지 않은 때도 잇었다. 그런 생활이 일 년쯤 이어졌다. 긴 일 년이었다. 그런 시기가 혹독한 겨울이 되어 나라는 인간의 내면에 귀중한 나이테를 남겼을지, 그것까지는 모르겟지만. (P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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