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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사람들이 인정하는 대작을 읽을 때면 '얼마큼의 자신의 인생을 쏟아 부었기에 이런 대작을 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단지 대작이 아니여도 한 사람의 작품에는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을 담고 있을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이렇게 치혈한 싸움이 담긴 작품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현시대의 문학이다.


김탁환 작가의 앵두의 시간이란 작품은 치열하다 못해 묵직함으로 다가오는 한 남자의 글쓰기에 대한 인생을 담고 있다. 주인공은 5월이면은 부모님과 함께 외삼춘네 앵두농장을 찾아가곤 했다. 그 곳에는 한 때는 천재를 불렸으나 병을 앓은 후 지금은 외딴 앵두농장을 지키고 있는 '치숙'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외삼촌이 있었다. 그는 항상 주인공을 반겨 맞았고, 그에게 수많은 고전과 글쓰기를 가르쳐 준 인생의 스승이었다. 치숙이 주인공에게 가르쳐 준 것은 단순히 독서나 글쓰기의 지식이 아니었다. 인생을 바라보는 눈이었다. 소설은 다음과 같은 치숙에 대한 묘사로 시작한다.


치숙은 쓰는 인간이었다.

읽는 인간이었고 무엇보다도 보는 인간이었다.

행복한 여행자가 갗울 세 가지 미덕이기도 했다.

셋 중 하나 혹은 둘만 취했다면 치숙은 미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끼니를 잇듯 번갈아 셋을 오갔다. 앵두의 시간이라고 불렀다. (P136)


이어 이 소설은 요즘 소설과 달리 싯구같은 현란하고 아름다운 문장으로 5월의 어느 날을 묘사한다.


치숙과 함께 발광하는 빛깔! 내게 봄은 온전히 붉다, 봄을 여는 진달래의 하늘거리는 붉음이 아니라 봄을 닫는 앵두의 쏟아지는 붉음. 일곱 살 기억의 첫 5월도, 여섯 살 다섯 살 네 살 세살 두 살 한 살 거슬러 어머니 배 속에서 꼼지락대던 5월에도 나는 봄과 붉게 놀았다. 교과서에선 5월을 어찌 정의하는지 모르지만, 내게 5월은 마산 진해 창원의 일가친척이 외할아버지의 앵두농장- 감나무와 밤나무도 앵두만큼이나 많았지만 우리는 그곳을 '앵두농장'이라고 불렀다-으로 모이는 달이다.(P136)


주인공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치숙은 점점 그에게 아버지이자 인생의 스승 역할을 했었다. 그러나 그가 대학에 진학하고 글쓰기로 접어들자 치숙과의 갈등이 시작되었다. 치숙은 인생을 담은 치열한 글쓰기를 원했고, 주인공의 글을 쉬운 글쓰기로 보았다. 주인공 역시 자신의 글과 작업을 너무나 쉽게 제단하는 치숙에게 서운해 하고 둘은 왕래가 뜸해진다.


그러던 중 치숙이 암에 걸려 투병을 하고, 결국 죽음을 맞게 된다. 주인공은 죽음 직전 치숙을 찾아가고, 주인공이 찾아온다는 것을 알자 치숙은 주인공과 함께 앵두농장으로 향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앵두나무를 모두 배려한다. 하지만 여의치 않자 앵두나무 하나 하나를 안으며 그들에게 작별을 한다.


소설은 내내 치숙이 얼마나 치열한 삶을 살아왔고, 그의 글쓰기가 얼마나 치열한 글쓰기였는지를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치숙의 삶을 주인공이 닮고 있음을 언급한다.


단지 글쓰기 뿐만 아닐 것이다. 인생은 치열하게 살 때 그 치열하게 산 완성품이 그의 인생에 드러날 것이다. 그러나 점점 그런 치열함보다는 눈에 보이는 결과만을 원하고, 쉽고 재미있는 것만을 원하는 세상으로 인해 치숙과 같은 치열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미친 사람으로 취급받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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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ID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