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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내 상처에 집중하다 보면 타인의 상처에는 무감각해 진다. 이것은 같은 아픔을 겪은 가족이나 부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어쩌면 우리는 자신의 아픔을 극복하기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은 그 아픔의 원인을 자신과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 돌리는 것은 아닐까.


황정은 작가의 [누구보 가본 적이 없는]이란 소설은 2016년 이상문학상작품집 맨 마지막에 실려 있는 단편소설이다. 이 소설에는 같은 아픔을 겪은 중년부부의 이야기이다. 소설은 남편의 시점에서 전개되고 있다. 소설의 시작은 남편이 아내와 함께 유럽여행을 가는 비행기 안에서 시작된다. 부부는 처음 함께 해외여행을 가는 중이다. 그런데 소설은 들뜬 남편이나 아내의 모습을 묘사하지 않는다. 오히려 무언가 서먹한 분위기이다.


엔진 소음과 기압으로 멍한채 영화를 보았다. 아이들이 많이 나오는 영화였다. 어른은 단 한 명도 없었고 영화 속에서 아이들도 그것을 궁금하게 여기고 있었다. 머리를 왼쪽으로 돌렸을 때 그는 아내가 우는 것을 보았다.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 꼼짝 않고 스크린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빰이 눈물로 번들거렸다. 그는 그녀를 내버려두었다. 그녀는 그럴 때가 있었고 곧 괜찮아졌다. 그녀는 곧 울음을 그쳤고 승무원이 지나가자 작은 봉지에 담긴 브레첼을 한 봉지 더 가져 달라고 말했다. 그는 아내가 봉지를 뜯고 엄지와 검지로 속을 더듬어서 소금이 묻은 과자를 꺼내 입에 넣고 씹는 소리를 들었다. (P287)


유럽여행 도중에도 아내의 행동은 비슷했다. 아내는 갑자기 어느 가계에 들어가 상품을 고르거나 우두커니 서 있었다. 남편은 그러거나 말거나 열심히 안 되는 영어를 해가며 부부의 여행을 이끈다. 그러면서도 남편은 과거를 회상한다. 가족과 함께 했던 몇 번의 여행, 그리고 아들과의 마지막 여행, 그 마지막 여행에서 아들은 작은 계곡에서 수영을 하다가 심장마비로 죽었다. 남편은 그 과정을 회상하면서 처음 그 장소를 제안한 것은 그녀였다고 생각한다. 여행이 끝날 무렵 그들은 프라하에서 독일로 가는 기차를 타던 중 호텔에 여권과 항공 예약증, 현금 등이 들어 있는 파우치를 호텔에 두고 왔음을 깨닫는다. 괜찮을 거라고 남편을 안심시키는 아내에게 남편은 격분하여 소리친다.


내가 그걸 챙기라고 하지 않았어? 그는 말했다. 그 밖에 내가 뭘 더 부탁한 게 있어? 그거 챙기라고...... 가방에 넣으라고 말하지 않았나? 그거 잊지 말라고...... 그냥 그거 하나...... 가방에 다 있잖아. 당신 칫솔, 화장품, 사탕....... 다 있는데 왜 그건 없냐...... 우리 내일 비행기 타야 돼...... 그런데 여권도 영수증도 없어....... 내가 이걸 다 설명해야 해 사람들한테...... 그런데 괜찮을 거라니...... 당신은 괜찬지 걱정이 없지 내가 다 하니까....... 당신은 잘 먹고 잘 자고....... 어디서든....... 호텔에서든 비행기에서든.......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어떻게 그렇게 비위가 좋냐 그렇게 멀쩡하게...... 괜찮을 거라고? 당신은 어떻게 그렇게 쉬워 모든게.......

그는 문득 입을 다물고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서글픈 얼굴로 그를 보고 있었다. 그는 다시 울화가 치밀어 고개를 저었다. 그 얼굴. 지긋지긋하다고 말하는 대신, 그렇게 보지 말라고 그는 말했다. 그런식으로 보지마. 사람 빤히 관찰하지 마. 너는 아우 잘못 없는데 내가 때리기라도 한 것처럼 그렇게. (P306)


그렇게 격분의 소리를 지른 후 남편은 베를린에 도착한 후 서둘러 기차에서 내린다. 아내는 한국에서 올 때처럼 가방을 낑낑거리며 밀고 있었다. 남편은 아내의 가방을 들어서 플랫폼에 내려 놓는다. 그러나 아내는 멍하니 바라볼 뿐 내리지 않는다.


그는 그녀를 돌아보았다. 계단에 선 그녀는 기미가 도드라진 얼굴로 다만 그를 보고 있었다. 그가 올려다보고 그녀는 내려다 보았다. 자동개폐장치가 작동되고 별다른 소리도 없이 문이 닫혔다. 그녀의 모습이 창문도 없는 묵직한 문 뒤로 사라졌다. 그는 익스프레스라고 적힌 금속동체를 멀거니 바라보았다. 열차가 가볍게 움직이기 시작해 빠르게 멀어져갔다.

그는 그대로 서 있었다. 열차가 일으킨 바람으로 머리키락이 흔들렸다. 이마에 돋은 땀이 상쾌하게 말랐다. 베를린 중앙역사는 저물어가는 빛에 잠겨 있었다. 이제 플랫폼은 비었다. 강 쪽으로 차갑고 건조한 바람이 불었다. 어...... 그는 소스라쳤다. (P307)


이 장면의 묘사는 마치 아들을 잃을 때의 장면과 비슷하다. 결국 남편은 그렇게 아들과 아내도 잃는 것일까? 소설은 여기서 끝났기에 그 후의 일은 알 수 없다. 다만 왜 남편은 그녀의 아픔을 해아리지 못했을까? 내가 아픈 만큼 그녀도 아프다는 것을 왜 알지 못했을까? 내 아픔에만 너무 집중하느라, 아니면 아들을 잃은 원망의 대상을 아내로 집중하느라, 아내의 아픔에는 둔감했을까? 아내도 나처럼, 아니 나보다 더 아팠다는 것을 왜 알지 못했을까? 사람은 원래 타인의 아픔에 둔감한 걸까? 그것이 사랑하는 부부사이에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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