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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리다의 [신앙과 지식]은 모두 55개의 단문으로 되어 있고, 전반부인 1~26번은 주로 칸트의 [이성의 한계 안에서의 종교]라는 책을 통해 종교가 이성의 한계 안에서 도덕적으로 사유될 수 있는 가능성을 밝히고 있다.


27번 이후부터는 '추신(POST-SCRIPTUM)'이라는 제목 하에 끝까지 이어지는데, 그 중 37번까지는 '지하납골당'이란 부제가 붙어 있다. 아쉽게도 아직까지 이 부제가 무엇을 뜻하는지는 정확히 파악을 하지 못했다. 개인적인 칸트가 극복하려고 했던 이성의 한계 넘어의 종교성이 다시 회귀되는 것을 비유로 제시하는 단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 부분에서 데리다는 베르그송의 [종교와 도덕의 두 원천]이란 책을 인용하고 있다. 베르그송은 이 책에서 자신의 집단의 이익만을 고집하는 닫힌 종교에서 타인과 세계의 이익을 존중하는 열린 종교로의 도약을 이야기 한다. 그리고 그 가능성을 종교의 이중성인 '믿음의 경험'과 신성의 경험'으로 제시한다. '믿음의 경험'이란 반복적인 약속을 위해 물리적인 수단에 의존하는 경험이고, '신성의 경험'은 신비적인 경험이다.(번역자의 해제에서) 베르그송은 닫힌 종교에서 열린 종교로의 발전의 두 경험이 서로 보완하며 발전할 때 가능하다고 말한다.


아마도 데리다에게 있어서 믿음의 경험이란 칸트가 말하는 이성의 한계 안에서의 인식을 의미하고, 신성의 경험은 이성의 한계 밖에서의 인식을 의미하는 것 같다. 그리고 칸트 이후 세계는 이성의 한계 안에서 종교를 인식했고, 이것은 과학기술과 디지털문화를 통해 점점 신성의 경험, 즉 신비적 경험을 배제하게 되었다.


그러나 데리다는 여기서 '종교의 자기면역'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종교가 디지털 문화를 통한 인식 가능한 범위에서의 종교성을 거부하고, 다시금 인식 밖의 신성의 경험으로 회귀하려는 움직임이다. 이것은 다시금 분쟁과 파괴를 가져오는 움직이고, 데리다는 이것이 현상황의 문제점으로 인식하고 있다.


오늘날 종교는 자신이 전력을 다해 반작용하고 있는 원격과학기술과 동맹을 맺고 있다. 종교는 한편으로 진정한 세계 라틴화이다. 종교는 자본과 미디어에 의해 원격적으로 전파되는 지식을 생산하고, 받아들이고 활용한다. 그렇지 않다면 교황의 방문과 세계적인 이슈화도,'살만 루슈디 사건'의 국가간 공조도, 전 세계적 테러리즘도 이런 리듬으로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그러한 징후들을 무한히 열거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종교는 곧바로, 동시에 반작용한다. 종교는 자신을 자신의 모든 고유의 장소로부터, 사실상 장소 자체로부터, 자신의 진실의 장소-가짐/일어남으로부터 쫓아내기 위해서 자기에게 이 새로운 권력을 부여하는 것에 전쟁을 선포한다. 종교는 이러한 모순적인, 즉 면역적이면서 자가면역적인 이중의 구조에 따라 자신을 위험하기 위해서만 자신을 보호하는 것에 맞서 끔찍한 전쟁을 수행한다. - 데리다의 [신앙과 지식] P159-160


과학화 되어 가고 있는 사회, 모든 것이 이성의 안에서 사유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회에서 왜 종교간의 극한 대립이 나타나고, 비이성적인 파괴가 일어나고 있는지를 데리다는 '세계라틴화'라는 개념과 '종교의 자기면역'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다.

 

 

도덕과 종교의 두 원천

앙리 베르그손 저/박종원 역
아카넷 | 2015년 10월

 

신앙과 지식/세기와 용서

자크 데리다 저/신정아,최용호 공역
아카넷 | 2016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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