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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정치인과 지도자들은 초기에는 대중들과 소통하며, 그들의 의견을 잘 경청한다. 그러나 어느 정도 지위에 올라가고, 최고의 통치자가 되는 순간부터 대중들의 의견에 귀를 닫기 시작한다. 대중들의 반대의견을 묵살하거나 자신의 통치 스타일을 힘으로 밀고 나가는 경우가 많다. 이런 리더십은 단지 정치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크고 작은 기업 조직이나, 지역 공동체에서도 이런 스타일의 리더십은 쉽게 접하게 된다. 권력이 사람을 변하게 해서 일까? 아니면 원래 권력이란 그런 것일까?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이런 리더십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지도자나 리더가 되기 전에는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그들의 불만에 공감하며, 함께 윗선의 실책을 비난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막상 자신이 지도자가 되니, 이렇게 사람들의 의견만 듣다가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지도자의 위치에 서니 일이 추진되려면 사람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밀어 붙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의외로 많은 리더들과 대화하다 보면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랄 때가 있다.

정말 대중들은 불평불만하는 것일까? 그들은 오직 비판을 위한 비판만을 하는 것일까? 그들의 의견을 들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일까?

차인석 교수의 [근대성과 자아의식]이라는 책의 다섯 번째 주제는 '공동체적 탐구 논리와 진보적 사회사상'이다. 제목은 조금 복잡하지만 내용은 미국의 실용주의 철학과 미국의 민주주의 정치사상의 연결점을  이야기하고 있다.

저자는 미국의 실용주의(Pragmatism)가 독일의 관념론이나 프랑스의 합리론, 영국의 경험론과 같이 미국이라는 나라의 사상을 대표하는 철학이라고 말한다. 실용주의는 그 독특한 색깔 때문에 철학 사상에서는 많은 배척을 당했었다. 실용주의는 '반본질주의'적인 성격이 강하다. '본질주의'란 변치 않는 절대적 진리가 존재한다는 정통적인 철학 사상이다. 그러나 실용주의는 절대적 진리를 추구하기보다는 일상의 삶에서 유익한 것이 진리라는 상대적인 진리관을 가지고 있다.



 

"실용주의는 처음부터 고정된 지리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것은 주어진 상황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을 하나하나 해결해나가는 데서 새 지식이 얻어지고 문제 해결의 방법이 고려될 수 있기 때문에 모든 가능성은 무한히 열려 있다고 여긴다. -중략- 실용주의가 고정된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고 무한한 가능성의 실현을 믿기 때문에 비판자들은 실용주의가 보편적 진리를 무시하는 상대주의에 지나지 않으며, 바로 이 때문에 그것이 미국인들의 참 철학이 될 수 없다고까지 단정하기에 이른다." - P 144

 

 

개인적으로도 그동안 실용주의에 대한 이런 비판에 어느 정도 동조해 왔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며 실용주의의 다른 면을 보게 되었다. 실용주의는 단순히 개인들이 자신들의 방식만이 옳다고 주장하는 상대주의나 개인주의와는 다르다. 그들은 삶의 과정에서 진리를 발견한다. 그러나 그 과정은 단순히 개인이 고립되어 만들어낸 진리가 아니다. 실용주의는 공동체적인 관계 속에서 진리를 발견해 나간다. 실용주의자들은 사회나 공동체와 분립되어 개인의 의식 속에 혼자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진리란 없다고 생각한다. 결국 진리란 공동체 속에서 관계를 관계를 맺어가며, 그 공동체가 발견해 나가는 것이 진리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발견해 나가는 진리가 결국 우주적인 진리에 접근하게 된다는 것이다.



 

"듀이에 의하면, 인식하는 개인은 사회적으로 구성된 개인이며, 절대적이고 고립된 개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의식은 어디까지나 이 사회적 개인의 의식이다."  - P 162

"퍼스의 공동체론은 사랑의 공동체론으로 설명된다. 공동체를 통해서 개인들은 자신들의 사적 이해관계와 편견을 극복하고 자신들의 특수성으로부터 독립된 지식에 도달할 수 있다는 생각은 퍼스의 기독교적 공동체관에서 그 연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중략 - 퍼스는 나름대로 자신의 우주론을 편다. 절대적 우연과 기계적 필연성, 그리고 사랑의 법칙이 우주 안에서 작용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랑이 우연과 필연을 넘어서서 목적을 향해 전진시키는 힘을 발휘한다." - P 165

 

 

저자는 이렇게 공동체적인 탐구와 반성을 통해 진리에 도달해 가는 과정을 인정하는 미국의 실용주의 철학이 미국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었다고 본다. 그들은 인간의 성장, 공동체의 도덕적 진화를 믿는다. 교육과 토론을 통해 인간이 성장하고 공동체가 진화한다고 믿는 것이다.

저자는 그동안 [근대성과 자아의식]이란 책에서 근대성이란 개인의 자아의식이 성장하는 것이고, 그 자아의식이란 개체성이 자유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얼핏 오해하면 개인주의적인 사상으로 오해하기 쉬웠다. 그러나 이 글을 읽으며 진정한 자아의식이란 공동체와의 관계 속에서 성장하는 것임을 깨닫는다.

이제 결론을 맺으며 다시금 앞의 이야기로 돌아가도록 하겠다. 과연 지도자는 대중을 믿을 수 있는가? 리더는 공동체를 믿을 수 있는가? 정말 리더가 공동체원들과 상의를 하다보면 더 나의 진리를 도출해 낼 수 있을까? 아직도 한국사회에서는 이런 생각을 이상이나 환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심지어는 좌파적인 생각으로 매도를 하기도 한다. 어쩌면 한 고위공직자의 술자리 농담처럼 '민중은 개와 돼지'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백성은 그냥 통치만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한국적인 민주주의는 독재가 더 효과가 있다는 생각을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하면 지도자나 리더가 자신이 속한 대중이나 공동체를 믿지 못한다면, 과연 그들은 무엇을 위해 지도자나 리더가 되었을까? 단순히 개인의 영달을 위해서일까? 비록 더디기는 하지만 대중과 공동체가 성장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 사람이 지도자나 리더가 되야 하지 않을까? 미국의 실용주의철학과 정치사상을 접하면 이런 생각을 해 본다.



"이 글은 차인석 교수의 [근대성과 자아의식]의 5부 '공동체적 탐구논리와 진보적 사회사상' (P141-188)을 근거로 쓰여진 글입니다."

 

 

근대성과 자아의식

차인석 저
아카넷 | 2016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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