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내가 뽑은 책 1위는 한승원 작가 등단 50년 기념작품인 [야만과 신화]라는 작품이다. 2016년도에 읽은 200여권의 책 중에 매우 주관적이지만, 116권의 책을 선정해 보았다. 그리고 이 책을 1위로 뽑은 이유는 나름 여러 가지를 종합한 결과였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좋은 책은 읽을 때보다 읽고 난 후의 감동이 많이 남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런 작품들은 대부분 읽을 때에는 크게 감동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마치 담백한 음식처럼 처음에는 별 맛이 안 나다가 씹으면 씹을수록 특유의 맛이 입안에 번지고, 그 여운이 길고 깊게 남는다. 그러기에 이런 작품의 경우는 초반에 조금 지루하게 읽는 경우가 많이 있다. 특히 한 소설가의 여러 가지 작품을 모아 놓은 소설집의 경우는 모든 작품에서 그 맛을 고루 느낄 수는 없다. 어떤 작품은 매우 감동적이지만, 어떤 작품에서는 별로 감동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 작품은 작품 하나하나에 깊은 감동과 여운이 담겨 있다. 이 책에 실린 어느 작품 하나 외면할 수 없는 작품들로 가득 차 있다.
무엇보다도 작가의 소설들 속에는 우리 민족이 겪은 일제강점기와 분단, 6.25전쟁, 전쟁 후의 보복성 학살 등으로 인해 민족적인 한(限)을 바닷가라는 토속적인 배경과 토속적인 언어로 구성지게 그려내고 있다.
특히 이 책에 바닷가를 배경으로 얽혀있는 민초들의 삶을 한국적인 미로 너무나도 멋지게 묘사하고 있다.
"바닷물은 부두를 넘을 만큼 가득 밀려들어 있었다. 껌껌한 먼 바다에서 밀려온 잔물결이 부두 끌과 부두 안의 수면은 잔잔하게 일렁거렸다. 거기 뜬 별 떨기들이 물속 궁전에 휘황하게 빛나는 등불들 같았다. 줄타기나 널뛰기를 하는 노랑 저고리들처럼 일렁거렸다. 아니, 어쩌면 바야흐로 무더운 이 여름의 어둠 발을 타고 내려온 별들과 해수와의 은밀한 혼례가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도 알 수 없었다. 마녀처럼 음탕한 바다였다. 시꺼먼 빛깔의 한없이 큰 입과 끝없는 넓고 깊고 부드러운 자궁을 가진 바다는 탐욕스럽게 별들을 품에 안아 쌀을 일듯 애무하고 있었다. 거무스레한 해무를, 머리카락처럼 산발한 밤바다의 찰싹거림은 어쩌면 별들을 핥고 빨고 입맛 다시는 소리였다." [야만과 신화] 중에 '낙지 같은 여자'에서 P242
이 책은 스토리나 묘사, 그리고 감동까지 무엇 하나 빠지지가 않는다. 다만 읽는 내내 우리 민족이 겪었던 아픔들이 너무 깊이 느껴져 가슴이 아픈 부분이 있었다. 이런 아픔들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기를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