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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은 책

나는 강물을 모른다
버드나무도 모른다

내가 모르는 둘이 만나

강물은 버드나무의 손목을 잡아주고
버드나무는 강물의 이마를 쓸어준다

나는 시를 모른다
시도 나를 모른다

은하수 속으로 날아가는 별 하나
시가 내 손을 따뜻이 잡는다

어릴 적 아기 목동이었을 때
소 먹일 꼴을 베다
낫으로 새끼손톱 베었지
새끼손톱 두쪽으로 갈라진 채 어른이 되었지

시가 내 새끼손톱 만지작거리며
괜찮아 봉숭아 물 들여줄게 한다

나는 내 시가 강물이었으면 한다
흐르는 원고지 위에 시를 쓴다
저녁의 항구에서 모여드는 세상의 모든 시를 읽을 것이다

(곽재구의 '세상의 모든 시' 전문)

 

어떤 이들은 세상의 모든 일들을 알고 있노라 떠벌리기도 하지만, 세상의 극히 일부분만을 알고 있을 따름이다.

시인은 시조차도 바로 그러하다고 말하고 있다.

'나는 시를 모른다 / 시도 나를 모른다'고 강조하면서, 시인은 끊임없이 새로운 시를 창작한다.

굳이 '시가 이것이다'라고 정의하지 않아도, 세상을 바라보는 시인의 눈에 비친 모습을 그려낼 뿐이다.

그렇게 시를 쓰다 보면 마치 '은하수 속으로 날아가는 별 하나 / 시가 내 손을 따뜻이 잡'아서 새로운 작품으로 형상화되는 것이다.

때로는 '내 새끼손톱 만지막 거리며 / 괜찮아 봉숭아 물들여주게' 하는 것도 시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인은 '나는 내 시가 강물이었으면' 하는 바람을 토로하고, '흐르는 원고지 위에 쓰를 쓰'는 것이다.

그렇게[ 흘러서 '저녁의 항구에서 모여드는 세상의 모든 시를 읽'는 것이 시인의 소망이듯, 나도 역시 그렇게 나에게 다가온 시들을 읽으며 살아갈 것이다.(차니)

꽃으로 엮은 방패

곽재구 저
창비 | 2021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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