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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브 생 로랑에게

[도서] 나의 이브 생 로랑에게

피에르 베르제 저/김유진 역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프랑스어 원제를 영어로 쓰면 'Letters to Yves'가 될 것이다. 아마 이브 생 로랑과 저자인 피에르 베르제의 관계를 잘 모르는 우리나라 사람을 위해 굳이 제목을 '나의 이브 생 로랑에게'로 바꿔 붙인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나에게도 피에르 베르제라는 이름은 매우 생소하다. 몇 달 전 이브 생 로랑에 대한 영화와 다큐멘터리를 보았는데도 그의 연인이자 동반자로 이브 생 로랑 경영자였던 피에르 베르제라는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으니 아마 대다수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다. 심지어 책 안쪽날개저자를 설명하는 말 어디에도 둘 사이가 연인이라는 걸 나타내는 건 없다. 동성애에 대한 우리나라의 호의적이지 않은 시선을 염려한 출판사의 생각이 반영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책을 통해 알게된 것은 피에르 베르제가 이브 생 로랑의 예술을 뒷받침한 사이였을 뿐 만 아니라 장 지오노, 장 콕토, 마르그리트 뒤라스 등의 문인과 다양한 화가들과 관계를 갖고 그들의 예술을 이해하고 후원했기에 이브 생 로랑과 함께 수준 높은 수집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 책은 이브 생 로랑 사후 그와 함께 지내던 집과 별장 등 다양한 곳에 있던 그들의 컬렉션을 '피에르 베르제-이브 생 로랑 재단'을 위해 경매에 내놓고 그 작품들이 팔리는 과정을 지켜보는 1년 여 간 저자가 이브에게 쓴 편지를 모았다. 책 곳곳에서 그의 이브 생 로랑에 대한 애정과 그의 불안한 모습들로 인해 힘든 과정도 예술가에 대한 존중으로 버텨낸 과정이 녹아있다. 아니, 그것은 존중이나 사랑이 아니라 '추앙'이었다. 동반자의 성공을 진심으로 반기며 그를 위해 모든 걸 막아내고 감수하며 애쓰는 사람의 글을 읽으니 감사했다.

책 맨 앞장에 소 플리니우스의 '내 삶의 증인을 잃었으니, 엎으로 되는대로 살게 될까 걱정입니다.'라는 말이 씌어있다. 저자의 이브를 향한 마음을 알 수 있다.

"사소한 일에도 좌절하거나 불같이 화를"내는 이브를 오스카 와일드가 말한 "터너 이전에, 런던에 안개는 없었다."라는 말을 인용하며 예술가로 존중했기에 알제리 "식민지 개척자의 후손"과 "극렬한 반식민지주의자"이자 무정부주의자가 오랜 기간 같이 살 수 있었으리라. 그의 신념과 지성과 위트는 "네가 아랍 소년들과 사랑을 나누었다는 걸 네 부모님이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지 모르겠군" 같은 문장에서 보인다.

저자의 예술애호가이자 정치적 신념은 컬렉션 경매 과정에서 자신들의 중국 두상들이 아편전쟁 당시 프랑스군이 북경 황실 정원에서 약탈해 간 걸 알게되자 법원의 소유권 결정과 상관없이 "중국이 인권을 존중하고, 티베트의 독립과 달라이 라마를 받아들이겠다고 약속한다"는 조건하에 돌려주겠다 했다는 데서도 보인다.

이브 사망 후 몇 달 지나 저자는 이렇게 쓴다. "헤이, 네가 너무도 보고 싶어." 우리 나이로 80세에 이런 말을 할 수 있다는 게 놀랍다.

가족에게 성정체성을 드러낸 저자와 달리 "어머니는 너와 아주 특별한 관계로 지냈다고 믿고 계신 것 같더라"며 "환상 속에서 여생을 보내도록 놔둬야겠지. 진실은 그것을 아는 사람에게만 주어지고, 다른 사람들에겐 스스로 그것을 창조할 권리가 있는 법이니까."라며 여유로운 태도를 보인다. 아무리 성공한 유명인사라고 해도 여전히 동성애에 대해 거부감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는 사회를 오랜 기간 살아온 사람이 여유를 갖는 과정이 얼마나 쉽지 않았을까도 생각해본다.

이 둘은 우리나라에는 아직 없는 시민 연대 계약을 했는데, 처음부터 동반자나 다름없었다며 처음 만난 날 "막 베르나르(이 사람은 화가)와 헤어진 참이었"다며 "너는 무척 마르고, 너무나 젊고, 아름답고, 수줍고, 빛이 났어. 내가, 그리고 우리가 옳았어.""라 말한다. 와, 세상에 오랜 세월 지난 후에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관계가, 또 삶이 있을까? 저자의 내공에 감탄할밖에.

110쪽에서 예전에 생 로랑의 바지를 입었다는 이유로 레스토랑에서 입장을 거절당한 여성의 이야기가 나온다. "사회적 영역에 다다르기 위해 미학의 영토를 벗어난 것이야말로 너의 가장 큰 공로"라는 걸 추앙이 아니면 무엇이라 할 수 있을까. 저자는 말한다. "샤넬이 여성에게 자유를 주었다면, 너는 그들에게 권력을 되찾아주었어."라고.

책을 읽으며 이브 생 로랑의 다양한 인간으로서의 모습과 예술가(사실 이전엔 패션 디자이너라고 생각했었는데)로서의 업적을 생각하고 그를 위해 옆에서 50여 년을 사랑과 헌신 속에서도 자신을 버리지 않고 예술애호가이자 후원자로 살았던 피에르 베르제를 생각했다. 이런 걸 보면 세상엔 사랑이란 게 진짜 있긴 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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