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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방범 1

[도서] 모방범 1

미야베 미유키 저/양억관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1
소설을 읽으면서,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소설을 쓴다면 “이렇게 쓰고 싶다.”

2
책장 한 쪽에 몇 년 동안 그저 꽂혀 있기만 했던 소설이 있었다. 만만찮은 두께, 그것도 세 권이나 되었던 소설.  

 

바로 이 ‘모방범’이었다.  

 

그 두께 때문인지 구입해놓고서도 선뜻 집어들기에는 그동안 마음에 여유가 없었다. 그러다 며칠 전 한 후배와의 페북 대화에서 다카노 가즈아키의 ‘제노사이드’와 함께 이 책이 언급되었는데, 순간적 충동으로 드디어 책장에서 꺼내들게 되었다. 최근이라고 해야 할지, 한동안이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근래 이렇게 전율을 느끼며 읽었던 책은 소설과 비소설 통틀어 없었던 것 같다.  

 

오백여 페이지의 두께로 총 세 권, 원고지 분량으로 6,000매가 넘는 이 소설(평범한 소설 예닐곱 권은 족히 되는 분량이다)은 중간 중간 쉬어가며 읽었음에도 나흘 만에 읽어버렸다. 그만큼 재미있기도 하지만 작가의 필력 덕분에 읽히기도 잘 읽힌다.

3
보통 이런 추리소설, 그중에서도 잘 읽힌다는 평가를 받는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문학적 표현에 소홀할 것이라는 선입견을 갖고 접근하기 마련인데, 이 소설은 그런 생각을 완전히 허물어뜨린다. 소설의 커다란 전개과정만으로도 손에 땀을 쥐게 하지만, 인물들의 내면 묘사라던가 상황과 장면에 대한 비유적 표현들도 글자락마다 고개를 주억이게 할 만큼 가득했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범인이 누구인지도 결말이 어떻게 되는지도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처음부터 펼쳐 정독하고 싶을 만큼.

4
96년 가을, 도쿄 오가와 공원 쓰레기통에서 신원을 알 수 없는 여성의 오른팔이 발견된 것에서부터 이 소설의 모든 것들이 시작한다. 그리고 그 사건을 하나의 중심점으로 해서 그 주변으로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며, 각각의 인물들은 과거와 미래로 자신들의 삶을 일직선으로 죽죽 그어댄다. 그 중에는 그 시점 이후로 그어지는 선들도 있고, 그 이전에 끝나버린 선들도 있다.

이 소설책이 두꺼운 이유는 대서사시여서가 아니다. 인물 하나하나가 살아있는 인간이자 각자의 역사를 지니고 있는 존재라는 것을 놓치지 않고 설명하다 보니 분량이 상당해질 수밖에 없었다. 하다못해 지나가다 주인공들을 슬쩍 쳐다보는 인물조차도 몇 문장씩을 할애해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그렇게 그려진 각각의 선들은 소설이 진행될수록 굵직한 강으로 모여들고, 그 흘러가는 것들을 다시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건을 둘러싼 인간들의 감춰진 내면, 그리고 그 아래에서 일어나는 고뇌들이 격렬하게 소용돌이치고 있다. 작가는 인간과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력을 갖고 그 물줄기들을 한 방향으로 묶어낸다.

소설을 읽으며 무엇보다 대단하다고 생각했던 것 중의 하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등장인물들이 쉽사리 낭비되는 장면이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일상의 소소한 사건들을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스케치하고 넘어간 인물들도 어느 순간이 되면 이전의 행위들에 깊은 의미를 갖고 다시금 돌아온다.

5
나는 마지막 권의 거의 끝부분을 읽을 때까지도 대체 왜 이 소설의 제목이 ‘모방범’인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이 책의 유일한 단점은 바로 제목이군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494페이지에 들어서자 비로소 왜 제목이 ‘모방범’일 수밖에 없었는가 알게 되었고 순간 그야말로 경탄을 금치 못했다. 쭉쭉 뻗어나가던 이야기들이 갑자기 작가의 그물에 끌어올려져 하나의 덩어리로 완성되었다.

6
미야베 미유키의 책들을 하나씩 찾아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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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

p.111
범죄란 ‘사회가 갈구하는’ 형태로 일어나기 때문이다.

p.317
이 사건의 범인을 잡을 수 있을까. 그러나 이놈이 잡히더라도, 분명 놈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등장할 것이다. 범인 또한 사회의 희생자라는 논리로. 거기에 반론을 펴는 목소리는 너무 작아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릴 것이다. 이 세상에는 그런 희생자들만 가득하다.

p.525
갑자기 고향 생각이 나면서 엄마 아빠의 얼굴이 떠올랐다. / 그것 또한 본능이 전해주는 경고였다. 엄마 아빠를 생각한다는 것은 그녀가 힘없는 어린애의 상태에 놓여 있다는 증거이다. 그녀가 약자이고, 지금 위험에 직면해 있다는 것을 본능이 그런 식으로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2권>

p.24
숨어 있기 때문에 두려워하는 거야. 주도권을 사회 쪽에 넘겨버렸기 때문에 두려운 거야. 입장을 바꾸어보면 하나도 두려워할 게 없어.

p.121
불안이 불안에 지나지 않을 때는 그래도 행복하다. 불안의 정체를 모를 때까지는.

p.189
병실이란 한 인간이 자신에 대해서나 타인에 대해서나 얼마나 외로운 존재인가를 확인하는 곳이고, 그런 자신의 모습이 가감 없이 드러나는 장소이다. 지금까지 손에 쥐고 있다고 생각했던 애정과, 쌓아왔다고 확신했던 인간관계가 그저 거짓과 무관심과 착각과 기대에 의해 만들어진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두 눈으로 목격하고 절망에 빠지는 일이 종종 있다.

p.382
기억, 기억, 기억. 인간이란 존재는 기억으로 만들어져 있는 모양이다. 그런 통찰이 번개처럼 뇌리를 가로질렀다. 수많은 기억을 얇은 피부 한 장으로 감싸고 있다. 그것이 인간이다. 어린아이에서 어른으로 성장함에 따라 몸이 커지는 것은 그만큼 피부 속의 기억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p.491
흉악범의 가족이 당해야 하는 이차적인 피해는 어떤 통계에도 잡히지 않고 어떤 신문에도 실리지 않는다. 그러나 분명히 존재한다. 이번 사건의 경우는 범인들이 모두 죽는 바람에 유족의 입장이 더욱 비참해졌다. 범인이 짊어져야 할 짐을 모두 그들이 짊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3권>

p.67
인간이란 그렇게 독창적인 동물이 아냐. 모두 뭔가를 흉내 내면서 살고 있다고.

p.303
“가장 두려운 것은 인생에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거야. 아무에게도 주목받지 못하고, 아무런 자극도 없는 인생을 보낼 바에야 죽는 편이 낫다는 그런 지향성.”

p.377
진실이 자신에게 직접 닥쳐와 도망칠 수 없는 상황에 놓이지 않는 한, 인간은 그것과 직면할 수 없다. 자신에게 가장 편하고 안락하며,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설득력을 지닌 해석을 ‘진실’로 채택하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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