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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왼쪽 너의 오른쪽

[도서] 나의 왼쪽 너의 오른쪽

하승민 저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5점

지아는 5·18 때 집에 침입한 군인에게 엄마가 폭행당하고 죽음을 맞는 걸 목격한 후 때때로 튀어나오는 다른 인격 때문에 곤욕을 겪으며 성장한다. 편의상 혜수라고 불렀던 다른 인격은 소심하고 내성적인 지아와는 상반된 성격으로 각종 사건, 사고를 몰고 다녀 지아와 아버지를 당혹스럽게 만든다. 엄한 훈육으로 혜수를 없앨 수 있을 거라 믿었던 아버지는 지아에게 학대에 가까운 체벌을 일삼고, 극한의 스트레스 상황에서 튀어나온 혜수가 상해를 입힌 직장동료의 남편이 찾아온 날 지아는 혜수를 불러내기 위해 심하게 자해를 하는데... 다시 정신을 차린 지아는 20대 중반이었던 자신이 40대가 되었고 혜수를 불러내기 위해 자해를 했던 밤부터 19년의 세월이 흘렀다는 걸 알게 된다. 혜수가 되었던 자신이 어떤 사건을 저질렀는지 불안에 시달리던 지아는 혜수가 머물렀던 묵진으로 가 19년의 행적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 분노의 복수극

지아의 다른 자아인 혜수는 지아의 분노가 응축되어 나타난 형상이라고 볼 수 있다. 엄마를 잃은 지아는 무기력하게 그저 이리저리 치이며 살아간다. 유일한 가족이었던 아버지 철순은 아내의 죽음에 대한 원망을 때때로 살아남은 딸에게 쏟아부으며 딸의 증상을 알면서도 제대로 된 적극적인 치료나 돌봄의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 아버지보다 의지했던 재필-엄마의 죽음의 단초는 갑자기 숨겨달라고 집으로 뛰어든 재필이 제공했다-도 결국은 자기 좋을 대로 지아와 혜수를 이용했고... 큰 반항이나 항변 없이 매사를 체념하고 수용하던 지아의 내면에서 들끓던 분노와 화는 혜수가 등장했을 때만 표출되었다. 그러나 사고만 치고 책임은 지지 않은 채 사라져 버리는 혜수에 대해서도 분노가 쌓이던 지아는 서슬 퍼런 직장 동료 남편의 등장에 책임이 있는 혜수를 자해를 통해 불러내는 걸로 나름의 복수를 꿈꾼다. 그 행동이 결과적으로 19년의 시간을 잃게 되는 결과로 이어질지는 모른 채 말이다.

혜수는 지아가 해소하지 못한 감정들을 거침없이 드러냈다. 뭔가 중요한 일들을 다 자신이 처리하는 느낌인데다 자신이 더 똑똑함에도 언제나 몸을 길게 차지하고 있는 건 지아인 게 혜수도 불만이었다. 그래서 오히려 더 사고를 치고 다녔다. 지아가 깨어났을 때 당혹스러워할 것을 떠올리는 게 즐겁고 통쾌했으니까... 지아가 심한 자해로 자신을 불러낸 날, 직장동료의 남편만 혼쭐을 내주면 여느 때처럼 지아가 나타나서 괴로워할 줄 알았다. 그러나 이날은 뭔가 달랐다. 지아가 나타날 기미가 보이지 않자, 혜수는 지아를 어떻게 더 골려줄까 고민하다가 재필한테 자주 들었던 묵진까지 가게 된다.

혜수와 지아는 서로에게 분노했고 복수를 꿈꿨다. 하지만 묵진에서 두 사람은 보다 근원적인 분노의 원흉을 만나게 된다. 방법의 옳고 그름은 논외로 결국 혜수는 치밀하고 냉정하게 복수극을 설계하고 성공적으로-적어도 처음에는 그래 보였다- 해낸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복수는 너무나 많은 부수적인 피해자를 양성했고, 혜수 자신 또한 치명적인 상실을 겪은 충격에 지아가 다시 돌아오게 만든다. 그래서 이 복수극은 속이 시원하기보다는 마음이 너무 아팠다.

 

| 그리고 화해

치밀하고 성공적인 거 같았던 복수극은 또 다른 복수를 불렀고, 그 복수는 한쪽이 전멸할 때까지 끝낼 수 없도록 질주한다. 지아를 도와주라는 새아버지 철순의 부탁으로 따라온 병준은 도움보다는 사고를 더 큰 비율로 일으키고 따돌리기 위해 미행까지 했던 형사 출신 프리랜서 기자 규식까지 사건의 중심으로 끌어들이는데 큰 역할을 한다. 제대로 된 조력자도 없이 기억에 전혀 없는 동네와 사람들로부터 혜수의 19년의 삶을 재구성하느라 애쓰던 지아는 결국 복수극의 최종 보스를 마주한 가운데 무의식 속 혜수를 만나 19년의 시간을 복원하고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된다. 정신을 잃은 상황에서 이루어진 대화와 기억의 복원을 통해 지아와 혜수는 서로를 향한 분노를 멈추고 비로소 연대하게 되는데...

지아와 혜수, 두 자아의 화해는 그저 악순환에 그칠 수 있던 이 복수극에 의미가 생기는 지점이다. 둘이 겪고 있는 괴로움은 아무 잘못도 없이 제대로 해소하지 못하고 그저 안고 살아온 것이기에 누구보다 서로가 서로에게 책임이 없다는 걸 알아야 했다. 지아와 혜수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어떻게 도와야 할지 몰랐던 아버지와 사건이 생기면 제일 먼저 연락하라며 사람 좋게 굴었던 재필이 아니라, 둘은 처음부터 서로를 의지해야 했던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둘이 서로의 상처와 기억을 껴안은 마지막, 병준의 "너 지금 누구야. 지아야, 혜수야?"라는 질문은 이제 아무 의미가 없다.

 


혜수는 지아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등장한 존재가 아니었다. 사랑받고 싶어 만들어진 자아였다. 사랑을 받는 동안 혜수는 행복했다. 행복해서, 그 끈을 19년이나 놓지 못했다.


- 『나의 왼쪽 너의 오른쪽』 中 p.605


 

★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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