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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실 로맨스

[도서] 조선 왕실 로맨스

박영규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로맨스를 통해 조선의 역사, 그 심층부에 들어가 본다. ‘역사는 밤에 이루어진다.’는 말을 흔히 한다. 그것은 애정 전선에서 많은 결정이 이루어지고, 그것이 실행에 옮겨진다는 뜻일 게다. 특히 왕조 역사의 주체가 되는 왕들이 가지는 정서나 기분 등은 그대로 여과 없이 정치적 행위로 나타난다. 그럼 의미에서 왕의 로맨스는 역사 속에서도 중요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시대를 이끌어 가는데 큰 역할을 담당한다. 이 책은 시대별로 왕들이 만난 로맨스를 통해 시대의 추이와 사건들을 더듬어 볼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흥미로우면서도 역사의 질곡을 깊이 있게 들여다 볼 수 있다.

 

가령 양녕대군 같은 경우는 아버지 태종의 무자비한 정치적 행위가 고통으로 스며들었고, 성장하여 그것에 대한 반발심이 여성 편력으로 나타난다. “아버지는 되고 나는 안 되는 이유가 어디 있느냐?” 라는 항변은 이런 심리적 요인이 작용하여 행해진 일이라는 것을 잘 반증한다. 정치적 행위에 대한 혐오감, 아버지에 대한 반발심 등이 자신의 목숨을 거는 괴이한 행위로 나타나지 않았나 생각된다. 어우동의 경우도 당시 양반들의 행태가 그런 인물을 만들었다고 봐도 될 것이다. 남편이 바람을 피우며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소박을 당한 여인이 할 수 있는 복수는 무엇이겠는가? 맞바람을 피우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것이 시대적으로 문제가 되는 사회였기에, 또한 당대의 왕이었던 성종이 자신도 그런 경우를 당하고 있기에 희대의 색녀가 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런 시대적 상황들이 왕들의 로맨스를 통해 잘 드러나고 있음에, 이 책은 그 사실을 공유하고 있다.

 

이성계는 조강지처 한씨와 20년의 시간을 지내며 숱한 자녀를 낳았다. 부인 한씨는 당시 안변의 호족이었던 한경의 여식이다. 둘은 지방의 명문가끼리 정략결혼의 성격을 가지고 결혼을 했다. 한씨는 이성계와 상당히 우호적인 관계를 가지며, 전장에 나가 활동하는 그의 조력자로 살았던 듯하다. 그런데 이성계는 그의 활동으로 말미암아 조정에서도 역할을 해야 하고, 개경에도 부인을 두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것은 아마 강씨를 만났기 때문이 아닐까 말하고 있다. 강씨는 20여 세 나이가 차이 남에도 불구하고 이성계에게 시집 오고 이성계는 그 여인의 매력에 빠진다. 미모는 물론이거니와 아주 똑똑한 사람이었던 듯하다. 그것이 이성계가 그 여인과 결혼을 하려는 이유였고, 무너진 집안의 여인은 이성계에 그의 가족을 맡겼을 가능성이 크다. 결국 그것은 성공해 이성계와 함께 새로운 나라에서 큰 역할을 하고, 조선 최초의 왕비까지 된다. 이처럼 이성계는 많은 여인을 옆에 두지 않고, 한 번 마음이 빼앗기면 물불을 가리지 않은 열정으로 보이는 여인 관계를 가졌다. 이것을 저자는 직진형 순정남이라고 표현했다. 한 가정은 남자와 여자가 같이 만들어 가는 것, 여성의 힘이야말로 집안을 지키고, 힘을 낼 수 있게 만드는 원천이 되는 것이라 생각을 해보게 된다. 이성계의 성공 뒤에는 부인들이 있었다는 말이다.

 

정종은 2 년여 왕위에 재위했지만 힘은 없었다. 실질적인 힘은 이 당시 1, 2차 왕자의 난에 주동적인 역할을 한 방원에게 있었다. 정종은 이렇게 권력을 지니지는 못했지만 많은 여인들을 거느린 사람으로 유명하다. 자식도 성종 다음으로 많다고 한다. 10여 명의 여인에 자식은 25, 많은 편이다. 정종도 아버지처럼 처음엔 일편담심으로 부인만 챙겼다. 17년을 다른 사람을 들이지 않고 둘이 살았다. 하지만 뒤에 가서 많은 여인들을 거느리게 되고, 그들과 시간을 보내며 실권 없는 왕의 모습을 이겨 나가지 않았나 싶다. 사랑은 골치 아픈 일을 두고 빠져들기 좋은 일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왕을 저자는 읍소형 비운남이라 호칭했다. 그렇게 마음에 다가오지는 않는 별명이다. 왕은 자매들을 부인으로 거느리기도 하고, 자신의 첩이 성적 스캔들에 연루되는 것도 지켜본다.

 

태종 이방원은 무장 집안의 아킬레스건인 학문을 할 수 있었던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개경에 올려 공부를 하게 하였다. 그는 당시 개경의 내로라하는 명문자제들과 견주어도 밀리지 않았다. 그것이 기회가 되어 일찍 급제하고 부인도 맞이할 수 있었다. 16살 때, 부인은 학문이 높은 민제의 딸을 얻었고, 그녀는 당시 18살이었다. 둘은 금슬이 좋았다. 4명의 대군과 4명의 공주를 가질 정도로. 둘은 정치적 동지이기도 했다. 역성혁명이 일어나고 방원이 큰 공을 세웠는데도 불구하고 나라는 의붓어머니인 강씨 중심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방원은 세자 방석을 위협할 위험한 인물로 간주될 뿐이었다. 그것을 민씨가 동생들을 통해 무기를 감추어 두고, 왕자의 난을 일으킬 수 있는 배경을 마련했다. 결국 1, 2차 왕자의 난을 겪은 방원이 왕위에 오르고 민씨는 왕비가 된다. 방원이 왕이 되는 데는 민씨의 힘이 컸다는 말이다. 왕이 되기 전에는 방원이 민씨를 소중하게 대했는데, 왕이 되고 난 후에는 이리저리 눈을 돌리기 시작한다. 왕비의 곁에 있는 여자들에게 눈독을 들이고, 그것은 왕비와 전쟁의 씨앗이 된다. 왕은 효빈 김씨, 신빈 신씨 등을 모두 그렇게 취했다. 그리고 그들을 사랑하는 와중에 왕비와 사이가 나빠진다. 그 후에도 왕은 많은 여인들을 취한다. 그때마다 왕비는 노골적으로 왕을 질타한다. 왕은 그것이 왕비의 집이 강하기 때문이라 생각하고 왕비의 동생들을 죽이고 민씨 집안을 풍비박산 낸다. 남자는 여인과 관련되면 격정적이 되는 모양이다.

 

양녕대군 이제는 주로 기생들과 많이 놀았다. 미모의 기생들에게 마음이 쏠리면 힘을 앞세워 취했다. 그것이 누구의 품에 안겼던 여인일지라도 상관이 없었다. 백부, 매형, 고관 등의 여인이라도 관계치 않고 품었다. <봉지련, 초궁장, 칠점생, 어리 등> 하지만 그는 이들과 놀아도 아버지 태종의 제재를 받았다. 데리고 놀다보면 그 기생의 주변 인물들은 모두 처형되거나 귀양을 갔다. 이처럼 그는 사랑 놀음도 제재로 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이로 인해 결국 폐 세자가 되기도 한다. 마지막에 이제가 하는 얘기가 마음에 남는다. 왜 아버지는 많은 여인을 들이는 일이 되는데 나는 안 되는가? . 야사 속에서는 양녕이, 동생 충녕이 더욱 나은 왕제라고 여겨 물려주기 위해 일부러 여성 편력을 했다는 미담도 얘기하지만, 양녕은 성장하는 과정 속에서 외가를 쳐내는 아버지의 포악한 면모를 보면서 반항하는 마음이 그렇게 발전하지 않았나 생각도 해본다.

 

세종은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모든 면에서 갖춘 사람이다. 여성 편력을 들춰 봐도 참으로 지혜로운 모습을 보인다. 양녕이 문란한 여성 관계를 통해 세자 위에서 쫓겨나면서 세자에 오르고 왕이 되는 세종이다. 그는 12살 아무 것도 모를 때, 14살의 소헌 왕후 심씨와 결혼한다. 그렇게 결혼해 같이 성장하고 금실 좋은 부부가 된다. 다른 이들이 첩을 권할 때도 태종이 죽기까지는 거부하면서 심씨를 지킨다. 소헌 왕후의 아버지인 심온이 역적으로 몰려 가정이 풍비박산 날 때도 아내를 지킨다. 많은 사람들이 역적의 딸을 세자빈에 두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상소를 올려도 부왕에게 맞서 아내를 지킨다. 그래서 소헌 왕후는 폐출되지 않을 수 있었다.

세종은 왕위에 오른 후에도 다른 여인에게 눈을 돌리지 않았다. 태종을 의식한 일이었다. 태종이 죽고 삼년상이 끝난 후 세종은 여인들에 관해선 달라진다. 홍씨 성을 쓰는 궁녀에게 빠지고 난 후부터다. 그 후 가까이 있는 궁녀들에게 은혜를 베풀기도 하면서 많은 후궁들을 거느리게 된다. 세종은 한 번 은혜를 끼친 여인들을 잘 보살폈다고 한다, 그들이 모두 만족할 수 있도록 배려해 나간 모습을 보인다. 즉 은혜 입은 그들끼리 서로 질투하고 싸우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그것은 취한 여인을 버리지 않는 그의 품성에 있지 않았나 여겨진다. 저자는 그를 여인들을 대하는 데도 많은 점수를 주고 있다. 문어발형 팔방미인이라 언급하고 있다.

 

문종은 여복이 별로 없었다. 첫 번째 부인인 휘빈 김씨는 안동 김씨로 뼈대 있는 가문의 자녀였다. 하지만 문종은 그녀에게 사랑을 느끼지 못한 듯하다. 정을 주지 않았다. 그래서 김씨는 사랑을 얻기 위해 방술을 행했고 드러나 쫓겨나게 되었다. 두 번째 부인은 순빈 봉씨다. 이 여인에게서도 문종은 정을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 혼인한 지 2년이 지나도 애기가 없자 세종은 그에게 후궁을 들이기로 한다. 한꺼번에 3명을 들인다. 권씨, 정씨, 홍씨 등이다. 이 세 명은 모두 마음에 들어 한다. 이들이 자녀를 낳자 순빈 봉씨는 위기감을 느끼고 힘들어 한다. 그런 가운데 이상한 행동도 서슴지 않는다. 동성애를 하는 모습까지 보인다. 이것이 세종에게 드러나 쫓겨난다. 그 후 세자빈 간택을 하지 않는다. 그러자 대신들이 세자빈이 없어선 안 되니 후궁 3 명 중에 한 명을 세자빈으로 정하자고 하고 권씨를 세자빈으로 세운다. 이 권씨가 단종을 낳고 산욕으로 죽는다. 그 후 세자빈 간택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여러 명의 여인과 사랑에 빠진다. 3명의 정부인 외에도 8명의 후궁을 거느린 것이다. 하지만 자식복도 없었고 여복도 없었다. 후궁들도 빨리 죽는다. 자신도 빨리 죽어 단종이 그렇게 되도록 만들었으니, 조선 시대 가장 안타까운 왕 중의 한 명이다.

 

세조 이유는 특별한 성장을 한다. 그는 궁궐에 들어오지 못하고 밖에서 성장한다. 소헌 왕후가 궁궐로 들어올 때 임신 중이었고, 궁궐이 어수선했기 때문에 같이 들어오지 못했다. 또 외할아버지 심온이 역적으로 몰렸기 때문에 그랬다. 그 후 국상이 나고 형제들을 임신하고 하는 일들이 연이어 일어났다. 세조 이유가 궁궐로 들어오는 일이 자꾸 미뤄진 까닭이다. 그래서 형제들의 정을 느끼지 못하고 자랐다. 그것이 아마 형제들을 가차 없이 죽이는데 일조하지 않았을까 한다. 새조가 궁궐에 들어가 부모와 같이 산 것은 유년기가 지나고서였다. 그리고 2년 밖에 되지 않는다. 그는 새신랑이 되어 궁궐 밖에 사저를 마련하고 살게 되었기 때문이다.

세조의 가계도에 오른 여인들은 왕비와 3명의 후궁밖에 없다. 하지만 세조가 여인들을 많이 거느리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는 14살부터 기생방에 드나들었다. 그리고 기생첩도 많았다. 하지만 이 기생들로 인해 물의를 일으킨 적은 없었다. 그것이 그가 여인들과의 관계에서 깨끗하다고 인식되는 이유가 된다. 부모들도 그것을 인정했다. 아마 여인 관리를 잘 했던 듯하다. 하지만 기생첩 중 하나가 왕의 아이까지 낳았으면서 왕이 찾지 않자 다른 남자에게 연정을 느낀 모양이다. 박덕중이란 여인이다. 결국 들켜 죽음으로 생을 마감한다.

 

세조의 딸을 <금계필담>을 통해서 전하고 있다. 딸은 아버지가 사촌 오빠를 밀어내고 왕위에 오르는 것이 대의에 어긋난다고 반발을 한다. 그때 딸은 아마 16-7세 정도 되고 결혼의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집에서 기거하고 있었을 것이라 추정하고 있다. 그런데 왕을 힐책하는 말을 하니까 세조는 그녀를 죽이려 했고, 어머니는 그 딸을 몰래 빼돌려 달아나게 했다. 그녀는 속리산 쪽으로 몸을 숨기게 되었고, 결국 그 곳에서 한 사내의 도움을 받게 된다. 둘은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에 서로 마음이 끌리게 되고 결혼해서 살게 된다. 그 후 그들은 서로의 내력을 얘기하는데 공주가 자초지종을 얘기하니까 남자도 자신은 김종서의 손자라 하면서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죽던 날 혼자 도망쳐 이렇게 숨어 살고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공주에게 어린 사람이 어떻게 그런 의로운 마음을 가졌냐고 하면서 더욱 정이 깊어 갔다.

한 편 태종은 만년에 피부병이 나 산수 좋은 곳에서 치료하기 위해서 속리산을 찾는다. 길을 가다가 자신과 꼭 닮은 아이를 본다. 그래서 그 아이에게 어떻게 된 연유인지 알아보고 공주를 만난다. 왕은 지난날을 회억하면서 공주와 부마가 살아 있음을 감사하게 여기고 궁궐로 같이 들어가자고 한다. 하지만 공주는 가족들을 데리고 사라진다. 이게 대강의 얘기다. 여러 사료를 보면 세조의 딸 하나가 사라진 것은 사실인 듯하다. 이를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표현해 우리들의 시선을 잡는다. 드라마에서도 이 내용을 다루고 있음을 본 기억이 있다.

 

임영대군 이구는 소헌 왕후와 사이에 태어난 세종의 넷째 아들이다. 그가 태어날 때는 국상이 여러 번 있었다. 정종이, 원경왕후가 또 조금 뒤에는 태종이 거푸 상을 당했다. 그래서 임영대군은 부모의 따뜻함을 입을 시간이 별로 없었다. 그것이 성장에 영향을 미쳤으리라. 세종의 아들 중 유일하게 사고 뭉치였다. 특히 여인 관계는 거침이 없었다. 왕비와 사이가 좋지 않은 것도 아니면서 반반한 여인이 있으면 누구를 막론하고 위력으로 관계를 가졌다. 세종이 다각도로 노력했으나 어쩔 수 없었다.

영응대군 이염은 소헌 왕후에게 태어난 막내다. 그는 송씨와 결혼을 했는데, 송씨가 세종에 의해 내쳐졌다. 병이 원인이라고 나와 있다. 하지만 영응대군은 송씨를 잊지 못했고, 나중에 다시 찾는 일도 생긴다. 그리고 딸도 한 명 놓는다. 아마 세종이 영응대군을 과잉 사랑하여 일어난 일이 아니가 저자가 생각하고 있다.

평원대군 이임은 소헌 왕후에게 태어난 7째다. 그는 19년을 살다가 갔다. 그런 그에게도 몇 명의 여인이 있었다. 아내 홍씨가 있고, 그녀는 7년 평원대군과 살았지만 자녀는 없다. 그 외에도 초요갱이란 기생, 백이라는 의녀 등이 있었으나 평원대군이 일찍 죽는 바람에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서러운 신세가 되었다. 의녀는 원래 양반가에서 첩으로 들이길 좋아하는데, 백이를 첩으로 들인 사람은 아들이 사랑한 여인을 들였다 하여 세종의 미움을 받아 내쳐지기까지 했다.

 

조선 왕조 중에서 가장 어린 나이에 자식을 본 왕이 예종이다. 그는 12살도 되지 않아 아비가 되었다. 남녀 관계가 뭔지도 모를 나이다. 아마 조숙했던 모양이다. 예종은 의경세자가 요절하면서 왕세자로 책봉되었다. 원래 왕가의 법도는 세자가 잘못 되면 원손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예종은 운 좋게도 왕세자가 되었다. 그는 11살 때 한명회의 딸과 결혼했다. 한씨는 예종보다 5살이 많았다. 아마 정순왕후가 손을 빨리 보고 싶어 선택한 것이 아닐까? 한명회의 입김이 작용해서 아닐까? 생각된다. 그런 후 바로 한씨는 아기를 가진다. 예종이 조숙했다는 뜻이리라. 하지만 예종은 아내복도, 자식복도 별로 없었다고 한다. 한씨, 자식 모두 바로 보낸다. 그 후 후궁을 들이고 자식을 낳고 했으나 일찍 죽는 자식이 많았고, 별로 자식복도 없었던 듯하다. 20살 때 죽었으니 그의 여인들도 힘 드는 삶이 되었으리라 생각된다.

 

이처럼 왕가에 들어온 여인들의 삶을 보면 왕조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살펴볼 수 있다. 왕비들이 온전하게 자리 잡은 왕들은 그래도 위엄 있는, 힘이 있는 왕조를 구축했다. 하지만 왕비가 힘이 없는 경우엔 왕들도 마찬가지다. 왕의 힘이 왕비의 힘으로 이어지고, 나라의 안정으로 까지 이어지는 모습을 보인다. 조선의 치세에는 더욱 그렇다. 조선왕조 로맨스는 그런 의미에서 조선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자료가 된다. 의미 있는 책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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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워블로그 블루

    조선 왕조의 로맨스를 읽으며 조선의 역사를 알 수 있겠습니다.
    왕조의 로맨스를 한 권의 소설로 엮은 책들을 읽으면서 조선의 역사를 훑을 수 있었어요.
    이 책도 그런 의미로 보입니다. ^^

    2019.11.14 13:18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나날이

      왕들의 사랑을 통한 역사 인식이라고 보면 되리라 생각합니다. 역사는 그렇게도 바라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19.11.14 17:54
  • 스타블로거 초보

    조선시대 왕들의 여성편력사처럼 읽혀집니다. 그럼에도 왕과 왕의 여인들의 관계는 정치적일 수밖에 없었겠지요. 두 사람 사이의 애정과는 별개로 환경에 따라 좌우되는 그들의 로맨스가 안타갑게 느껴집니다. ㅎ

    2019.11.14 16:44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나날이

      그렀습니다. 어찌되었던 사랑했던 사람들을 대하는 왕들의 태도가 역사의 한 자락을 이룬다는 것을 목도했습니다.

      2019.11.14 17:55
  • 파워블로그 나난

    조선 시대 왕들의 로맨스를 그린 이야기군요. 실제로 있었던 일이었기에 더욱 흥미롭겠습니다.

    2019.11.14 21:50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나날이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안타까운 마음도 많이 들었고요.

      2019.11.14 23:35

PRIDE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