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랩걸 Lab Girl

[도서] 랩걸 Lab Girl

호프 자런 저/신혜우 그림/김희정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4점

오래오래 전에 조디 포스터가 나온 영화 콘택트를 보면서 여성 과학자의 삶이 만만치 않다는 걸 간접적으로 짐작은 했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꽤 많은 부분을 사실적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만약 내가 과학자를 꿈꾸는 여학생이라면 여러 번 더 고민을 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과학기술이라는 게 전쟁에서 이길 목적으로 쓰일 때 가장 환영받는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우리나라도 아니고 미국에서-아니, 미국이라 더 그랬던 것일까?-돈 때문에 과학 연구하는 작업이 어려웠다는 교수의 글을 읽고 있자니 인간 사회의 부조리한 한 면이 두드러지게 느껴져서 좀 서글프고 많이 속상했다. 르네상스 시대의 메디치 가문 사람들이 얼마나 위대한 사람들이었는지 새삼 알게 되었다 싶다.


식물 이야기나 흙 이야기는 재미있고 유익했다. 이런 이야기는 전문작가의 도움 없이는 알 수 없는 내용들이다. 내가 이 내용을 알았다고 해서 전쟁에 도움을 주는 어떤 노릇을 하게 될 리도 없고, 내 삶에 돈이 막 생길 리도 없겠지만 늘 보는 나무랑 늘 밟는 흙이 내게 얼마나 큰 도움을 주는지 내가 얼마나 다행스러운 삶을 살고 있는지는 확인할 수 있다. 우리 같은 보통 사람이 바라는 그럴 듯한 세상은 그리 대단하지 않아도 되는 거다.(아닌가, 이게 어쩌면 엄청 대단한 것인가? 그래서 도무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인가?) 


알쓸신잡 2에서 유시민 작가님이 딸을 생각하면서 읽은 책이라고 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딸에 대해서도 안도감을 느꼈다고. 나도 내 딸과 아들을 생각하면서 읽어 본 건데, 유작가님이 어떤 대목에서 안도했는지 어렴풋이나마 알 것도 같았다. 자식은 부모의 염려와는 또 따로 제각기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내가 우리 부모에게 그러하였듯이. 내 아이들도 저들대로의 고민과 시련과 좌절을 겪어 나가면서 살아가게 되겠지.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생각해 보게 된다. 나보다 덜 가진 사람들을 염두에 두면서. 멀리 나갈 것도 없이 자신의 삶과 이웃의 삶을 조금이나마 낫게 하는 데에 기여하는 생활, 내가 행복해서 내 이웃까지 평온하게 해 주는 생활, 부당하고 억울한 대접을 받는 사람들이 없게 관심을 갖고 그들에게 힘을 보태 주는 생활에 대해서.


어떻게 '정의'는 약한 담벼락에 위태롭게 기대 서 있는 것처럼만 보이는 것인지.   


40
돈은 늘 지식을 위한 과학이 아닌 전쟁을 위한 과학에 몰렸다. 

49
시간은 나, 내 나무에 대한 나의 눈, 그리고 내 나무가 자신을 보는 눈에 대한 나의 눈을 변화시켰다. 과학은 나에게 모든 것이 처음 추측하는 것보다 복잡하다는 것, 그리고 무엇을 별견하는 데서 행복을 느끼는 것이야말로 아름다운 인생을 위한 레시피라는 것을 가르쳐줬다. 과학은 또 한때 벌어졌거나 존재했지만 이네 존재하지 않는 모든 중요한 것을 주의 깊게 적어두는 것이야말로 망각에 대한 유일한 방어라는 것도 가르쳐줬다. 나보다 더 오래 살았어야 했지만 그렇게 하지 못한 내 나무도 그중 하나이다. 

50-51
이제 숲에 가면 잊지 말자. 눈에 보이는 나무가 한 그루라면 땅속에서 언젠가는 자신의 본모습을 드러내기를 열망하며 기다리는 나무가 100그루 이상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사실을.

52
모든 시작은 기다림의 끝이다. 우리는 모두 단 한 번의 기회를 만난다. 우리는 모두 한 사람 한 사람 불가능하면서도 필연적인 존재들이다. 모든 우거진 나무의 시작은 기다림을 포기하지 않은 씨앗이었다. 

114
세상의 모든 대담한 씨앗들처럼 나도 상황이 닥치면 그때그때 거기 맞는 해결책을 찾아가며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다. 

152
나무와 곰팡이는 왜 공생할까? 우리는 그 이유를 알지 못한다. 곰팡이는 어디에서나 혼자 잘 살 수 있지만, 더 쉽고 독립적인 삶을 포기하고 나무 뿌리를 둘러싸고 도와주는 삶을 선택한 것이다. 식물의 뿌리에서 직접 나오는 순수한 당분을 찾도록 적응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런 당분은 숲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이질적이고 농축된 화합물이다. 어쩌면 곰팡이도 공생 관계를 이루어 살면 혼자서 외롭게 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깨달았는지도 모른다.

182
살지 않아야 할 곳에서 사는 식물은 골칫덩어리에 불과하다. 하지만 살지 않아야 할 곳에서 번창하는 식물이 잡초다. 우리는 잡초의 대담성에 화를 내지는 않는다. 모든 씨앗은 대담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화를 내는 것은 잡초들의 눈부신 성공이다. 인간들은 잡초밖에 살 수 없는 세상을 만들어놓고 잡초가 많이 자란 것을 보면 충격을 받은 척, 화가 나는 척한다. 우리가 이렇게 앞뒤가 안 맞는 행동을 하는 것은 사실 아무 상관이 없다. 식물의 세계에서는 이미 혁명이 일어나서 인간이 개입한 모든 공간에서는 침입자들이 쉽게 원주민들을 내쫓고 뿌리를 내리고 있다. 우리가 아무 힘도 없이 그저 입으로만 잡초를 욕해봤자 이 혁명을 멈추지는 못한다. 지금 목격하고 있는 혁명은 우리가 원한 것이 아니라 촉발한 것일 뿐이다. 

267
필요로 인해 시작된 창조 과정은 무척 재미있고 괴팍한 결과로 이어지고, 그것을 만드는 사람에 따라 독특한 성격을 띤다. 모든 예술 작품과 마찬가지로, 이 과학적 창조물들도 시대의 영향을 받고, 그 시대에 직면한 문제 해결을 시도하려는 노력의 산물이다. 또 모든 예술 작품과 마찬가지로, 과학적 창조물도 그 덕분에 가능해진 미래의 시각에서 보면 구식이고 고물로 보이게 마련이다. 그럼에도 하던 일을 멈추고 선배 과학자들의 손길이 닿은 이런 창조물들을 들여다보면 독특한 매력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고, 지엽적인 요소에까지 세심한 신경을 쓰쓴 것을 보고는 점묘화에서 수평선 멀리 있는 작은 배를 표현한 수백 전의 붓 자국을 볼 때와 마찬가지로 경탄하지 않을 수 없다.  

362
큰 좌절에 대처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잠시 멈추고, 숨을 크게 쉰 다음, 마음을 가다듬고 집에 가서 그날 저녁은 다른 일을 하며 시간을 보낸 후 날이 밝으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또다른 하나는 즉시 그 문제에 다시 몸을 던져 머리를 물 속에 집어 넣고 바닥까지 다이빙을 해서 그 전날보다 한 시간 더 일하면서 무엇이 잘못됐는지를를 찾아내기 위해 애를 쓰는 것이다. 첫 번째 방법이 적절함에 이를 수 있는 길이라면, 두 번째 방법은 중요한 발견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랩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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