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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도서] 여름

이디스 워튼 저/김욱동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출판사와 표지에 대한 호감으로 구한 책이다. 작가에 대해 전혀 모르는 채로 읽어 나가기 시작했는데. 1장을 읽고 아주 마음에 들어서 몇 장까지 있는지 확인해 보았다. 18장이다. 그 뒤에는 만만치 않은 분량으로 번역가의 작품 해설이 실려 있다. 나는 이 글을 한번에 주루룩 읽은 게 아니라 한 장 한 장 끊어서, 다른 일도 하면서 마치 일일연속극처럼 나누어 보았다. 그렇다고 하루에 한 회씩만 본 건 아니었고. 

 

작가가 자신이 쓴 작품들 중에 이 작품을 퍽 좋아했다고 한다. 쓰게 된 배경을 참고해 보니 당사자에게는 썩 유쾌한 처지에서 나온 작품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게다가 1차 세계대전이라는 험한 상황에 놓여 있기도 했다고 하고. 쓰고자 하는 갈망은 결국 다른 핑계나 변명을 허락하지 않는 듯하다. 어떤 일에서든 대부분 그러하겠지만 할 일을 하는 사람은 해내고 마는 모양이니. 어떤 상황에 놓이더라도.   

 

채리티. 작품 속 열여덟 살의 여자 주인공이다. 중심 사건은 단순하다. 시골에 살고 있는 여자 주인공이 도시에서 온 젊은 남자에게 반해서 사귄다는 것. 이 단순한 줄기를 작가는 엄청나게 천천히 그리고 지독하다 싶을 정도로 세밀하게 그려 보인다. 그것도 여름 한 철이라는 시간 안에서. 글을 읽는 동안 나는 먼 미국 땅, 백 년 전 어느 시골의 풍경 안에서 오래 머무는 느낌을 받았다. 채리티가 오가는 길을 내내 따라다니면서. 그녀가 느끼는 감정들을 고스란히 전해 받으면서. 그래서 꽤 힘들었지만. 

 

소설을 쓰고 싶은 마음은 어떨 때 생길까. 새삼스럽게 작가가 글을 쓰는 동기에 대해 짐작해 본다. 이런 인물이 이런 일을 겪었어요, 이런 생각을 했다는군요, 그러면서 쓰고 있는 자신에게 기대하는 바는 무엇일까? 바라는 바가 이루어지기를? 한심하고 고통스러운 현실을 누군가에게 알리고 싶은? 기어코 드러내지 않으면 견디기 힘들 것 같은, 못 살 것 같은 간절함으로?  표현의 본능이 그리하여 문학 본능 중 하나가 되었던 걸까.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그 마음으로 해내는 예술가들의 모든 활동을 봐도 그렇고.     

 

백 년 전 미국 사회가 여성에게 그토록 억압적이고 차별적이었다는 데에 좀 많이 놀랐다. 막연하게 평등했으리라 착각하고 있었나 보다. 우리의 처지나 별 다를 바 없었던 모양이니. 사회의 분위기를 거스르는 주제를 담고 있는 글을 써 내는 일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요즘 우리 사회의 모습만 봐도 충분히 짐작이 되는데 이 작가가 그때 그랬다는 거고 그 작품이 이 소설이라는 것이다. 백 년이 지난 지금 기준으로는 '설마 이 정도로?' 싶기만 하건만.   

 

주제도 주제였지만 내가 이 작품에 더 빠져든 것은 낱낱의 문장들에 있었다. 어느 한 줄도 소홀히 넘길 수가 없었다. 넘겨지지도 않았고. 원작도 번역도 훌륭하다는 게 이런 글에서 할 수 있는 말이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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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워블로그 woojukaki

    지난해 이디스 워튼의 단편소설..메력에 빠져 이 책도 찜해 놓았는데..낱낱의 문장 이란 표현 어떤 느낌인지 조금 알것 같아요..^^

    2022.01.26 10:57 댓글쓰기
    • 스타블로거 책읽는베토벤

      좋았어요. 아주 근사했답니다. 마지막에는 많이 서운했지만 말이지요. ㅎ

      2022.01.26 17:48
  • 스타블로거 행복한왕자

    베토벤님이 애정하시는 책의 리뷰는 썸씽 스페셜한 것이 있어요. 이 리뷰가 그렇네요.

    2022.01.27 22:55 댓글쓰기
    • 스타블로거 책읽는베토벤

      ㅎㅎㅎ 전 잘 모르는 '썸씽 스페셜한 것'. 뭘까요?

      2022.01.29 11:04

PRID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