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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

[도서]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

유창선 저

내용 평점 3점

구성 평점 3점

라디오를 듣다가 오랜만에 등장한 시사평론가 저자가 책을 썼다는 걸 알았다. 최근 그를 화면에서 볼 수 없었던 이유 중 하나로 2년전 뇌종양수술 받았다는 사실이었는데 그것만이 아니었다고 한다. 보수가 집권할 때는 진보쪽이라고 진보가 집권했는데는 다른 편이라고 배제된 자신을 회색인으로 지칭한 그의 글을 읽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조금 실망이다. 그가 서술하고 인용한 바가 신문스크랩수준이어서다. 칼럼리스트로 기고를 하거나 매일매일의 시사에 부연설명을 주로 하는 시사평론가의 한계가 있긴 하지만 적어도 자신의 이름으로 책을 낸다고 한다면 단편적이고 표면적인 지식과 정보의 이면에 대한 심층적인 취재나 정보확인을 통해 편향성을 조금 객관하하려는 노력을 덧붙였어야 하지 않았나 싶다.

권력을 가진 자는 권력에 대한 감시와 시선집중을 당연시해야 하고 권력자의 행위에 대한 비판은 숙명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총을 가진 권력자는 늘 오만한 자로서 반대파를 숙청해서 자신만의 태평성대를 꿈꾸는 독재자의 전철을 밟게 된다.
민주주의정부가 공산국가와 다른 점은 정해진 시기에 권력이 교체된다는 것이고 그 기간 동안에 잘못은 다음 선거에 평가받는다는 것이다. (물론 그 기간이 너무 긴 것이 문제긴 하다. 개인적으론 4년 총선도 2년에 반을 갈아치우는 미국식 의원선거 제도를 차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군부독재를 종식시키기 위해 당시 권력을 쥔 측과 협상을 통해 5년 단임 대통령제를 취했지만, 단임제는 늘 책임의 문제를 불어오기에 집권하고서도 사심보다는 공익과 국가를 위해 헌신적이고 애국적인 이상향의 지도자를 요구하고 만다. 절대 그럴 수 없다는 건 만고의 진리 아닌가?
인간은 늘 변한다. 젊은 시절 절대 그러지 않으리라던 나 역시 나이가 드니 어제와 다른 생각을 할 수도 있다는 걸 인정한다. 다만 정치권력은 혼자 이끌어가지 않는다. 과거 카리스마적 지도자로 불린 3김시대는 이제 다시 등장할 수 없다. 4년간 또라이짓을 한 미국의 트럼프가 있긴 했어도 결국 재선에 성공하지 못했다. 
왜 이런 얘기를 하냐면, 현 집권세력은 늘 언론의 감시와 비판에서 자유스러울 수 없다는 점이다. 이것을 싫어하고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을 억누르면 그동안 독재권력을 비판했던 순수한 초심을 잃게 되기 때문이다.
현 권력에 대한 비판은 무제한 허용되어지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래서 그것을 이용해서 자신의 기득권을 누리려는 적폐 세력이 기지개를 켠다. 다시 민주주의의 시계를 되돌리려는 시도는 용납되어져서는 안 되지만, 우린 안다. 민중은 옳다고 하지만 대중은 뉴스에 훅 쏠린다.
교체되지 않는 권력은 4년, 5년 정권의 몰락을 기대하고 조장한다. 비록 정부의 실정이 있긴 하고 내로남불이라는 비난을 받더라도 민주주의의 후퇴를 바라지 않는다. 미얀마군부의 무자비한 학살 뉴스를 보면서 41년전 광주에서 일어났던 장면이 연상되는 국민이 많다. 독재에 저항해서 민주화를 쟁취했던 그 이력을 요즘 2030세대는 그 윗세대가 느끼는 일제식민지하의 독립군활동이나 한국전쟁당시 참상에 대한 기억처럼 여길 지 모르지만 그 역사가 있었기에 현실이 존재하고 그 가치가 있었기에 우리는 미얀마와 다르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저자 등의 쓴소리를 권력자는 받아들이고, 겸손하게 정치를 이끌어가야한다. 서울시장, 부산시장 보선의 민심을 받아들이지만 그것이 있는 자, 가진 자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의견수렴으로 민심을 달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왜 집권층에 그만한 권력을 주었겠는가. 바꿀 수 있을 때 바꾸지 않으면 또다시 거리에서 농성이나 하는 수준으로 되돌아갈 것이다. 합법적 권력을 행사하지 않는 것 역시 역사의 요청을 무시하는 거란 소리도 잊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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