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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를 파괴할 힘

[도서] 모두를 파괴할 힘

이경희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진입장벽이 상당한 책이다. 낯선 설정들이 넘쳐나고 배경은 어둡기 그지없는데다가 영화같은 일들이 연이어서 터진다. 소설의 장르는 미래 SF물에 초능력물. 때문인지 이야기의 스케일도 상당하다. 세계 각국의 초능력자들이 나오고 우주에 미사일을 날려보내며, 각 나라들은 달의 영역을 나눠 점령하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소설 속 초능력자인 데비안트는 2020년대 한반도에서 시작해 전 세계적으로 발견되기 시작했다는 설정을 가지고 있다. 데비안트의 발현 원인은 방사능과 깊은 상관관계를 가지며 불안, 스트레스, 우울 같은 부정적 감정이 능력 발현을 촉진시킨다. 대개는 정서불안이 심해지는 청소년기에 능력이 처음 발현하며 30세를 전후로 약해진다.(533p)

 

이런 가운데 소설은 데비안트 19살 소녀인 '신화경'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어느 날, 달에 있는 수면 캡슐에서 눈을 뜬 화경은 왜 달에 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주인공인 신화경은 슈퍼 데비안트 급으로 분류되는 강력한 텔레파스다. 타인의 생각을 읽고 타인과의 공명을 할 수 있는 능력자인 텔레파스지만 여전히 상황 이해가 어려운 건 마찬가지다. 기억을 잃은 채 깨어나보니 달이었고, 누군가가 화경을 죽이려 하고 있으며 달에 함께 있는 사람들도 공격당하는 상황이다. 공격당하는 자는 모두 데비안트들로 상황파악이 안되긴 마찬가지. 오직 그들 모두가 데비안트들이고, 예카테린부르크라는 곳과 관련된 기억이 인위적으로 삭제되었다는 사실만 파악한다. 그 와중에 화경을 포함한 데비안트들은 그들 중 휴머노이드가 있다는 걸 알게되고, 휴머노이드를 통해 자신들을 공격하는 게 전 세계의 핵무기와 데비안트를 통제하는 UN산하 독립기구 IAEDA라는 사실을 전해듣는다.

 

한 자리에 모인 데비안트들의 위기상황에서 각 데비안트들의 이야기, 그리고 과거의 '신화경' 이야기, 화경이 몸담았던 단체 '혁민이들' 이야기, 그리고 다시 달로 돌아오는 대장정이었다. 500페이지가 훌쩍 넘는 책이지만 한 번 붙잡으면 페이지가 술술 넘어간다. 진입장벽이 있어서 이게 무슨 소리인가했던 초반부를 지나고 나면 도대체 화경이 무슨 일을 겪었던 것인지, 죽은 게 분명했던 유영이 왜 달에 있는 화경의 옆에 있는지, 데비안트의 인권보장을 위해 노력했던 혁민이들의 끝은 어떻게 될지 궁금해서 틈만나면 책을 읽어나갔다. 설정도 흥미로운 점이 많아 더 그랬다.

 

데비안트라고 불리는 능력자들은 각자의 능력에 따라 다른 이명도 가진다. 심리상태와 생각에 영향을 끼치는 텔레파스, 공간을 이동시키는 점퍼, 흔히 염력이라고 부르는 힘을 사용하는 키네신스, 투시 능력자인 보이안트. 하지만 이들은 보통 사람들과 달랐기에 차별과 억압을 받으며 살아온 존재다. 특별관리대상이라며 아이들을 모아놓고 열악한 환경에 방치되며 사회적 차별도 심하다. 시험, 취업에 제한을 받으며 차별적인 시선도 가득하다. 때문에 화경또한 능력이 발현되고 부모로부터 격리되어 차별을 받아왔으며 데비안트 인권 운동가로 활동하던 어머니를 잃었다. 그 와중에 세상을 바꾸자며 손을 내민 유영은 화경 또한 바꿔놓고, 유영과 다른 데비안트들을 만나며 화경의 미래도 바뀌게 된다.

 

책은 투쟁의 역사와도 같았다. 소외된 이들에게도 힘을 나눠주고 싶었다는 작가의 말처럼, 책을 이끌어가는 데비안트들은 능력이 아니었다면 사회적 약자이자 편견의 희생자였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화경은 아버지가 없었고, 같이 활동하던 단원은 말이 서툴렀으며 다들 각자의 비밀을 안고있기도 했다. 때문에 한 사람씩 이야기를 진행할 때마다 데비안트가 아닌 그냥 사람으로 공감해달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주인공들이 어리고 미숙한 느낌이 많이 났던 소설이다. 대부분 10대의 나이라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이 소설에 영웅담이나 과한 부담을 짊어지고 비범한 의지로 세상을 이겨내가는 주인공은 없다. 왜 하필 나였는지 모른 채, 앞으로 나아가며 구르고 깨지는 인물들의 이야기라고 해야할까. 덕분에 보는 내내 현실적인 답답함도 함께했다. 눈앞에 투쟁해서 쟁취해야 할 목표가 있음에도 그 목표까지 가는 길은 사람마다 다를 수 밖에 없기에 사람들은 서로 반목하고 갈등하며 마침내 분열한다. 때문에 그 누가 지도자였는지와는 상관없이 무너져내리는 과정이 안타깝고 애달프기도 했다. 그럼에도 마음 한 켠에 다정함이 있었던 주인공 화경은 텔레파스의 능력 때문에 모든 이의 절망을 공유하고 무너지는 와중에도 다시 일어날 힘을 얻기도 한다.

 

이렇게 말하면 굉장히 복잡해보일 수도 있는데 재밌게 읽을 수 있었던 소설이다. 혁명이라는 이름 아래 행해지는 갈등상황이 계속 벌어질 때는 지치는 감이 있었지만 영화를 보는 듯한 스케일과 묘사 덕분에 더 흥미진진했다. 인물들 간에 얽히는 이야기도 인상깊었고 마지막에 반전 격이었던 이야기도 놀라웠다. 그 밖에 중간중간 유튜브 형식을 빌려와 댓글을 보여줬던 점이나 파괴와 절망을 나타내는 편집된 페이지도 재밌어서 기억에 남았다.

 

혁명은 쿨하지도 핫하지도 않았다.

더럽고 지루한 일들의 반복일 뿐이었다.

책으로 배운 역사 속 대격변의 장막 뒤에서 어떤 복잡한 과정이 벌어지고 있었는지 우리는 전혀 알지 못했다.

일단 시작하기만 하면 금세 세상이 뒤집어질 거라는 착각에 빠져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상상과는 전혀 달랐다.

단단히 뿌리내린 현실은 조금도 움직여주지 않았다. - 33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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