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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도서]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하린리히 뵐 저/김연수 역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주인공인 카타리나 블룸은 아름답고 행실이 단정하며 블로르나 부부의 가사관리사로서 성실히 일한 덕분에 27세라는 젊은 나이에 벌써 아파트까지 마련했다. 1974년 2월 24일 일요일, 카타리나 블룸은 일간지 <차이퉁>의 기자 퇴트게스를 총으로 쏘아 살해한다. 이 책은 카타리나 블룸이 뫼딩 경사를 직접 찾아가 자신의 범죄를 담담히 알리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살인 사건을 다룬 책인데도 불구하고 사건의 결말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왜 그녀가 퇴트게스를 죽여야만 했는지 그녀에게 벌어진 나흘간의 일들을 마치 보고서처럼 거리감 있는 문체로 전달한다. 이러한 문체의 의도적 사용은 자극적이고 선정적이며 과장과 왜곡을 일삼는 황색 언론에 대한 작가 하인리히 뵐의 비판으로 읽힌다. 소설 속에서 일간지 <차이퉁>은 확인되지도 않은 내용으로 삼류 소설 같은 기사를 쓰지만, 카타리나의 살인 사건에 접근하는 본 소설의 문체는 사건에 대한 조심스럽고 신중한 태도를 내내 견지하고 있다. 
 
나흘 전, 카타리나 블룸은 댄스파티에서 루트비히 괴텐이라는 남자를 만나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 파티가 끝나자 그녀는 괴텐을 집으로 데리고 가고, 괴텐은 자신이 실은 은행강도범이며 경찰에 쫓기고 있는 신세라고 고백한다. 그녀는 그녀만이 알고 있는 아파트 비밀 통로를 괴텐에게 알려주며 그가 도망칠 수 있도록 비밀통로로 내보낸다. 한편 경찰은 이미 댄스파티에서부터 괴텐을 감시하고 있었는데 그가 카타리나 블룸의 아파트에서 좀처럼 나오질 않자 블룸의 아파트를 급습한다. 괴텐의 행적이 묘연하여 경찰은 블룸을 심문하기 위해 연행한다. 연행되는 블룸을 구경하기 위해 모인 주민들과 기자들 사이에서 블룸의 머리와 옷차림은 헝클어지고 이리저리 부딪히며 그녀의 표정도 일그러진다. 사진 기자들은 속수무책인 블룸의 모습을 마구 사진 찍어 언론에 내보낸다.
 
연행된 블룸이 경찰에게 털어놓은 내용들은 언론의 입맛에 맞게 변형되고 왜곡되어 자극적인 기사로 내보내진다. <차이퉁>이 확인되지도 않은 정보들을 기정사실화하여 보도하고 주변 사람들의 인터뷰 내용을 교묘한 방식으로 ‘악마의 편집’을 하자, 어느새 카타리나 블룸은 경찰의 조사가 끝나기도 전에 이미 확실한 ‘강도의 내연녀’, ‘은행 강도의 공모자’, ‘남자에 환장해서 수치를 모르는 마녀’, ‘음탕한 공산주의자’가 되어 있었다. 물론 개중에는 상식적인 언론도 있었으나 문제는 대중들이 그런 ‘심심한’ 언론을 읽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차이퉁을 읽고, 차이퉁이 흔드는 대로 휘둘린다.

예를 들어 <움샤우>지에는 열 줄 정도의 기사가 났고 물론 사진도 실리지 않았으며 전혀 결함 없는 사람이 불운하게 사건에 연루되었노라 보도했다고 한다. 그녀가 블룸에게 가져다준 오려 낸 신문 기사 열다섯 장은 카타리나를 전혀 위로하지 못했고, 그녀는 그저 이렇게 묻기만 했다고 한다. “대체 누가 이걸 읽겠어요? 내가 아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차이퉁>을 읽거든요!”

p.68

 

단 나흘 만에 카타리나 블룸의 인격은 살해당했다. <차이퉁>의 기자 퇴트게스는 카타리나 블룸의 인성 개차반이던 그녀의 전남편을 만나 그의 편파적이고 악의적인 인터뷰를 사실인 것처럼 보도한다. 또 큰 병을 앓아 요양원에 있는 블룸의 어머니를 찾아가 인터뷰를 하는데 그 충격으로 블룸의 어머니는 죽게 된다. 이제 <차이퉁>의 보도에 선동된 시민들은 한밤중에 블룸의 집으로 전화를 걸어 음란한 말을 퍼부어 댔고 블룸의 집에는 그녀를 저주하는 편지와 쪽지가 남겨졌다. 아파트 건축사에서는 그녀로 인해 아파트 단지의 명예가 실추되었다면서 손해배상청구를 준비하겠다고 했다. 블룸은 퇴트게스를 자신의 아파트로 초대하고, 퇴트게스는 블룸에게 ‘섹스나 한 탕 하자’고 말하고, 그 말에 블룸은 퇴트게스에게 총을 쏘았다.
 
오프라인 모임에서 회원분들과 몇 가지의 질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1. 카타리나 블룸이 괴텐을 사랑한 것처럼, 나도 살인범(범죄자)을 사랑할 수 있을까?
회원분들의 이야기를 듣기 전에는 살인범을 사랑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누구를 사랑할 때 그 사람의 삶을 사랑하는 거라고 생각했고, 살인 등의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의 삶을 사랑하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짜 사랑’을 하게 되면 그런 허물까지도 감싸 안게 된다, 부모-자식 간의 사랑에서도 범죄자인 자식을 여전히 사랑하고는 한다, 카타리나 블룸도 살인범이지만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다 등의 의견이 많아서 바로 설득되었다...! 
 
2. 언론의 자유는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을까?
성폭력 문제를 보도하는 뉴스를 볼 때 불쾌함을 느낀 적이 많다. 성폭력 피해자가 어떤 성폭력을 겪었는지에 대한 지나치게 자세한(불필요한) 묘사, 선정적인 느낌을 받게 하는 그림 자료의 사용 등. 언론의 자유는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지 회원분들의 생각을 물었다. 이미 스마트폰을 사용해서 누구나 파괴력 강하고 자극적인 내용을 실시간으로 공유할 수 있는 1인 언론 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에, 언론의 자유를 한정짓기가 사실상 어렵고 또 실제적으로 무용하다는 의견들이 있었다(결국 다들 그 선을 가뿐히 넘어가버릴 것이니까). 과거엔 언론이 기자들의 일이었기에 기자들의 보도윤리만 생각하면 되었는데, 지금은 모든 시민들이 곧 기자인 세상이라 결국 모든 사람들의 윤리의식 문제로 확장된 것이 아닌가 싶다. 이 책의 부제처럼 카타리나 블룸이 당한 일은 엄연한 폭력이다. 폭력이 난무하는 이 전쟁터에서 블룸처럼 폭력을 당하지 않으려면, 또한 <차이퉁>의 논조에 선동당하며 조용하고 차가운 시선으로 블룸에게 폭력을 가하지 않으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요즘은..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자신을 지키켜 제대로 살기란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들고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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