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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외출

[도서] 영원한 외출

마스다 미리 저/권남희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해가 가고 나이가 들수록 마스다 미리의 작품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달라진다. 7년 전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을까?>를 처음 읽었을 때만 해도 마스다 미리는 내게 가까워지고 싶어도 가까워지기 힘든 작가였다. 그때만 해도 이십 대였기에 마스다 미리가 이야기하는 비혼 여성의 일과 연애, 건강 관리, 노후 준비, 부모 봉양 같은 문제들이 내 일처럼 생생하게 다가오지 않았고, 이야기의 주제나 교훈보다는 이야기를 전달하는 간결한 문체나 담담한 그림 같은 것에 눈길이 갔다. 서른 중반이 가까운 지금은 다르다. 수짱(마스다 미리의 대표 캐릭터)을 나로 바꾸어도 부족함이 없을 만큼 이야기 하나하나에 공감이 가고 절절한 감동을 느낀다.


마스다 미리의 신작 <영원한 외출>을 읽을 때에도 그랬다. 딸 둘에 장녀인 나는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미리 알아보기도 하고 마음의 준비를 해보기도 하는데 마스다 미리도 딸 둘에 장녀라 귀감이 되었다. 이 책은 저자의 아버지가 암 선고를 받고 세상을 떠나기까지의 일들을 그린다. 아버지가 임종하기 직전에 보낸 마지막 날들과 임종 직후에 벌어진 일들, 장례 준비, 장례, 유품 정리, 홀로 남은 어머니를 돌보는 이야기 등 상황별로 구체적인 이야기가 제시되어 큰 도움이 되었다(임종 당일 오래된 앨범을 꺼내 아버지의 사진을 고르면 장례식에서 틀어주는 서비스는 나도 이용해보고 싶다).


여명이 6개월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저자는 "아, 생각보다 기네."라고 말했다. 솔직한 심정이었다. 암 3기인 아버지의 상태는 누가 봐도 안 좋았다. 가족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매일 아버지가 먹고 싶어 하는 음식을 준비해드리는 일뿐이었다. 그마저도 몇 입 먹지 못하고 남길 때는 마음이 아팠다. 전에는 비싸서 좀처럼 사 먹지 못했던 장어덮밥을 이제는 기력이 없어서 먹지 못한다는 사실이 애달팠다. 건축 현장 감독으로 일본 전역을 누볐던 아버지가 집 앞 편의점에도 자유롭게 가지 못한다는 사실도 짠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아버지를 곁에서 지켜보는 나의 감상일 뿐이다. 당장 죽음을 눈앞에 둔 아버지가 이런 변화를 어떻게 느끼고 받아들이지는 감히 상상할 수 없다.


저자는 아버지와 무척 친한 딸은 아니었다. 아버지에게 대든 적도 많고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싸운 적도 있다. 하지만 아버지가 평소에 어떤 간식을 즐겨먹고 어떤 농담을 즐겨 하는지 시시콜콜 알았다. 자식이기에, 아버지가 남들에게 함부로 보여주지 않는 다정한 얼굴과 엄한 얼굴도 알고 있었다. 자식이 없는 저자의 인생은 누가 기억해줄지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졌다. 저자는 타인의 죽음에 깊이 공감하는 성격은 아니었다. 상중 엽서가 와도 지금까지는 '얼마나 쓸쓸할까'라고 생각했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로는 "그렇구나, 그랬구나, 요전에 잠깐 얘기할 때는 그렇게 밝았는데..."라고 감정이입하면서 엽서를 보았다. 나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해주고 길러준 아버지는 죽어서까지 나를 가르쳐주고 성숙하게 해준다.


책을 읽는 동안 작년에 세상을 떠난 할아버지와 전립선암 선고를 받고 투병 중인 큰아버지 생각이 많이 났다. 나에게는 할아버지이고 큰아버지이지만, 아버지에게는 아버지이고 바로 위 형이다. 임종도 보지 못한 채 아버지와 영영 헤어지고 가장 가까운 형까지 큰 병을 앓고 있는 아버지는 지금 얼마나 마음이 안 좋으실까. 괜찮으시냐고 걱정하는 말을 건네면 늘 허허 웃으며 괜찮다고 답하는 아버지. 이 딸이 여전히 미덥지 않아서 좀처럼 속내를 드러내지 않으시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올해를 끝으로 정년 퇴직을 하시고 마음에 여유가 생기면 이 딸에게도 마음을 열어주시려나.


이제 <영원한 외출>을 다 읽었으니 그동안 미처 읽지 못했던 <평균 60세 사와무라 씨 댁> 시리즈를 읽어볼 생각이다. 이제까지는 비혼 결심이 굳지 않았고 부모님 연세가 많다는 생각도 들지 않아서 읽어볼 마음이 들지 않았는데, 이제는 비혼 결심이 굳어졌고 정신을 차려보니 부모님 모두 올해로 60이 넘으셨으니 읽을 때가 되었다. 앞으로 부모님과 어떻게 살아갈지 생각하면 막막한데, 늘 나보다 10년 정도 먼저 인생을 살아보고 가르침을 주는 마스다 미리 작가님에게 조언을 구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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