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작가 마이 셰발과 페르 발뢰의 '마르틴 베크 시리즈'를 애정하는 독자로서 오래전부터 꼭 읽고 싶었던 작품이다. '발란데르 시리즈'는 '마르틴 베크 시리즈'로부터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으며, 두 시리즈 모두 스웨덴 작가가 썼고, 경찰이 주인공이며, 복지 국가로 유명한 스웨덴의 어두운 실상을 고발하는 성격을 지닌다는 공통점이 있다. (<얼굴 없는 살인자>에는 '마르틴 베크 시리즈' 중 하나인 <웃는 경관>을 언급하는 대목도 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마르틴 베크 시리즈'의 배경은 1960-70년대이고 '발란데르 시리즈'의 배경은 1990년대라는 것이다. 아직 스마트폰도 없고 컴퓨터도 겨우 보급되기 시작한 시기에 경찰은 어떻게 일했을까. 전산화가 안 되어서 자료 하나 찾으려면 대량의 종이 장부를 뒤져야 했고, 휴대전화도 없어서 새로운 사건이 발생하면 일일이 전화를 돌려야 했다. 이 소설의 범인도 피해자의 집 주변에 CCTV 몇 대만 있었어도 금방 잡혔을 것이다. (그랬다면 이 소설이 안 쓰였겠지만...)
발란데르의 개인사에서도 시대상이 느껴진다. 90년대는 스웨덴에서 이민 정책 문제가 수면 위로 부상하기 시작한 때로, 이전까지 스웨덴 내에선 백인 우월주의, 타인종 혐오 정서가 우세했던 것으로 보인다. 발란데르 역시 자신의 외동딸이 흑인 남자와 사귀는 것을 알고 불만족하는 태도를 보이는데, 정작 자신은 꿈에서 흑인 여자와 자니 아이러니하다. 치매 증세를 보이는 아버지를 돌볼 사람이 없어서 발을 동동 구르는 모습에선 복지국가의 사각지대를 본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