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눈이 핑 돌도록 일하고 시간이 없어서 일손 더는 세탁건조기를 갖고 싶다고?
일에 쫓겨 생활이 불규칙해지니까 건강기구를 산다고?
출근길 지하철에서 쾌적하게 음악을 듣기 위해 iPod를 마련한다고?
이것저것 물거늘 사들여 방이 좁아지니까 이번에는 PDP가 갖고 싶다고?
결국 생산자는 필요 이상으로 생산해야 하니까 잔업이 줄어들 리가 없지.
이거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제길... 정도껏 해두라구. (p.75)
모두가 고학력, 고수입, 고스펙을 얻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이런 시대에 가난뱅이를 자처하는 사람이 있다. 이름은 마츠모토 하지메. 이래봬도 도쿄의 부촌 중 한 곳인 세타가야구 출신이고(비록 고토구의 달동네로 이사가기는 했지만), 도쿄에 있는 데다가 사립대 랭킹 중상위권에 속하는 호세 대학 출신이다. 달동네에 살아도 좋아하는 밴등에 감동을 받아 기타를 사거나 록가수의 라이브에 가거나 무전여행을 떠나는 등 청춘을 만끽하던 그에게 가난뱅이의 삶이 '숙명'으로 다가온 건 대학교 때다. 대학 경영에 대기업들이 관여하기 시작하면서 후줄근하던 캠퍼스에는 으리으리한 새 건물이 들어서고, 얼마 안 있어 대학은 본래 기능인 학문, 연구, 자치활동 대신 기업에 필요한 취업자를 양성하는 기관으로 전락했다. 보다 못한 저자는 '호세 대학의 궁상스러움을 지키는 모임'을 결성해 학생식당 밥값 인상에 반대하는 운동을 벌이고, 대학의 각종 규제에 반대하는 찌개 집회, 맥주 파티, 카레 데모 등을 열었다. 졸업 후에는 재활용 가게 '아마추어의 반란'을 열고, 스기나미 구의회선거에 입후보하기도 했다.
스스로 가난뱅이의 삶을 택하는 것도 대단하지만, 다른 가난뱅이들과 연대하여 꾸준히 사회운동을 하고 있는 점이 놀랍다. 집 구하기, 옷 구하기, 밥값 줄이기 등 일상생활에 필요한 기술부터 재활용 가게 창업, 지역 연대, 매체 활용 등 다양한 방법을 연구한 점도 훌륭하다. 게다가 내용과 이름들이 어쩌면 하나같이 재미있고 기발한지. 이 재능을 부자가 되는 데 썼다면 굉장한 부자가 되었겠다 싶다. 더욱 대단한 것은 항상 타인의 시선을 신경쓰고 규칙이나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지 않으려는 일본 사회에서 이렇게 급진적이고 도발적인 사람이 나왔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책 말미에 실린 우익 인사 아마미야 가린과의 대담이 힌트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마츠모토와 아마미야 두 사람의 정치적 입장은 정반대지만, 스스로를 가난뱅이로 규정하고 빈곤 문제에 관심이 많다는 점은 같다. 즉, 현재 일본이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차이보다는 경제적 계급, 빈부 차이의 문제가 더 심각하다는 것이다. 마츠모토의 용감한 행동이 갈수록 뚜렷해지고 심각해지는 양극화 문제로 인한 것이며 그것이 사회적 시선을 잊게 할 만큼 강렬했다고 생각하니, 게다가 우리나라도 먼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하니 씁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