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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비슷한 얼굴을 하고서

[도서] 우리는 비슷한 얼굴을 하고서

김달님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p.51

"엄마. 나야. 나 누군지 모르겠어?"

마스크를 쓴 얼굴이 낯선지 할머니는 아들의 목소리를 듣고도 한 번에 알아보지 못했다. 밖에선 마스크를 내려도 된다는 안내에 아버지가 맨 얼굴로 다시 엄마를 불러보았다. 엄마. 엄마. 나야 동춘이. 조금씩 알아보는 것 같은 할머니에게 간호사 선생님이 한 번 더 "할머니 아드님이래요"라고 부드럽게 말해주었다.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며 얼굴이 풀어진 할머니가 말했다.

"네. 저기 우리 아들이에요."

 

참 따스한 문장인데, 조금은 슬펐다. 아직 오지 않은 내 미래의 한 부분을 본 것만 같아서.. 두렵고 많이 아리지만 그래도 할머니께서 "네, 저기 우리 아들이에요." 말씀을 하시는 부분에서는 조금 안심이 되기도 했다.

 

p.72

햇살은 깨끗하고 바람은 찬 이 월 말이었는데, 네가 밭에 가서 장수풍뎅이를 찾아올 테니 잠깐만 마당에서 기다리라는 거야. 내가 곧 갈 것 같았는지 100까지 세고 있으라는 말과 함께. 일곱 살의 너에게 100은 엄청나게 큰 숫자였으니까. 그런데 얼마 안 가 네가 누나, 누나 하고 막 뛰어오는 거야. 무슨 큰일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 뛰어오는 너에게 "왜 그래?"라고 물었더니 숨을 헐떡이면서 네가 뭐라고 했는지 알아?

"누나! 봄이 왔어."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그랬더니 신이 난 네가 제자리에서 두 발에 힘을 주고 콩콩 뛰더니 말하더라.

"저번 주엔 내가 땅을 밟으면 딱딱했는데 이제는 폭신폭신해."

 

이 책을 이미 봄이 된 후에 읽게 되어서.. 안타깝게도 폭신폭신하게 오는 봄을 느껴보질 못했다. 방 어딘가에 이 내용을 적어두었다가 봄이 오려는 늦겨울에 아주 최선을 다해 봄을 느껴볼 것이다. 매일 매일 땅을 밟으며.. 폭신폭신한 봄을 기다려야지..

 

p.98

그동안은 여러 번 종교를 바꾸며 살아온 할머니에게 필요한 것이 자신의 기도를 들어줄 신의 존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할머니에게 정말로 필요했던 건, 신이 있어서 만날 수 있었던 낯설고 친절한 사람들. 자신의 삶에도 들여놓고 싶었던 빛이 고이는 작은 면적은 아니었을까.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여러 목소리 중 어렵지 않게 할머니 목소리를 구분해낼 수 있었다. 아마도 노래를 하는 동안 할머니는 덜 외로울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안심이 됐고, 조금 지나자 내가 앉아 있는 자리 위로 쓸쓸함이 내려앉았다.

 

엄마가 공공근로에 다니시면서 여기저기 아프다고 하실 때면 울 4남매는 'ctrl+c, ctrl+v'한 것처럼 똑같이 엄마 이제 일 좀 하지 마. 엄마가 벌어오는 돈보다 병원비로 나가는 돈이 더 많아, 라고 말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열심히 좀 하지 마. 그냥 쉬엄쉬엄해, 라고만 말한다. 엄마가 공공근로에 나가는 건 거기서 나오는 약간의 돈도 좋지만 그보다 같이 일하시는 어르신들과의 만남이 엄마에게 더 필요한 것이라는 걸 아니까. 거기서 나누는 어르신들과의 대화가 공감대도 잘 맞고 소통도 잘 되니까. 어떻게 보면 엄마에게 숨구멍 같은 거랄까.. 그래서 지금은 제발 열심히만 하지 말아달라고만 한다. 그리고 좋은 시간 보내고 오시라고.. 그렇게 아침에 배웅을 한다.

 

p.232

너와 연락을 하지 않게 된 지 몇 년 후에 네가 이름을 바꿨다는 이야기는 들었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다가 네 사주에 더 좋은 이름으로 바꿨다고. 다시 만나면 새 이름으로 불러야 하나 생각했었는데, 바꾼 이름이 뭐였는지도 까먹어버렸다. 그러니 이제 나는 네가 예전 이름으로 살던 시간만 가지고 있는 셈이야. 혹시 기억할 지 모르겠지만 네가 보낸 생일 축하 엽서에는 이런 말이 적혀 있어.

'지금 이 편지를 보고 바로 거울을 봐. 네가 웃고 있다면 내가 선물이 된 거 맞지?'

 

이 문장을 보고 곧 생일이 다가오는 친구에게 편지를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 편지의 끄트머리에 '지금 이 편지를 보고 바로 거울을 봐. 네가 웃고 있다면 내가 선물이 된 거 맞지?' 라는 문장을 첨부하면서..ㅎ 이름 모를 작가님의 이름이 바뀐 친구는 작가님 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선물이 되었다. 굳이 거울을 보지 않아도 내 얼굴에 미소가 지어진 것이 느껴지니까..^ㅎ

 

작가님 이름부터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그 사람이 떠올라 작가님의 전작을 뒤져 기어이 작가님 사진을 보고서야 아니구나..했다. 실은 아니구나가 아니라 왜 아니지? 라는 반응이 더 크긴 했다.ㅎ 그만큼 많이 생각나던 사람이 있었다. 잘 지내시고 있겠지..?

부디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으시길..

 

읽는 내내 내 방 책장에 꽂혀 있는 <나의 두 사람>을 왜 여직 나는 읽지 않았을까, 후회했다. 분명 앞의 몇 페이지는 읽었었는데.. 왜 끝까지 읽지 못했을까.. 너무 좋은데.. 어쩌면 그 책을 읽을 타이밍이 지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긴 했다. 그때는 아직 때가 아닌 거였다고..

 

한 시절 곁에 있어준 나의 사람들을 새삼 다시 떠올리면서.. 어디서 무얼하며 지내고 있을까.. 궁금해도 하면서.. 오래 연락이 닿지 못했던 이들은 더 그리워하면서.. 이 책을 덮었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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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워블로그 나난

    달님이라는 이름이 독특하네요. 전 달님이라는 닉네임을 쓰는 분을 알고 있죠. 번역가이신. ㅎㅎ 폭신폭신한 땅. 그 느낌이 무엇인지 알고 있어서 더 공감했어요. 엄마는 일이 하고싶으신 게 아니라 사람을 만나고 싶으신 걸 거에요. 아마도. 울엄마도 그렇지만.

    2022.05.25 10:22 댓글쓰기

PRID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