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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없는 예수 교회

[도서] 예수 없는 예수 교회

한완상 저

내용 평점 2점

구성 평점 3점

  한국 교회가 지금보다 사회로부터 비판받고 신용을 잃은 때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핍박받는 것은 어제오늘일이 아니었습니다. 심지어 이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존재였던 예수님조차도 세상으로부터의 핍박으로 인해 십자가에 달리셨으니까요. 교회가 아무리 노력한다 하더라도 교회가 받는 비판은 지금보다 더욱 심해질 것이고 이것은 피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교회가 이대로 나아가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더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예수없는 예수교회’는 한국 교회가 현 상황을 직시하고 더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올바른 방향이 무엇인지 조목조목 제시하고 있습니다. 책 전반에 흐르는 주제는 이것입니다. 우리는 이천 년 전 이 세상에 오셨던 ‘역사적 예수’를 재조명하고 그를 본받는 ‘예수따르미’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간 예수는 사랑의 화신입니다. 자기를 낮추시고 모든 것을 다른 이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우리는 이 사랑을 본받아 실천해야 합니다. 사랑은 마음으로 품는 것이 아니라 행동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자의 논조는 얼핏 보면 맞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책 전체적인 흐름으로 보던 챕터별로 보던 기독교의 본질에서 벗어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제가 이 책을 비판하려고 하는 이유는 저자가 기독교인으로서 이 책을 집필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을 때 기독교에 대해서 잘못 이해할까봐 걱정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는 진리를 추구하는 종교입니다. 유일신 하나님만이 진리이고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있는 ‘길’이신 예수님을 통해서만 하나님께 다가갈 수 있다고 믿는 종교입니다. 교리는 무엇입니까? 인간들이 수 세기에 걸쳐 성령의 조명을 통해 하나님에 대해 알게 된 사실들 중 가장 기본이 되며 공통이 되는 것들을 정리한 것입니다. 기독교인이라면 이것은 진리라고 누구나 믿는 사실이 교리입니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시는 이는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판단을 유보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무엇이 진리에 가까운지는 판단해야 하고 그 내용들을 가르쳐 전파해야 합니다. 그 잣대는 물론 성경이고 성령님께서 주시는 분별력입니다.

  ‘예수없는 예수교회’는 분명 올바른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그동안 저지른 잘못들을 회개해야 하고 역사적 예수, 인간 예수를 본받아야 된다는 내용입니다. 저자는 신격화된 그리스도에 치중하지 말고 실물 예수에 주목하자고 하며 그리스도와 예수를 분리한 한국교회를 꾸짖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지 않은 교회는 분명 회개해야 합니다. 그런데 정작 저자는 책 전반을 통해 그리스도와 예수를 분리하고 있습니다. 39페이지를 보면 ‘이같이 스스로를 비우고 종이 되어 남을 섬기셨기에 놀라운 반전이 일어났습니다. 역사적 예수가 그리스도로 높임을 받게 된 것입니다.’ 라고 나와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부활하셨기 때문에 그리스도로 신격화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원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에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책을 잘 보다보면 예수님이 우리의 친한 스승, 친한 벗으로 묘사되고 ‘~’주의자 등으로 묘사되어 있는 것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스승으로서 오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나라 운동을 하기 위해 오신 사회변혁가가 아닙니다. 단지 사랑을 전파하기 위해서라면 왜 굳이 예수님이어야 합니까? 부처나 공자한테서 배워도 됩니다. 아니 멀리 갈 것도 없이 어머니의 사랑에서 배워도 됩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우리들의 구원자로서 오셨습니다.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간극이 너무나 멀기에 그 분을 통하여 다시금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도록 오셨습니다. 저자는 이 사실을 부인하고 있습니다.(151페이지 참조) 15챕터를 봅시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라는 말씀을 해석하고 있는데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로 갈 사람이 없다’고 분명히 나와 있는데도 불구하고 길은 밟히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도신경에 실물 예수의 행적이 나와 있지 않다고 반복적으로 지적하고 있는데, 이것은 나름 창의적인 생각입니다. 하지만 이것 또한 저자가 예수님에 대해 잘못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나온 발상입니다. 저자는 ‘흑암의 세계에 빛을 던지사 병마를 쫓아내시고, 부당한 차별의 장벽을 허무시며, 꼴찌와 지극히 작은 자들도 주인이 되는 사랑의 공동체를 세우시다가’라는 대목을 끼워넣자고 말합니다. 사도신경의 시작은 이렇습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아버지의 외아들입니다. 예수님은 곧 하나님에게서부터 성령으로 나신 분입니다. 전능하시고 천지를 만드신 분께서는 저자가 말한 행적들 쯤이야 한 말씀만으로 이루어내실 수 있습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이란 대목에 저자가 말한 부분은 자연히 포함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기로 한 하나님 아버지의 계획에 의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저자의 이 발상은 예수님이 하나님과 별개의 존재라는 잘못된 생각에서 비롯된 듯 합니다. 39페이지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결코 하나님과 동등한 분으로 여기지 않으셨습니다.’

  이 책에는 구약의 하나님과 신약의 하나님이 다른 것처럼 묘사되어 있습니다. 저자에 의하면 구약의 하나님은 심판의 하나님, 진노하시는 하나님이고 신약의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입니다. 인간 예수의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고 우리는 사랑이신 바로 이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용어 정리를 하고 넘어가야겠습니다. 사랑이 무엇입니까? 요한일서 4장 8절에 의하면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은 둘 사이의 관계에서 발생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 품고 있는 마음, 우리를 위해 행하시는 행동들이 사랑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오해합니다. 모든 것을 용서하고 자기 자신을 내어주는 것도 사랑이지만 매를 들고 심판하는 것도 사랑입니다. 구약에서 우리가 흔히 느끼는 진노하시는 하나님, 질투하시는 하나님도 사랑의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이 책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잘못된 구원관입니다. 저자는 착한 행실로서 영생에 이를 수 있다는 흔히 천주교에서 말하는 구원관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갈릴리 예수를 닮는 길만이 인류가 구원받는 진리의 길임을 믿습니다.(25p)

    사마리아인처럼 착하게 살아야 영생과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100p)

    사랑을 베푸는 사람이 구원을 받아 영생을 이르는 거룩한 존재입니다.(288p)

이와 같은 구원관을 주장하는 근거로 고린도전서 13장을 들고 있습니다. 바로 믿음, 소망, 사랑 가운데 제일은 사랑이라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한 절 한 절이 모두 진리를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체적인 문맥 아래에서 해석해야 합니다. 물론 사랑이 으뜸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니까요. 그런데 저자는 사도 바울의 서신들을 무시하고 있는 듯 합니다.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에서 하나님께서 취하는 자세는 사랑이고 인간이 취해야 할 자세는 믿음입니다. ‘예수믿으미’가 먼저이고 ‘예수따르미’는 그 다음입니다. 이 시대에 이 둘 사이가 균형을 잃었고 진정한 ‘예수따르미’가 없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순서가 뒤바뀌면 안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예수따르미’가 되어야 하는 이유는 '예수믿으미'가 되었고 그 은혜를 갚기 위함이지 사회를 변혁시키기 위함이 아닙니다.

  이건 뭐 서평이 아니라 저자가 말한 ‘종교적 독선주의’로 이 책을 비판한 것 같습니다. 이 책이 기독교 서적으로 나왔기에 용기내어 이 글을 썼음을 다시 한 번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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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san

    많은 신자들이 구원을 이해할 때 '예수를 믿어 천국에 가는 것, 의인이 되는 것'으로 이해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이후로는 항상 주를 위해 '일'만 합니다. 왜냐하면 교회에서 여러 일을 하는 것이 그 구원의 빚을 갚는 거라고 생각을 하기 때문이죠. 물론 그것을 구원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만을 구원의 완성이라고 하진 않습니다. 은혜로 구원을 받았다면 이 이후에는 해야될 일만 남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은 의인으로서의 삶이 남는 것이죠. 한완상 님께서 말씀하신 구원은 이것을 말씀하신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칭의와 성화를 아우르는 전체적인 구원의 관점에서 말이죠...
    그리고 평 자체에서도 사랑에 대해 다르게 쓰고 계신 듯 합니다. 사랑이라는 같은 단어를 쓴다고 모두가 똑같은 사랑을 생각하진 않습니다. 부처나 공자가 말하는 사랑과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고 보여주신 사랑을 다를 수도 있습니다. 사랑과 구원을 나눠서 말씀을 하시는데 구원자체만 존재하지 않습니다. 구원의 근거가 뭘까요...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을 구원만 하기 위해 오셨다?? 사랑해서 구원하러 오신 겁니다...

    2009.02.02 13:18 댓글쓰기
  • jamiesuh

    신학을 공부하신 분이라 다른 기독교 비판 서적과는 다르겠지 하는 기대를 안고 서평을 보러 들어왔다가 님의 서평만으로 이 책의 방향을 본 듯 합니다. 기독교인들이 나아갈 바는 주님 안에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작은예수로 살아가야만 가능한 것이겠지요.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2009.08.17 14:21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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