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블로그 전체검색
북클러버
노랜드

[도서] 노랜드

천선란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노랜드'. 처음 제목과 마주했을 때 이 소설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가 자연스럽게 생각해 보게 되는데 보자마자 No Land 라고 읽혀서 열 편의 이야기가 전부 이 땅의, 그러니까 지구의 이야기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땅이 없다는 뜻이니까 우주의 얘기를 다룬 SF물은 아닐까 추측도 해봤었고.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우주라기엔 지구였고 그렇다고 또 지구라기엔 너무 우주였다. 인간이 나오지만 그와 동시에 허구의 생명체(정말 허구라고 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우주는 미지의 영역이니까.)도 아주 많이 나온다. 읽고 나서야 왜 '경이롭고 헤아릴 수 없는 열 편의 이야기'라는 설명이 붙었는지 이해하게 됐다.

<흰 밤과 푸른 달> : '헷갈리면 안 돼요, 강설 씨. 우리가 진짜 두려워했던 게 뭔지를요.' 가장 기억에 남는 문장을 하나 꼽으라고 한다면 고민할 것도 없이 위의 문장을 꼽겠다. 사람들은 자주, 스스로 정말 두려워하는 것이 뭔지 착각하며 살아가는 것 같다. 상황이 두려웠던 것인지, 사람이 두려웠던 것인지, 낯섦이 두려웠던 것인지, 부재가 두려웠던 것인지 등등. 자세히 들여다보면 명확한 이유가 있을 텐데 두려움이 복합적인 감정을 너무 큰 범위로 통합해버리는 바람에 실제로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것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야기의 전체적인 느낌도 좋았지만 특히 저 문장이 오래 마음에 남았던 것 같다.

<바키타> : 아주 먼 미래에, 지금 살고 있는 인류가 멸종한 뒤 새로운 인류가 생겨난다면 그들은 어떤 모습일까? 그 새로운 인류와 우리는 무언가 유대감이 있을까? 이야기에선 유대감이 있을 것이라고 답한다. 그리고 그 답에 공감했다. 생각해 보자면 우리도 현재 낯선 타지에서 같은 나라에서 온 사람을 만나면 반가움을 느끼곤 한다. 그와 비슷하게 먼 미래에 인류와 외계 생명체, 딱 둘로 범위가 나누어진다면 인류는 그들끼리 친근함을 느끼고 그것에서 나아가 서로에게 도움을 주려고 하지 않을까. 다르기 때문에 배척하기도 하겠지만 그럼에도 유대감이 없진 않을 것이라고 바라고 싶었다.

<푸른 점> : 사실 지금의 나로선 지구를 떠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우주 비행사가 있고 각국에서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지만 그렇다고 지구 밖에서 산다는 건 아직 불가능한 일이니까. 만약 지구가 멸망해서 지구를 떠나야만 한다면 망설임 없이 그러겠다고 할 수 있을지, 멸망하는 지구에 남은 사람들이 우주로 나아간 사람들에게 계속 가라고 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지. 결국엔 인류의 미래, 희망을 위해서겠지만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았다.

<옥수수밭과 형> : 읽는 내내 머리가 아팠던 단편 중 하나. 분명 내가 알던 사람의 죽음을 목격했고 그가 죽었음을 아는데 만약 그 사람의 기억을 완벽하게 가지고 있는 사람이 나타난다면 나는 그 사람을 이전의 그 사람이라고 여길 수 있을까? 사람을 구성하고 있는 것 중 가장 큰 요소가 기억이라고 생각하긴 하지만 내가 이미 그 사람의 죽음을 봤음에도 아무렇지 않게 그를 대할 수 있을까? 몇 번이고 내 경우에 빗대어 생각해 보려고 했으나 실패했다. 역시 직접 겪어보지 않았으니 쉽게 답할 수 없다는 것이 결론이었고 리뷰를 쓰는 지금도 명확하게 어떨 것이라고 말하기엔 너무 어려운 논제다.

<제, 재> : 어렸을 적 비슷한 상상을 해본 적이 있다. 내 안의 인격이 두 개인데 그중 하나가 다른 하나를 없애려고 한다면? 객관적으로 봤을 때 인류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 것은 다른 인격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희생을 해야 한다는 법은 없지 않을까. 꼭 무엇 하나 없애려고 하지 않고 공존하며 살 수는 없을까. 만약 내가 제였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고민해 봤는데 제와 같은 선택을 할 것 같다. 죽기엔 억울했고 설득은 통하지 않을 것 같으니 내가 살아남기 위해선 날 죽이려고 하는 이들을 속여야 하는. 누군가를 죽인다는 것 때문인지 유독 마지막 문장이 섬뜩하게 느껴졌다.

<이름 없는 몸> : 열 편을 다 읽고 나서 가장 기억에 많이 남았던 이야기였다. 이야기에서 묘사하는 죽었음에도 죽지 못하는 이들이 꼭 좀비와 닮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렇게까지 해서 마을의 모든 사람들을 죽이고 싶었던 그 애의 심정이 이해되기도 했으며 그런 친구를 마지막엔 본인 손으로 죽여야 하는 주인공의 심정이 너무 아프게 다가왔기 때문에. 마지막 장면이 개인적으로 좋았다. 마을 사람들 전부가 주인공에게 달려들었는데 그 애만큼은 좀비와 같은 모습이면서 주인공을 마주하고서도 아무런 미동이 없었고 오히려 의식이 있는 듯 행동하는 모습이 그 애는 주인공을 끝까지 기다렸을 것 같았다. 그리고 바랐던 것 같다. 주인공이 찾아와 마을 사람들 전부를 죽이고 끝내 자신을 본인이 있던 세계로 돌려보내주기를. 생생한 묘사도 정말 좋았는데 둘의 관계, 그리고 주인공의 마음이 너무 잘 표현되어서 몇 번이나 마지막 장면만 곱씹었던 것 같다.

<-에게> :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는 이른바 묻지 마 살인 사건이 떠올랐다. 여성들이 시위를 하고 이름을 잊지 않겠다며 연대하는 그 모습이 현재와 아주 밀접하게 연관되어있는 것 같아서. 그래서 공감이 됐고 공감이 된 만큼 쓰렸다. 세상은 여전히 똑같아서 바로 며칠 전에도 몇 년 전과 똑같은 사건이 벌어진다는 현실이 착잡하게 느껴졌다.

<우주를 날아가는 새> : 종교적 의미가 유독 짙은 글이었다. 우주에 가지 않고 마지막으로 남은 스님을 데리러 온 저어새의 얘기였는데 물론 정말로 저어새가 스님을 데리러 온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미 멸종했다고 알려진 그 저어새의 의미가 무엇이었을까 생각해 보면 어쩌면 효원이 믿고 따르던 효종 스님일 수도 있고 부처님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세계> : 이 이야기 역시 매우 흥미롭게 읽었다. 이 세상에 태어났지만 이곳은 내가 원한 세상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과 데이터 너머 저 밖의 세계를 궁금해하는 인공지능. 그게 대체 어떤 느낌일까 궁금했다. 아무리 이해해보려고 해도 나는 그들을 평생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그들은 반대로 이 세상을 이해하지 못하겠거니 싶었다. 이 세계가 아닌 다른 세계로 가기 위해 죽음을 택하는 사람들. 그들은 과연 죽음을 통해 이 세상에서 벗어나 다른 세상으로 갔을까? 남겨진 사람들은 그저 그들이 그랬기를 바랄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그리고 노랜드라는 제목이 이 이야기에서 왔구나 알 수 있었다. 노랜드는 이야기 속의 회사이면서 동시에 그렇게 다른 세계로 가버린 사람들을 뜻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뿌리가 하늘로 자라는 나무> : 서로 다른 존재라고 해도 무언가 통하는 것이 있을 수도 있겠다. 외계 생명체라고 하면 우리는 보통 알지 못하기에 두려움을 먼저 느끼지만 막상 대화를 하고자 한다면 적의를 갖지 않을 수도 있다. 사실 말이 외계 생명체지 따지고 본다면 낯선 사람, 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우리가 모든 낯선 사람에게 적의를 갖지 않고 상대 역시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외계 생명체도 비슷하게 생각할 수 있겠다고 여겼다. 확실히 우주는 너무 어렵고 미지의 영역이지만 그만큼 마음껏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취소

댓글쓰기

저장
덧글 작성
0/1,000

댓글 수 0

댓글쓰기
첫 댓글을 작성해주세요.

PRID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