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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에세이스트

사과해. 지금 당장! 무릎을 꿇기 고도 시원찮으니까!”

벌써 17년 전의 일이다.

결혼을 일찍 해서 미혼인 친구들과 생활 반경이 다르니 살림과 육아 외에는 별다른 이벤트가 없었다. 친구도 잘 만나지 않고 집안일만 하는 내게 유일한 즐거움은 가족여행이었다.

첫 애 두 돌 즈음부터 매해 여행을 갔으니 그날이 5번째 여름휴가였다.

오랜만에 동생이 조카를 데리고 온 터라 다 같이 몸을 실은 차안은 들뜬 마음으로 행복했었다.

우리의 여행은 정해진 게 아니라 닿아보지 않은 타 지역으로 가서 1,2박 해보는 생소하고 특별한 경험이어서 모두가 무척이나 기다리는 시간이다.

가는 도중 신랑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이런저런 통화를 하더니 그 가족도 휴가 기간 이라며 동행하기로 하자고 했다.

썩 내키진 않았지만 여행은 여러 명이 가야 더 재미있다고 얼렁뚱땅 동반이 되었다.

마트에 들러 필요한 것과 약간의 간식거리를 사서 차에 실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노래도 부르고 이런 게 행복이라며 웃음꽃이 피었다.

보성 녹차마을로 향하는 길은 가족 모두에게 소중한 추억이길 바라며 캠코더와 카메라 셔터도 연신 눌렀다.

휴게소에서 잠시 휴식을 하고 출발하려던 찰 나 우리 차에 실렸던 과자 몇 봉지를 친구네 차에 얼른 던져 주었다.

그러고는 다시 각자의 차로 목적지를 향해 달렸다.

초록 계단으로 펼쳐진 녹차마을에 도착하니 쌉싸름한 녹차향과 몸도 마음도 상쾌해지는 기분에 고민도 불안도 없을 것 만 같은 훈풍이 불었다.

요즘은 펜션 안에서 내 집처럼 해결이 되었지만 당시에는 민박을 구해 식사는 사 먹거나 마당에서 간단하게 요리를 해 먹을 수 있는 구조였다.

카레 식재료를 준비해 왔기에 휴대용 가스레인지에 끓이며 준비하려던 차.

“** 엄마는 가정교육을 그렇게 배웠나 봐요?”

뜬금없는 소리에 카레 젓던 주걱을 놓칠 뻔했다.

팔짱을 끼고 내려보던 서슬 퍼런 눈빛에 심장이 미칠 듯이 뛰었다.

저요? 그게 무슨 소리죠?”

아까 그 행동은 뭐죠? 내가 거지로 보였나?”

어안이 벙벙했다.

살면서 먹는 걸 개 주듯 던져주는 사람 처음 보네. 우릴 무시한 거 아냐?”

 아무 말을 할 수 없었다.아니 아무 말도 생각나지 않았다.

저 여자가 무슨 말을 하는지 내가 잘 못 들은 건지.

대신 신랑과 동생이 한마디씩 건넸다.

뭔가 오해가 있나 본데요. ** 엄마 그렇게 행동할 사람 아닙니다.”

제가 장담하는데 우리 언니는 그런 마음으로 줄 사람이 아니에요.”

사위는 더 할 나위 없이 싸늘해졌다.

훈훈한 밤바람도 향긋한 카레향도 그 사람의 분노를 흩날릴 수 없었다.

아니 됐고. 사과해. 지금 당장! 무릎을 꿇기 고도 시원찮으니까.”

단호한 한마디에 난 그 자리에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지만 차마 무릎은 꿇지 않았다.

차 안에서 억울함과 부끄러움과 미안함에 울기만 했다.

그렇게 엉망이 되어버린 몇 시간 때문에 지금까지 지인들을 잘 만나지 않는다.

나는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사람인 줄 알고 살았다.

소위 착하고 배려심 많고 잘 웃는 좋은 사람 프레임 안에 있는 사람이었다.

그저 챙겨서 빨리 건네주고픈 마음에 서두른 행동이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며칠 후 친구 와이프들의 입소문에 나는 가면을 쓴 아주 못돼먹은 여자가 되어 있었다.

내가 그토록 잘못한 걸까?

사람 만나기가 무섭고 일종의 트라우마와 우울증으로 점점 히키코모리가 되었다.

그 후로 성격도 사회성도 인간관계도 달라져 버린 집순이로 살고 있다.

싫은 사람은 안 만나면 되고, 듣기 거북한 말은 걸러 버리면 된다.

하지만 내가 하려던 말과 행동이 상대방에게 잘못 전해지는 것만큼 억울한 일은 없다.

그걸 푸는 데는 시간이 중요하다.너무 길어져 버려서 사실 미움이 더 크다.

그 미움은 나 자신에게서다.

왜 그때 내 행동을 이해시키지 못했을까?

왜 나는 챙겨주려던 오지랖을 부렸을까?

누군가는 내가 잘못한 부분도 있다고 했고, 그런 못 된 여자 빨리 잊으라고도 했다.

다 맞는 말이다.

그렇지만 난 아직도 그날의 억울한 일로 아프고 누군가를 미워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시간이 흘러 그 사람 주변이 다 떨어져 나가고 안하무인이라는 소문에 조금은 마음이 편안해졌다.

나에게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조금 배포가 컸더라면, 그냥 그런 것쯤 쿨하게 넘겨 버리는 뒤끝 없는 성격이었다면 길지

않게 아파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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