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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에세이스트

x은 안하무인이라. 세상 저 밖에 모르는 아주 못된 x”

맞아. 왜 저런 사람이 우리 지점에 왔을까?”

걸걸한 욕을 다른사람 시선에도 아랑곳없이 내뱉는 친구를 맞장구 쳐주었다.

둘은 앉은뱅이 상에 마주 앉아 추어탕으로 점심을 때웠다.

주변 눈치 보지 않고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로 그날 쌓인 스트레스를 풀기엔 더없이 좋은 사이였다.

몇 년 전 우연히 입사하게 된 경리 직원과 사원은 둘도 없는 친구 사이다.

두 달 만에 경리만 세 번 바뀐 사무실에 나는 소위 길거리 캐스팅이 되었다.

전업주부로 살다가 용돈이라도 벌어 보겠다는 마음으로 들어간 회사에서 마음고생을 많이도 했다.

익숙하지 않은 일과 사람을 대하는 일은 자존감과 자존심을 한꺼번에 잠식했다.

최고의 무기인 상냥함으로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했지만,

집에 오면 우울감 때문에 너무나 힘들었다.

그러던 중 내 속을 이해해 주고 조언도 해 주는 한 사람을 만났기에

퇴사할 때까지 외롭지 않게 다녔었다.

죽이 맞는 친구라 할까?

얼굴도 예쁘고 언변도 좋아서 예전에 인기도 좋았을 것 같았다.

음식 솜씨도 좀 좋았나.

반찬 걱정을 하는 내게 가끔 찬도 만들어 나눠 주었다.

고사리나물, 호박무침, 청국장 덩어리. 직접 만든 도토리묵.

몸에 좋고 토속적인 음식을 그 친구로 인해 좋아하게 되었다.

 

작은 소도시에 판매 실적 꼴찌인 지점에서의 하루는 여느 사무실과는 사뭇 달랐다.

그러니 점장과 사원 사이의 관계는 늘 물 위에 뜬 기름 꼴이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목소리가 커지고, 어떤 날에는 사달이 나기도 했다.

자기 말만 맞고 자신이 최고인 안하무인 점장 때문이다.

좋은 리더란 무엇일까?

세상 풍파 겪어온 사람들에게 혼자만 인정하는 타이틀은 거창한 지위가 아닌 먼지 묻은 명패나 다름없다.

결국은 서로의 치부까지 들추며 끝을 보이기 시작했다.

며칠째 출근하지 않는 친구와 나만 보면 서슬 퍼런 눈을 하는 점장 사이에서 나와의 약속마저 깨고 싶은 심정이었다.

내가 그 친구와 가깝게 지낸다는 게 그 이유다.

급기야는 나를 앞에 두고 사원들에게

주위에 못 살고 구직 활동하는 아가씨 있으면 경리 자리 있다고 소개 좀 시켜요.”

나는 그만 둘 생각이 없었고 구인 공고 나온 적도 없다.

나 한사람 그만두어도 들어올 사람은 많다고 생각하지만, 본사에서의 설득과 강의 교수님의 말씀에 버텨 보자고 마음먹었다.

퇴근 후 늦은 밤 친구를 찾아가, 그동안의 일을 이야기 하며 서럽도록 울었다.

다음 날 묵묵히 듣던 친구와 친했던 사원들이 나를 위해 싸워주었다.

결론은 사람은 쉽게 바뀌는 게 아니다.

그 짬에 그 성격으로 수십 년을 살아온 사람인데 그 작은 에피소드에 달라질까?

몸이 좋지 않은 친구는 뜸 하게 출근을 했고 실적이 저조한 우리 지점은 결국 폐쇄를 하였다.

매일 만나던 장소가 없어지니 우리의 사이도 소원해지고 그렇게 시간은 흘렀다.

몇 년 후 도서관으로 올라가다가 벤치에 앉아 있던 친구를 만났다.

너무 반가워 아는 체를 했더니 옆에 있던 부군이 친구의 손을 꼭 잡았다.

이 친구 당신이 매일 이야기하던 그 친구네? 나도 기억나는데 당신도 기억나지?”

나는 친구 앞에 쪼그리고 앉아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너 사무실에 안 가고 여기 왜 왔어?”

친구가 환하게 웃었다.

나는 눈물이 났지만 더 밝게 웃어 보였다.

“윤여사님 보고 싶어서 오늘 출근 안 했어요. 잘 지냈어요?”

희미해져 가는 기억에 아직 내가 있는지 걸걸한 웃음으로 안아 주었다.

나는 올해 49살이고, 친구는 85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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