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가옥 옴니버스 픽션 시리즈 FIC-PICK의 첫 번째 책이다. '무드 오브 퓨처'는 다섯 명의 여성 작가들이 상상하고 고민한 근미래 로맨스 단편소설을 엮은 작품집이다.
영화, 연극, 드라마, 문학 등 다양한 장르에서 문재를 빛내던 다섯 작가들이 합을 맞추었다. 드라마와 에세이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종횡무진 글을 쓰는 윤이나 작가, 미스테리 영화 시나리오를 주로 써오던 영화감독이기도 한 이윤정 작가, 주로 연극 무대에서 활동하며 배우/극작가로도 활동하는 한송희 작가, 방송 대본과 소설을 주로 쓰는 김효인 작가, SF소설로 데뷔한 뒤 줄곧 소설을 써온 오정연 작가까지. 이들은 ‘근미래’와 ‘로맨스’라는 두 가지 키워드를 모티브로 다섯 작가는 각자 자신만의 관점과 색깔로 이야기를 그려냈다. 다섯 소설을 관통하는 ‘미래의 분위기’를 한껏 느껴보며 SF 로맨스 소설의 매력에 흠뻑 빠져보자.
-
〈윤이나, 아날로그 로맨스〉
통역기 란토를 통해 전 세계 사람과 국경을 넘나드는 사랑이 가능해진 근미래에 무인도에서 펼쳐지는 리얼리티 연애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촬영 현장에서 준은 예전 애인 올리를 만난다. 우연히 만난 것이 아니라 전 애인에게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재회의 메시지를 던지기 위해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것이다. 준은 과연 올리의 마음을 되돌릴 수 있을까.
〈이윤정, 트러블 트레인 라이드〉
죽은 가족이나 애인을 추억하는 이들이 만든 주문 제작형 안드로이드가 인공지능과 감정을 가지고 인간을 대하기 시작한다! 이 소설의 주인공 지은과 은수와 다른 인물들은 대부분 AI이다. 이들을 개발하고 관리하는 회사의 직원인 제임스와 AI를 주문한 성진 정도가 살아 있는 인간이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몸을 얻게 된 시점에서 어떤 사건들이 벌어질까.
〈한송희, 사랑도 회복이 되나요?〉
근미래의 정신과 약 기분영양제 ‘비타무드’를 복용하던 비연애주의자 영화감독 소혜에게 어느 날 선물 같은 일이 찾아온다. 바로 앞집에 이사 온 남자 서준이다. 서준은 배우 지망생이다. 둘은 같은 ‘비타무드’를 복용한 후 각기 다른 후유증을 호소한다. 가려움증을 겪는 서준과 엄청난 기분의 요동침을 겪은 소혜는 ‘비타무드’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함께 제작한다.
〈김효인, 오류의 섬에서 만나요〉
현실에서 상처를 입은 이들이 가상현실 속에서 정신을 치유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전직 축구선수 서이와 전직 수험생 도현은 가상현실 속 오류가 난 섬에서 우연히 만난다. 둘은 영문을 모르고 깊은 물에 빠지거나 과거의 트라우마를 불러일으키는 사물들과 마주친다. 서이가 패닉에 빠지면 도현이 돕고, 도현이 우울의 늪에 갇혀 무기력해지면 서이가 끌어낸다. 길고 긴 터널 같은 이 가상현실의 끝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과연 이 둘은 우울과 무기력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결국 사람을 치유하는 것은 사람 그 자체다.
〈오정연, 유로파의 빛을 담아〉
과거와 미래, 지구와 우주 사이에서 오가는 이메일을 통해 첫사랑과 몇십 년 만에 연락이 닿았다. 119안전센터의 센터장이 된 현우는 충경도 송천시에 산다. 5년 만에 날아든 이메일은 전교 1등이었다가 이민을 간 정현이 보낸 것이다. 정현은 우주인이 되어 우주 비행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이 둘은 십 대 시절 아주 짧지만 강렬한 첫사랑의 기억을 공유하고 있다. 오래전 해프닝으로 끝난 둘의 관계가 우주를 오가는 이메일을 통해 어떻게 이어질 것인가.
-
같은 출판사에서 출판한 '뉴 러브'를 추천한다. 뉴 러브는 조금 더 짧은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무슨 말을 했는지 궁금하면 물어보는 대신 란토를 끼곤 했다. 그게 다시 한 번 말해 달라는 우리 사이의 신호였다. 올리는 귀찮아하지 않고 다시 한 번 말해 주었지만, 가끔 이렇게 말할 때도 있었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었어."
그건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을까.
'아날로그 로맨스' p. 69
개인적으로 사랑 뿐만 아니라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다른 것(여기서는 란토)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상대를 향해 관심을 표현하고 애정을 드러내주는 것. 올리는 그런 류의 서운함이 쌓이고 있던 것은 아니었을까?
흔히 여자가 '아무것도 아니었어'라고 하면 아무것도 맞아, 라는 뜻이라고 하던데 그건 누구든 마찬가지 아닌가? 나에 대한 관심이 없다는 생각이 드는데 굳이 내 시간을 할애해가며 내 상황을 여러 번 설명하고 얘기하고 기대하는 것도 아까우니까. 그렇게 멀어지는 거고.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알고도 부정했을지 모른다. 알기 때문에 부정했던 것이다.
사랑에 빠졌을 때 느껴지는 심장의 비정상적 움직임을. 불안과 닮은 모습의 설렘을. 서준을 향한 수많은 물음표들이 무엇을 말하는지.
함께 있을 때 느꼈던 긴장과 편안함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사랑은 느닷없이 시작되고 제멋대로 움직인다.
'사랑도 회복이 되나요?' p. 207
-
안전가옥의 책답게, 이번에도 소설집이다. 학교 가는 길, 쉬는시간 등 틈틈이 읽기 쉬워서 좋아하는 책이다.
이번 책에서 가장 인상깊게 남았던 이야기는 '아날로그 로맨스'와 '사랑도 회복이 되나요?' 두 편이다. 사실 이 책의 이야기가 각자의 매력을 담고 있어 각각의 이유로 내 마음에 책갈피를 남겨놓았지만 그래도 굳이 꼽자면 두 이야기인 것 같다.
'아날로그 로맨스'가 특히 마음에 들었다. 외국인과의 경계가 옅어지고 누구와도 큰 힘듦 없이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지는 근미래의, 굳이 란토를 끼지 않고 그 언어 특유의 뉘앙스를 직접 느끼려 하고 상대를 온몸으로 이해하려 하는 로맨스 이야기는 나를 설레게 했다. 한창 유행하고 유행했던 리얼리티 로맨스 프로그램(하트 시그널이라거나 솔로지옥이라거나...물론 나는 다 못 봤다...ㅠㅠㅠ...)이 떠올라서 친근감도 들었다.
한편 '사랑도 회복이 되나요?'는 감정 조절 >>비타민<<에 초점을 맞춰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면 부작용이 사라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그 과정에서 닮은듯 다른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를 보여주는 모습이 여러 감정을 느끼게 해 기억에 남는다. 비타무드, 조금 탐나는걸.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