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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조르바

[도서] 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자키스 저/유재원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어느 날 나는 베를린에서 조르바가 보낸 전보를 받았다. "무지무지 아름다운 초록빛 돌을 발견했음. 빨리 올 것. 조르바." ... 처음에는 화가 났다.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영혼과 몸을 떠받칠 빵 한 조각이 없어 굴욕을 당하고 무릎을 꿇는 상황에서 아름다운 초록빛 돌 하나를 보기 위해 달려오라고 전보를 치다니······ 남들의 고통에 전혀 개의치 않는, 동정심도 없는 빌어먹을 아름다움이여, 저주나 받아라! ... 이미 밝혔듯 나는 모든 것을 중단하고 내 인생에 단 한 번 과감한 미친 짓거리를 해볼 용기를 내지 못했다. 그리고 그 후에 ... 조르바가 나를 가망 없는 먹물로 여긴다고 쓴 짧은 편지를 받았다. 그리고 그 점에서 조르바가 옳았다.



 작가, 니코스 카잔자키스는 니체 철학을 배운 사람이다. 그 때문에 그가 쓴 이 책도 니체 철학에 대한 이야기인데, 그는 자신이 함께 지내고, 느껴본 조르바라는 인물을 통해 우버멘쉬를 형상화해냈고 그것을 찬양했다. 그리고 소설을 통해 니체 철학에 관련된 연구로 박사 학위까지 받았던 자신이 '밑바닥 인간'이라고 고백한다.


 우버멘쉬인 조르바는 그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는다. 사회가 공유하는 도덕은 물론이고 법, 통념, 심지어는 자기 자신의 기억, 시간에도 얽매이지 않는다. 그는 매 순간 순간 스스로 판단을 하며 그 순간의 자신을 받아들인다. 밑바닥 인간인 다른 사람들의 행동 원리엔 타인과 관련된 것이 포함되지만 그런 것들을 극복해낸 조르바가 하는 행동의 이유는 그 자신에게 있다. 작 중 주인공-대장은 그런 조르바를 스승으로 여긴다. 그를 지지하고 그의 행동을 배운다.


하지만 난 우버멘쉬인 조르바보단 남들보다 묶여진 줄이 조금 더 길 뿐인 주인공에게 더 공감이 갔고, 주인공에 더 가까워지고 싶다고 느꼈다. 작가 스스로조차도 자신이 밑바닥 인간이라는 것을 부끄럽게 여겼지만, 난 그런 줄이 조금 더 긴 밑바닥 인간이야말로 우리와 같은 일반인이 추구해야할 인간상이 아닌가 싶다.


 물론 우버멘쉬인 조르바의 삶은 경이롭다. 하지만 동시에 경외스럽기도 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조르바와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행동을 할 순 없기 때문이다.


 니코스 카잔자키스와 마찬가지로 철학 박사인 강신주가 '강신주의 감정수업'에서 롤리타를 사랑한 험버트를 사회 통념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이상적인 인간으로 평가했다. '강신주의 감정수업' 안에서 이런 식의 감정 찬양이 계속 이어지는데, 이 감정 찬양은 우버멘쉬에 대한 찬양과도 일맥상통한다. 다른 그 무엇에도 얽매이지 말고, 순간 순간 자신에게 충실하라.


 그 무엇에도 구속되지 않고, 자신에게만 충실한 삶은 그 누구라도 바랄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럴 수 있을까? 그리스인 조르바가 그런 삶의 긍정적인 측면을 내비친 이야기라면 난 롤리타가 그런 삶의 부정적인 측면을 내비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부정적인 측면을 쉬이 간과할 수 없다. 물릴 때까지 먹는게 체리인지 독약인지, 마음 속에 품은 악마가 불태우라고 가르키는 것이 부패한 교회인지 선량한 시민인지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는 조르바의 이야기가 보고 따라야 할, 목표로 삼을 삶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스인 조르바'의 주인공이 그러했듯, 자신의 줄을 늘릴 수 있는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에는 대장같은 사람보다도, 조르바같은 사람보다도 마을 사람과 같은 부류가 더 많다. 그런 사람들이 조르바의 자유로움을 통해서 더 긴 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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