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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드의 영역

[도서] 모나드의 영역

쓰쓰이 야스타카 저/이규원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우연히 중고로 손에 넣게 되었다. 다른 책을 사면서 사실상 딸려온 책인데, 지금 와선 그 다른 책보다 이 책이 더 마음에 든다.


 지금까지 난 쓰쓰이 야스타카의 책을 읽은 적이 없다. 딱히 관심도 없었고, 일전의 망언도 있고, 어찌 되었건 손이 안갔다. 그러던 와중 이 책을 읽게 되었는데, 지금껏 내가 읽은 작품 중 손에 꼽힐 정도로 재미가 있었다.


 책의 내용은 꽤나 난해하다. 아퀴나스, 라이프니츠, 아리스토텔레스, 그리고 그 외 다수. 많기도 많은 철학자가 나오는데 그냥 이름만 나오는 것도 아닌 것이, 책의 마지막에 참고 서적이 나오는데 이 양반이 본서만 읽은 것도 아니고 해설서까지 읽어가며 철학적인 내용을 쭉 나열해 놓았다. 이러니 책의 내용이 난해하지 않을 수가 있나. 쑥 훑어 있는 것으론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게 재미가 없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작 중 주인공이 인간들에게 알아들을 수 있게 말하는 대사가 다수인 만큼 난해하나, 이해 불가능하진 않은 이야기일 뿐더러 난해한 이야기를 제외하더라도 책 자체가 매우 재밌다.


 내가 가장 큰 인상을 받은 것은 이 책의 전개 방식이다. 흔히들, 작가가 임의로 넣어서 스토리를 전개시키면서도 정작 스토리 안에서 별 부각이 되지 않거나 잊혀지는 장치를 맥거핀이라고 이른다. 이 책은 맥거핀을 활용한 전개 방식과 유사하면서도, 아주 다르다. 좀 과장되게 말하자면 이 책 자체가 맥거핀이다. 맥거핀의 정의상 그런 이야기는 있을 수 없지만 느낌을 말하자면 딱 그런 느낌이다. 작가를 대변하는 캐릭터가 나와서 작품의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설계해놓고 그 설계를 진행시키는게 끝이다. 심지어 작품 내에서 이 소설을 진행하기 위해서-사랑하기 위해서- 그런 짓을 했다는 말이 나온다. 소설을 진행시키기 위해서만 만들어진 장치로 소설이 진행되는 셈이다.


 위의 말이 언뜻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있다. 애초에 소설 내의 장치가 이야기를 진행시키기 위해 만들어지는 게 정상 아닌가? 내가 말한 것은 그런 의미와는 거리가 있다. 소설을 진행시키는 장치의 소설 내의 목적이 소설을 진행시키는 것이란 점에서 타 소설과 구분된다. 가령, 셜록 홈즈에서 신사 찰스 씨가 옷걸이에 찔러 죽인 사건이 나왔다고 할 때, 그 찔러 죽인 목적은 (물질적이든 감정적이든)한 개인의 이익이며, 주인공의 목적은 범인을 찾는 것이다. 구슬을 잃어버린 아이들이 구슬을 찾으러 다시 길을 돌아가는 이야기에서 목적은 구슬을 찾는 것이다. 이 책에서 나온 사건의 목적은 주인공이 세계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기 위함-소설을 진행시키기 위함이다. 그는 망가트려진 '모나드'를 복구하기 위해 여러 사건을 일으키고 계산된 황당한 행동들을 하나, 그 '모나드'를 망가트린 주체도 주인공이다.


 예측되지 않는 전개, 장황한 철학적 내용, 자유분방한 소설적 장치의 사용.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 기막힌 재미를 자아낸다. 소설을 즐긴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에게 이 소설은 재미가 없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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