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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꿈

 

어머니는 18살에 결혼하셨다. 나를 낳기 전에 딸 셋을 낳았다. 둘째 누나만 살아남았다. 어머니는 내가 태어나기 전에 꿈을 꾸셨다. 깊고 푸른 물속에서 우렁이 세 마리를 줍는 꿈이었다. 당신은 아들 삼형제를 낳을 꿈이라고 생각했는데, 세 번째는 딸이었다.

 

자라면서 여러 번 듣게 된 어머니의 꿈은 자식들이 농사를 짓지 않는 것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자기 꿈이 무엇인지 정해오라고 하셨다. 집에 와서 어머니께 엄마, 나는 커서 무엇이 될까?” 물어보았다. 어머니는 군대에 가서 대장을 해야지라고 하셨다. 학교를 다니지 못한 어머니는 세상의 많은 직업을 알지 못했다. 그 당시 작은외삼촌이 해군에 계셨기 때문에 대장이 되라고 하신 것 같았다.

 

초등학교 때 나의 꿈은 소설가였다. 중학교 때는 법관으로 바뀌었다. 고등학교 때, 부모님처럼 농부가 되고 싶었다. 공부를 그만두기 위해 13일 동안 가출했다. 아버지는 내 고집을 꺾지 못하고 농사를 짓게 했다. 16개월 동안 머슴을 따라다니며 농사를 지었다. 지게를 지고 산에 가서 나무를 하기도 했다. 농사일은 정말 힘들었다.

 

19733월 말부터 다시 공부하기 시작했다. 하양에서 자취하는 여동생에게 얹혀 지내면서 대구 동인동 소재 고시학원에 다녔다. 4개월 후에 고등학교 졸업학력 검정고시를 치렀다. 내가 공부하기를 간절히 바라던 어머니는 갓바위 부처님께 하루종일 기도드렸다. 시험 결과는 전 과목 합격이었다. 어머니의 기도 덕분이라고 생각했다. 그 후 시험을 치를 때마다 당신의 기도에 기댔다. 예비고사와 대학 입시를 무난히 통과했다.

 

교대를 졸업하고 4년제 대학 법학과에 편입했다. 1년 후에 제20회 사법시험 1차시험에 도전하였다. 어머니는 갓바위에 기도하러 가셨다. 시험에 불합격했다고 하자, “시험 전날 밤 꿈에, 기도하러 가는데 발밑에 깨어진 유리조각이 가득하더라. 그래서 네가 시험에 떨어질 줄 알았다라고 하셨다.

 

결혼 후에 시험 종목을 바꾸었다. 32회 행정고등고시 2차시험에 불합격했을 때였다. 어머니가 또 꿈 이야기를 하셨다. “네 아버지가 진흙 벽돌로 단단한 담을 쌓고 있는데, 한가운데 구멍이 커다랗게 뚫려 있더라.” 어머니가 꿈을 통해서 미래의 일을 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많은 세월이 흐른 후 어머니의 꿈은 이루어졌다. 4남매가 모두 대학을 졸업했고, 농사를 짓지 않게 되었다. 누나와 나는 교사가 되고, 동생은 치과의사, 여동생은 간호사가 되었다. 그런데 어머니는 장남인 내가 초등학교 교사인 것을 탐탁치 않게 생각하셨다. 자식 자랑할 때는 늘 동생이 치과의사라는 사실을 먼저 이야기했다. 판사 아들을 두는 꿈이 좌절된 후, 내가 대학교수가 되기를 바랬다.

 

어머니의 꿈이 곧 내 꿈이었다. 꿈을 이루기 위해 공부를 계속했다. 야간대학을 졸업하고, 두 군데 대학원을 다니고, 교육학석사 학위와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러나 어머니가 바라던 교수가 되지는 못했다.

2003년에 초등교육전문직 전형에 합격했다. 교육연구사와 장학사를 지내고, 교감을 거쳐 2011년 학교장 발령을 받았다. 그러나 뇌경색을 겪고 치매를 앓고 계시던 어머니는 교장이 된 것을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한평생 농사를 지으며 자식들을 뒷바라지 한 어머니는 202078일에 돌아가셨다. 나는 어머니의 꿈을 이루어 드리지 못한 불효자가 되었다. 잠자리에 누우면 늘 어머니 생각이 난다. ‘그립다라는 낱말의 뜻을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 비로소 알았다. 꿈속에서 어머니를 뵙고 싶었지만, 내 꿈속에 어머니는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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