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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성암

 

어제 도서관에서 퇴근할 때 외장하드를 두고 왔다. 내가 작업한 모든 자료를 저장하는 매체여서 잠시라도 없으면 안 된다. 아침을 먹고 20년 된 칼로스를 운전하여 도서관에 갔다. 외장하드를 가지고 나오면서 천성암(天成庵)에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하늘이 만든 절천성암은 통일신라시대에 의상대사(義湘大師, 625~702)가 창건했다.

갓바위 가는 길에 있는 버스정류장 부근에 차를 세웠다. 갈색 바탕에 흰색 고딕체로 쓴 천년성지 전통사찰 천성암안내판이 높다랗게 서 있다. 천성암 가는 길 입구에 있는 경산시 산불감시초소직원에게 목적지를 밝혔다. ‘걸어서 가면 30분 정도 걸릴 겁니다라는 대답을 들었다.

초소 옆에는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천성암에서 내건 현수막 2장이 있다. 한 장은 봉축 부처님의 자비광명 온 누리에/ 천성암’, 다른 한 장은 봉축 자비로운 마음이 꽃피는 세상/ 천성암이다. 절까지 거리가 워낙 멀어서 그런지 연등은 보이지 않는다.

콘크리트로 포장된 가파른 산길을 5분 정도 걸어가면 증조부모 묘소로 가는 갈림길이 나온다. 내려올 때 들리기로 하고 길을 재촉한다. 길 양쪽은 키 큰 소나무와 참나무 등이 하늘을 가리고 서 있다. 햇볕 한 점 비치지 않지만 길이 워낙 급경사라 금방 숨이 차오른다. 혼자 걸어가는 데 무슨 소용이라 싶어 마스크를 벗는다. 숨쉬기가 한결 수월하다.

산허리를 돌아서 굽이굽이 이어진 길은 경사가 급한 곳은 콘크리트 포장길, 조금 평탄한 곳은 흙길이다. 길가 곳곳에 야생화가 고개를 내밀고 있고, 조금 떨어진 곳에는 작은 흰색 꽃을 주렁주렁 단 꽃나무도 보인다. ‘산불조심현수막이 몇 군데 붙어 있다. 크기가 다른 돌 몇 개로 길가에 쌓은 소박한 돌탑도 있다.

나란히 선 직사각형 바위 네 개가 천성암에 온 것을 환영하고 있다. 그 옆에는 천성사공적비가 서 있다. 비석 뒤쪽으로 갈 수 없어서 무슨 내용을 담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옆으로 누워 자라는 참나무 뒤편 사각형 바위 위에서 누런 진돗개가 요란하게 짖어댄다. 제법 넓은 공터에 군데군데 자라고 있는 컴프리는 암자와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요사채로 보이는 건물 벽면에 공곡족음(空谷足音)’이라는 세로 편액이 걸려 있다. ‘빈 골짜기에 들리는 발자국 소리라는 뜻일까. 천성암은 그만큼 조용한 곳에 자리하고 있다. 보살들이 말하는 소리가 들리는데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요사채 옆에서 삽살개가 연방 짖어댄다. 사람 본 것이 반가워서 짖는다고 생각해본다.

천성암 경내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 잡은 극락전(極樂殿)을 찾았다. 극락전 앞 맨 왼쪽에는 다듬잇돌 위에 둥근 돌이 놓여 있고, 그 오른쪽에는 돌 거북 두 마리가, 그 옆에는 기묘한 모양의 수석을 배치해두었다.

극락전 앞면 4개의 기둥에 붙은 주련을 읽었다. ‘천상천하무여불(天上天下無如佛), 시방세계역무비(十方世界亦無比), 세간소유아진견(世間所有我盡見), 일체무유여불자(一切無有如佛者)’, ‘하늘 위와 아래에 부처님 같은 분이 없고, 온 세상에도 부처님과 견줄 사람 없다. 세간의 모든 것을 내가 다 보았지만, 부처님 같은 분이 없더라.’

법당으로 들어가 불을 켰다. 어둠 속에 계시던 부처님과 탱화들이 반갑게 다가온다. 원래 극락전 본존불은 아미타불이고 좌우협시불은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지만, 천성암의 극락전에는 대세지보살 대신 지장보살을 모셨다. 아미타전이나 극락전에서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하는 대세지보살의 자리를 지장보살이 차지하는 것이 요즘의 대세인 것 같다. 이로 미루어봐서 천성암의 극락전도 새로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보인다.

불전함에 지전을 넣고 세 번 절을 올린다. 불교가 기복종교의 역할도 하는지라 절을 할 때 소원을 빈다고 하는데, 나는 무슨 소원을 말해야 할지 알지 못한다. 다만 간절한 마음으로 절할 뿐이다.

극락전을 나와 돌계단을 내려온다. 계단 양쪽 화단에는 보라색 등나무꽃이 늘어져 있고 붉은 단풍나무도 보인다. 단풍나무 아래에 자리한 마애보살상이 무척 행복해 보인다.

자광전(慈光殿)으로 가는 길옆에는 온몸이 검고 다리가 흰 개가 이를 들어내고 짖는다.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겁이 많아서 내가 다가서니 자꾸만 자기 집 쪽으로 물러난다.

자광전 안의 부처님은 석가모니불 같다. 본존불 뒤 정사각형의 감실 안에 한 분씩 많은 부처님들이 자리하고 있다. 불전함 비슷한 곳에 지전을 넣고 3번 절을 올렸다.

조그만 산신각 안에는 호랑이를 앞에 둔 산신령이 앉아 계신다. 산신각 옆에는 의상대사가 심은 천도복숭아 나무가 있다고 하는데 어느 나무인지 알 수 없다. 겨울에도 도룡뇽이 살고 있다는 절벽 앞 우물(선묘정)은 나무로 된 둥근 뚜껑으로 덮여 있고 그 옆 작은 바위 위에는 도룡뇽 석상이 무료하게 앉아 있다.

자광전 앞에는 사각형의 커다란 바위들이 절벽을 이룬 것처럼 줄지어 서 있다. 자광전 지붕만큼 키가 크다. 바위틈 사이의 돌계단을 올라가면 너럭바위가 나타난다. 20~30명는 족히 앉을 수 있는 넓고 편평한 바위다. 너럭바위의 갈라진 틈이 만()자를 이루고 있어서 불연(佛緣)이 깊은 바위라고 한다. 바위 한쪽에 자리잡은 작은 7층 석탑이 더 넓은 사바세계를 내려다보고 있다.

의상대사는 이 바위 위에 앉아서 수행했다고 한다. 그래서 천성암의 원래 이름은 독좌암(獨左庵)이다. 바위 앞에 또 바위가 있는데 암자 입구에서 보았던 4개의 바위이다.

요사채 앞을 지나면서 주지스님을 만났다. 합장하여 고개를 숙인 후 궁금한 것을 여쭈어보았다.

스님, 옛날에 이 절은 독짬절이라고 불렀고, 바위 틈으로 난 좁은 길을 통해 들어갔는데, 그 길은 없어졌습니까?”

, 옛날에는 그렇게 불렀는데, 길을 새로 내어서 옛날 길은 없습니다.”

내가 어릴 때 할머니를 따라 천성암에 온 적이 있었는데, 할머니는 독짬절이라고 불렀다. 그때 커다란 돌 사이로 난 좁은 길로 가면서 독짬절돌 사이에 있는 절이라고 생각했다. 오늘 생각해보니 할머니가 말한 독짬절은 독좌암절이었다.

내려오는 길은 내리막길이어서 올라갈 때보다 훨씬 수월했다. 갓바위 가는 길이 보일 때쯤 되어서야 증조부모 묘소를 지나쳤다는 것을 알았다. 뒤돌아 가서 묘소까지 갔다. 증조부모님께 두 번 절하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中樞院議官慶州金公之墓(중추원의관경주김공지묘) 비석 앞뒤로 작년에는 볼 수 없었던 둥굴레가 무리를 지어 자라고 있었다. 세상을 둥글게 살라는 증조부의 말씀이 들리는 것 같다.

천성암을 다녀오면서 천성산 천성암 아래 자리한 증조부모 음택이 명당이라는 생각을 했다. 극락전 아미타부처님과 증조부모님의 보살핌으로 작년과 재작년에 돌아가신 부모님이 극락왕생하셨다고 굳게 믿었다. 내가 극락전과 자광전에서 절하면서 말하지 못한 소원을 부처님이 미리 헤아려서 이루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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